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시험대에 오르다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n)
  • 승인 2012.08.07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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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순위 4위로 국내 대표적인 재벌 기업 중 하나인 LG그룹이 지금 최악의 위기에 몰려 있다. 실적이나 성장성 같은 주요 지표에 경고등이 켜져 있고, 수출 여건 등 주변 환경도 여의치 않다. 위기의 주범은 전자 계열 3총사이다. LG전자·LG디스플레이·LG이노텍 같은 전자 계열사가 그룹 전체 이익의 40%를 깎아먹고 있는 것이다. 세 업체의 순차입금은 2009년 말에 3조7천억원이었으나 지난해 말에는 9조7천억으로 늘어났다.

ⓒ 시사저널 사진자료

LG그룹은 지금 최악의 위기에 빠져 있다. 경기·실적·성장성 같은 주요 지표에서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다. 유로존 재정 위기와 중국의 경기 침체, 미국의 경기 회복세 둔화가 겹쳐지면서 수출 환경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영업이익률이 지속적으로 낮아지는가 하면 주력 계열사 상당수는 적자 누적으로 부채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핵심 제품의 시장 점유율은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LG그룹 산하 9개 상장사의 2분기 영업이익 합계는 1조3천7백20억원에 불과했다. 국내 5대 그룹사 가운데 4위이다. 1, 2위에 오른 삼성그룹(8조8천6백37억원)과 현대차그룹(5조3천억원)과는 갈수록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구본무 회장(오른쪽)이 임원들을 대동하고 생산 현장을 찾아 혁신을 독려하고 있다. ⓒ 시사저널 사진자료

맏형 격인 LG전자의 부진이 가장 심각

위기의 주범은 전자 계열 3총사이다. LG전자·LG디스플레이·LG이노텍 같은 전자 계열사가 그룹 전체 이익의 40%를 갉아먹고 있다. 세 업체의 순차입금은 2009년 말 3조7천억원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말에는 9조7천억원까지 치솟았다. 올해는 10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 침체로 인해 실적이 나빠진 측면이 없지 않지만 세 업체는 경쟁 업체와 비교해 적자 폭이 크고 사업 구조의 성장성도 훼손되고 있다. 가장 심각한 곳은 전자 계열 맏형 격인 LG전자이다. LG전자가 힘을 쓰지 못하니 LG디스플레이나 LG이노텍까지 맥을 못 추고 있다.    

LG전자는 지난해 영업이익률 0.5%를 기록했다. 매출액은 54조원이 넘지만 영업이익은 2천8백억원에 불과했다. 당기순이익은 4천3백28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나아지지 않았다. LG전자의 법인세 차감 전 이익은 1분기 3.7%에서 2분기 2.7%로 1%포인트 떨어졌다. 미국의 신용평가 기관 피치는 LG전자의 신용등급을 BBB로, 등급 전망은 부정적(negative)으로 유지했다. BBB는 투자 부적격 등급보다 2단계 위이다. 미국 신용평가 기관 무디스도 LG전자의 신용등급을 피치와 비슷한 등급인 Baa2에 올렸다. 신용평가 기관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LG전자 신용등급을 BBB-로 매겼다. S&P는 B등급을 ‘신용도가 취약하고 투기적 요소를 현저히 내재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LG측은 “그룹 전체의 위기로 단정할 순 없다”

이 탓에 LG전자 주가는 바닥을 헤매고 있다. 소현철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올해 주당순자산가치(BPS) 전망치는 7조6천2백76억원이다. 주가순자산비율(PBR) 추정치는 0.7배에 불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PBR이 0.7배라는 것은 LG전자가 지금 보유 자산을 장부가대로 내다 판 돈을 주주에게 보유 주식 수에 따라 나눠준다면 현재 주가보다 30%가량 많은 금액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LG전자의 PBR은 ‘몰락의 길을 걷는 휴대전화업계의 공룡’ 노키아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에 반해 삼성전자 PBR은 2배나 된다. 삼성전자는 자산 가치만큼 수익성이나 성장성을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LG전자의 실적을 갉아먹는 주범은 스마트폰이다. 피치는 지난 8월1일 ‘LG전자는 스마트폰 사업의 경쟁력이 떨어지다 보니 하반기 모바일 사업 부문에서 수익성 회복이 어렵다’라고 평가했다. 소현철 연구원은 “LG전자의 1분기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3.4%로 2011년 이후 가장 낮아 투자자의 우려가 심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피처폰까지 포함한 전체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도 지난해 1분기 5.6%에서 3.5%로 하락했다. 휴대전화사업부는 6분기 연속 영업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지난해 4분기와 1분기 소폭이나마 흑자로 돌아서는가 싶더니, 2분기에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세계 시장 점유율이 5%까지 올라야 LG전자 휴대전화사업부는 흑자 전환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 시장을 빼고는 LG전자의 스마트폰 판매량은 미미한 실정이다.

LG전자 휴대전화사업부는 2009년까지만 해도 1조2천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거두었다. 그러나 휴대전화 시장이 ‘아이폰 혁명’으로 스마트폰 위주로 재편되자 2010년에 6천5백80억원, 2011년에 2천8백6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TV(HE 부문)·가전(HA 부문)·에어컨(AE 부문) 사업부는 꾸준히 흑자를 내고 있다. LG전자의 전 세계 LCD TV 시장 점유율은 오르고 있다. 박원재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LG전자는 TV·가전·에어컨 사업에서 해마다 1조원 이상 이익을 내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LG의 한 임원은 “스마트폰 사업만 고전하고 있을 뿐 나머지 사업 부문은 삼성전자보다 실적이 낫다. LG전자나 그룹 차원의 위기라고 단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 휴대전화 사업이 성장 산업이고 매출 비중이 크다 보니 나머지 실적이 묻히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휴대전화(MC 부문)와 함께 독립사업부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독립사업부는 태양광 사업처럼 미래 신수종 사업으로 아직 투자 단계이므로 적자에 빠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64쪽 딸린 기사 참조). 스마트폰 사업이 부진하다 보니 부품이나 모듈 사업까지 악영향을 받고 있다.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 부진이 디스플레이나 카메라 모듈 사업 부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잘나가던 화학도 중국 경기 침체 영향 받아

LG전자의 3D TV를 시연하는 모습. ⓒ 시사저널 사진자료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9천2백43억원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올 상반기까지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6분기 연속 적자이다. 3분기에나 흑자로 전환할 것으로 점쳐진다. 오랫동안 적자가 누적되면서 현금 흐름이 나빠졌다.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말 (LG전자의) 현금 보유액은 1조5천억원이 넘었으나 올해 말에는 9천3백억원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부채 비율은 올해 말에는 1백57.6%까지 올라갈 것으로 추산된다. 1분기 부채 비율은 이미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9.3%포인트 올라 1백45.3%를 기록했다. 순차입금은 2조1천억원(6월 말 기준)이다.

LG디스플레이가 위기 탈출구로 기댈 곳은 애플이다. TV와 PC(퍼스널컴퓨터) 수요는 줄어들고 있으나 태블릿PC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가트너나 디스플레이서치는 ‘올해 PC, 노트북 컴퓨터, TV 시장 규모는 지난해보다 1백80억 달러 줄어들지만 태블릿PC 시장은 2백30억 달러 늘어난다’라고 추산했다. LG디스플레이는 뉴아이패드나 아이패드미니 같은 태블릿PC에 탑재되는 레티나디스플레이를 애플에 공급하고 있다. 박영주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전 세계 경기의 불확실성 탓에 기술 산업의 수요가 늘어날지 의심스럽고 계절적으로 성수기 효과가 강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에도 (LG디스플레이는) 애플 제품 출하가 늘어 하반기에는 완만하지만 실적이 회복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소현철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3분기에는 뉴아이패드와 아이폰5의 터치스크린 패널, 편광 방식 3D LED TV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가 늘어 영업이익 3천4백80억원을 거두면서 7분기 만에 흑자 전환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LG디스플레이의 PBR은 0.8배에 불과하다. 성장 가치는 고사하고 보유 자산보다도 주가가 낮게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부품·소재 업체 LG이노텍도 악전고투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사상 최고 실적 행진을 거듭하면서 삼성전기·삼성SDI 같은 부품·소재 업체가 아울러 성장하는 것과 달리 LG이노텍은 LG전자가 헤매다 보니 함께 고전하고 있다. 이종욱 삼성증권 연구원은 “전방 산업의 수요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주력 고객(LG전자)이 경쟁력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여 3분기 실적 전망이 밝지 않다”라고 밝혔다. 삼성전기는 지난해 영업이익 2천7백80억원을 거두었다. 이에 반해 LG이노텍은 6백7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주력 성장 산업으로 꼽는 LED 사업의 경쟁력도 경쟁 업체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 중견 LED(발광디바이스) 제조업체 소속의 한 연구원은 “삼성SDI LED 사업부의 경쟁력은 인정할 만하나 LG이노텍의 기술 수준이나 제품 경쟁력은 별 볼 일 없다”라고 말했다.  

“위기 상황에서는 카리스마 리더십이 유리”

그나마 화학 부문 계열사가 선전해 전자 계열사 적자를 보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로존 재정 위기와 중국의 경기 침체 탓에 화학 계열사의 실적이 줄어들고 있다. LG화학은 중국 수출 비중이 높다. 유럽이 중국산 석유화학 제품의 수입을 줄이자 중국 업체는 석유화학 소재나 중간재의 수입을 줄이고 있다. 이로 인해 LG화학의 실적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LG화학은 올해 영업이익 2조1천억원가량을 거둘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영업이익 2조8천3백50억원과 비교하면 7천억원 이상 떨어지는 셈이다. LG생활건강은 분기마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꾸준히 늘어나면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다만 매출액이 4조원을 넘지 않고 영업이익도 4천억원 안팎이다 보니 그룹 전체 실적에 대한 기여도는 낮다. 얼마 전부터 고가 화장품 매출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고 할인점 영업 일수가 축소된 것도 실적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구본무 회장도 LG그룹에게 닥칠 위기를 일찌감치 감지한 듯하다. 구회장은 연초 LG 새해 인사 모임에서 “올해가 사상 최대 위기이다. (LG는) 새 제품과 서비스를 내지 못하고 기술이 앞선 분야에서도 경쟁 기업에 추격당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구회장이 느끼는 위기감이 직원은커녕 임원에게마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인화나 안정을 중시하는 조직 분위기와 구본무 회장의 온화한 성품이 조직에 위기의식이나 긴장감을 부여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LG전자의 한 임원은 "이건희 회장이 호통 한번 치면 삼성은 그룹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더라. 얼마 전 이건희 회장이 사옥에 출근하면서 업무 분위기가 살벌해졌다고 한다. LG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구본무 회장이 호통을 치지 않을뿐더러 위기의식을 강조해도 워낙 온화한 성품과 부드러운 어조 탓에 강하게 다가오지 않는 듯하다. 지난 임원 세미나에서 구본무 회장이 평소와 달리 강도 높게 발언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임원조차 찾아보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경기 여건이 좋고 주력 사업이 호황이면 구본무 회장의 리더십은 빛을 발한다. LG그룹이 GS나 LS 같은 그룹을 별 탈 없이 원만하게 분리하고도 여전히 재계 4위를 유지한 데도 구본무 회장의 리더십이 기여한 바가 크다. ㈜LG의 한 임원은 “구본무 회장은 경영 일상에 깊이 관여하지 않고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기는 스타일이다. 의사 결정 체계의 정점에서 조직을 장악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이건희 회장이나 정몽구 회장의 리더십과는 거리가 멀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경제 위기로 사업 전망이 불투명하고 변화에 빠르게 대처해야 하는 IT 업종에서 구본무 회장의 합리적 리더십이 여전히 유효할까? 이상호 연세대 교수는 저서 <리더십의 역사와 전망>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요청하는 상황에서 카리스마 리더십은 유리하다. 조직이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카리스마 리더십은 그 진가를 발휘한다’라고 밝혔다. 카리스마 리더십은 긴급하고 어려운 환경에 적합하다. 효율적이면서도 단기 성과 창출에도 유리하고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임직원의 열정을 한 곳으로 모으기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구본무 회장의 온화한 리더십보다 이건희 회장이나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처럼 카리스마나 가부장적 권위 체계에 기초한 리더십이 적합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국내 기업집단 가운데 삼성·현대차 그룹만이 사상 최고의 실적을 거두고 있다. 스티브 잡스 전 애플 회장이 카리스마 리더십으로 애플을 세계 최대 IT업체로 키웠다. 이상호 교수는 “스티브 잡스는 배려와 참여를 허용하지 않는 지시적 카리스마 리더십의 전형이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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