‘부실 투자’에 뚫린 향군 빚만 5천억원+α
  • 이승욱 기자 (smkgun74@sisapress.com)
  • 승인 2012.07.3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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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보훈처의 재향군인회 감사 결과 보고서 단독 입수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본부. ⓒ 시사저널 박은숙
8백50만 제대 군인이 회원인 대한민국재향군인회(이하 향군)가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수익 증대를 위해 손을 댄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사업 등 각종 직영 사업이 연이어 손실을 보면서 수천억 원대의 빚더미에 올라앉아 논란을 낳고 있다. <시사저널>은 향군의 부동산 PF 사업 등 직영 사업을 둘러싼 비리 실태와 원인 등을 취재하던 중 향군의 관리·감독 기관인 국가보훈처가 지난해 12월 작성한 ‘향군 직영 사업 추진 실태’에 대한 감사 결과 보고서를 단독 입수했다. 보훈처 감사 보고서에는 향군 부실화의 실상을 엿볼 수 있는 단서들이 상당수 담겨 있다. 하지만 향군 일각에서는, 향군 지도부는 놔두고 사실상 실무 책임자들의 비리 차원으로 일단락시킨 부실한 감사 결과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어 논란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보훈처는 지난해 10월31일부터 11월18일까지 보름 동안 향군 사업개발본부가 추진한 20개 부동산 PF 사업 등 직영 사업체의 투자·담보 사업을 대상으로 감사를 실시했다. 중앙고속과 향우산업, 재향군인상조회 등 향군의 7개 상법상 법인은 감사에서 제외되었다. 당시 보훈처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향군 사업개발본부의 잔존 채무만 2011년 11월 기준 19개 사업에 총 5천7백88억원(차입 4천6백23억원, 신용 공여 1천1백6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향군 사업개발본부의 잔존 채무만을 말하는 것이다. 최근 검찰 수사 결과로 알려진 4개 상장 기업 BW(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과 관련한 S&S사업본부 U-케어사업단의 지급확약서 발급으로 인한 대출 7백90억원이나 석탄 사업의 실패로 인한 손실 72억원 등을 합하면 향군의 총 부채 규모는 이보다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보훈처의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보훈처는 향군 사업개발본부의 부실 원인으로 ‘충분한 사업성 검토 없이 사업 투자를 결정(사업 개발)하고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한 조치와 집행 등 사후 관리도 소홀히 하여 회수가 불투명하다’라고 지적했다. 보훈처는 또 부실화의 주요 원인으로 ‘수익사업심의위원회(이하 수익심의위)의 심의 부실’과 ‘이사회 의결 변칙 운영’ 등을 꼽았다. 보훈처는 감사 보고서에서 ‘신규 사업 의결 시 위험성이나 사업성 검토보다는 단기 수익성(이자/수수료 선취) 위주로 심의했고 수익심의위가 감정평가사, 부동산 전문 회사 임원 등 외부 전문가의 참여 없이 전문성 없는 내부 위원만으로 구성되었다’라고 지적했다. 당시 향군의 수익심의위는 부동산 PF 사업 시행·시공사의 신용등급, 도급 순위, 채권 확보 가능한 담보 등 기본 정보조차 검토하지 않았다. 보훈처는 ‘신규 사업 개발은 이사회에 보고하여 의결을 거쳐 승인하여야 하는 데도 이사회 의결 없이 추진되었다’라고 덧붙였다.

부실 시행·시공사 선정으로 사업 손실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감사 보고서에 나타났다. 보훈처는 감사 보고서에서 ‘(향군이) 부실 시공·시행사와 두 개 사업 이상을 동시 진행, 연쇄 부실로 과다 손실이 발생되었다’라고 지적했다.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부실 시행·시공사 선정으로 인해 사업개발본부의 사업장 20곳 가운데 부도가 난 시행사는 5곳, 시공사는 10곳 등에 이른다. 보훈처는 또  ‘6개월 대출 만기 전후 회수를 위한 상환 또는 재촉 공문, 채권 회수 조치 등 행정 처리나 미상환에 대한  보고·대책 수립이 전무했다. 손실 희석을 위해 향군의 사업장 직접 인수(SPC 설립)로 부실화가 가속되었다’라고 감사 보고서에서 지적했다.

보훈처는 사업개발본부의 부실을 2군사령부 공병부장 출신인 A 전 사업개발본부장과 B 전 부본부장(2군사령부 전 공병차장), 안 아무개 전 사업부장(2군사령부 전 공병장교), C 전 관리부장 등 사업개발본부 전 직원 네 명이 주도한 것으로 사실상 결론 내렸다. 이에 앞서 향군도 A 전 본부장 등 사업개발본부 전 직원 네 명과 시행·시공사 관계자 네 명 등 총 여덟 명을 배임·사기 혐의 등으로 형사 고발했다. 이 가운데 안 아무개 전 부장은 지난 7월25일 평택 아울렛 사업과 경기도 워터파크 체육시설 사업 등과 관련 시행사 대표(구속기소)로부터 돈을 받고 수백억 원을 대출해준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보훈처는 또 올 들어 향군 정상화를 위한 TF(태스크포스)팀을 구성했고, 향군은 재무개선위원회(내부 인원 9명, 외부 인원 5명 등)를 설치해 재정 건전화를 추진 중이다.

국가보훈처(왼쪽 ⓒ 시사저널 이종현)와 이 입수한 감사 결과 자료(오른쪽 ⓒ 시사저널 최준필).

‘꼬리 자르기’ 감사에 대한 의혹도 제기돼

하지만 향군 일각에서는 보훈처의 향군 감사 결과가 사실상 ‘꼬리 자르기’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보훈처는 감사 보고서에서 부동산 PF 사업을 주도한 사업개발본부가 ‘회장 및 사무총장 직속 사업체 운영 형태로 운영되고 있고 사업에 대한 보안 유지를 이유로 자체 감사가 금지되어 있다’고 하면서도 그 이유나 책임 소재 여부는 밝혀내지 못했다. 또, A 전 본부장은 이력서 외에는 채용과 관련된 일체의 서류가 존재하지 않는 등 공식 절차 없이 임용되었지만, 누가 채용했는지 여부는 가리지 않는 등 향군 윗선의 개입 여부는 밝혀내지 못해 부실 감사 의혹을 사고 있다. 거기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향군의 ‘2011년도 제3차 임시 이사회의 의결 사항’ 자료에 따르면 향군 차원의 감사에서도 사업 부실의 주된 책임자를 A 전 본부장 등 사업개발본부 전 직원 네 명과 시행·시공사 관계자로 국한했다. 보훈처는 특히 향군 감사를 실시한 지 반년이 지나도록 감사 결과를 외부에 일절 공개하지 않아 논란을 키웠다. 향군 개혁을 요구하는 일부 회원들은 “향군의 수익 사업 의사 결정 절차에 따르면 사무총장이 신규 사업을 의결하고 향군 회장도 최종 보고를 받는다. 보훈처의 신규 사업 중단 지시가 있은 후에도 신규 사업을 추진해 부채를 키웠는데도 보훈처는 현 회장이나 전 사무총장 등 지도부에 대한 징계를 요구하거나 강하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보훈처는 “향군 감사 보고서는 보훈처의 정보공개심의회 심의 결과에 따라 검찰의 수사 등에 영향을 끼칠 수 있어 비공개 결정을 했다. 보훈처는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감사를 진행했고, 감사 결과 부실 사업 추진에 대한 제도 개선과 관련자에 대해 민·형사상 조치를 요구하고 징계 등 책임을 묻도록 요구했다”라고 밝혔다. 향군 홍보실 관계자는 “보훈처의 징계 요구에 대해서 향군 차원에서 적절히 조치를 한 것으로 안다”라면서 “(형사 고발된 사업개발본부 전 직원은) 향군 직원이 아니다. 산하 기업체 직원들이 (사업을 부당하게) 한 것이지 향군 직원이 관련된 것처럼 보면 안 된다. 자세한 내용은 감사를 한 보훈처에 물어 봐라”라고 말했다.

보훈처 국정감사를 준비하고 있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기식 의원(민주통합당)은 “향군의 각종 비리는 해마다 끊이지 않고 불거지지만 관리감독 의무가 있는 국가 기관은 책임 회피로 일관하고 있다”라면서 “향군이 투명하게 운영이 될 수 있도록 비리와 부실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따지고 근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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