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일당백’ 뒤에 숨겨진 약발은?
  • 기영노│스포츠평론가 ()
  • 승인 2012.08.08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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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명 출전해 대회 초반 연속 금메달로 깜짝 돌풍…집중 투자·초특급 대우가 주효

런던올림픽 개막식에서 인공기를 흔들며 입장하는 북한 선수단. ⓒ 연합뉴스

북한은 런던올림픽에 ‘선택과 집중’, 즉 소수 정예부대로 11종목에 56명의 선수를 출전시키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일당백’ 역할을 하고 있어서 세계 스포츠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이들이 따는 메달 숫자보다 경기 내용이 더욱 놀랍다.

여자 유도 52kg급의 안금애 선수는 마치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세계 유도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계순희가 다시 환생한 듯, 막강한 파워와 세련된 기술로 상대 선수를 제압했다. 림정심 선수는 여자 역도 69kg급 결승에서 인상 1백15kg, 용상 1백46kg을 들어 합계 2백61kg으로 2위 루마니아의 다니엘라 록산나 코코스를 5㎏ 차로 따돌리고 금메달을 따냈다.

남자 역도 선수는 더 막강했다. 56kg급의 엄윤철은 용상에서 세계 타이 기록(1백68kg)을 세우며 금메달을 획득했고, 62kg급의 김은국 선수는 합계 3백27kg의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2위 선수와의 차이를 9kg이나 벌리며 금메달을 땄다. 북한은 이번 런던 대회에서 역대 최고 성적인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금메달 4개, 동메달 5개로 종합 16위) 때의 성적을 넘어 설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북한 스포츠가 이같이 강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스포츠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투자를 꼽을 수 있다. 김정은은 스위스 유학 당시 주말마다 3 대 3 농구를 즐겼고, 축구 경기도 자주 관람했다. 김정은은 이번 런던올림픽에 여섯 명의 방송단을 현지에 파견하도록 했고, 그들은 태평양방송연맹(ABU)으로부터 제작과 송출을 지원받아서 총 2백 시간 이상 지상파 중계를 내보내고 있다.

또한 사상 처음으로 8월29일부터 시작되는 런던장애인올림픽, 즉 런던패럴림픽에도 출전하기로 했다. 이처럼 북한 최고의 지도자인 김정은의 스포츠에 대한 막대한 지원과 계순희(유도)·김광덕(역도) 등 1급 지도자들의 헌신적인 지도가 북한 스포츠를 강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북한 체제가 가지고 있는 스포츠 영웅에 대한 상상을 초월한 초특급 대우를 꼽을 수 있다.

북한은 모든 선수가 직장에 속해 있다. 따라서 성인 체육인들은 모두 4·25체육단, 2·8체육단, 기관차체육단 등 직장에 속해 있으면서 일과 후에 운동을 한다. 직장 체육인은 우리나라의 국가대표 격인 ‘체육 명수’가 되는 것이 1차 목표이다. 체육 명수가 되어야만 아시안게임·올림픽·월드컵 등 국제 대회에 출전해서 공을 세워 공훈체육인, 나아가서 인민체육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훈체육인이라는 호칭은 아시안게임 또는 아시아선수권대회나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거나, 세계선수권대회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선수에게 붙여진다.

그리고 인민체육인 칭호는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거나 북한 체육 발전을 위해 혁혁한 공을 세운 선수를 말하는데,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여자 유도 52kg급 금메달리스트 계순희, 1999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정선옥 그리고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고 있는 정대세 등에게 붙여졌다.

북한의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은국(역도 ⓒ EPA연합), 엄윤철(유도 ⓒ 연합뉴스), 안금애(유도 ⓒ AP연합).

인민체육인에게는 고급 아파트와 차 등 제공

인민체육인 칭호가 붙으면 고급 아파트와 외제차, 평생 연봉이 지급된다. 북한에서는 그야말로 더 이상 바랄 수 없는 명예와 부를 챙기게 되는 것이다. 이번 런던 대회 금메달리스트인 안금애·엄윤철·김은국·림정심 등도 사상 검증을 통과하면 인민체육인 칭호를 받게 된다.

세 번째는 체육 명수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집중적인 투자이다.

북한은 체육 명수 가운데서 가능성이 있는 선수를 선발해서 스포츠 선진국인 러시아와 중국에 보내 집중적으로 훈련을 받게 하거나, 코치를 초청해서 훈련을 받도록 한다. 그들 가운데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다고 판단되는 선수들만 국제 무대에 출전시킨다. 이번 런던올림픽도 예선을 통과하거나 출전권을 확보한 선수가 더 있었지만, 메달 획득 가능성이 있거나, 차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선수만을 선발했다.

북한은 앞으로도 금메달을 추가할 여지가 있다. 북한은 레슬링 자유형이 강한데, 오는 8월10일 남자 자유형 55kg급의 양정일 선수가 금메달에 도전한다. 복싱과 여자 마라톤 등에도 기대를 하고 있다.

북한이 선택과 집중을 통해 50여 명의 선수로 세계 20위권의 성적을 올리고 있는 반면, 한국은 무려 3백74명(경기 임원 93명, 본부 임원 36명, 선수 2백45명)을 파견해서 종합 10위 이내를 노리고 있다.

한국은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선수는 비록 그 선수가 최하위에 머무를 것이 확실시되더라도 경험을 쌓으라는 명분으로 모두 출전시켰다. 남자 역도 62kg급의 지훈민은 인상에서 1백38kg을 들었지만, 용상에서 세 번 모두 실패해 아예 기록이 없다. 지훈민은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도 역시 인상 기록만 있을 뿐 용상에서 세 차례 모두 실패했다. 북한의 엄윤철은 인상에서 지훈민보다 무려 15kg이나 무거운 1백53kg을 들었고, 용상에서는 1백74kg을 기록해 합계 3백27kg의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1인당 수억 원의 국민 혈세를 들여 장기간 훈련을 시키고 올림픽에 파견한 수영의 최혜라(접영·개인혼영), 최규웅(평영), 백수연·정다래(평영), 사이클의 박성백 등은 모두 자기 기록도 내지 못하고 예선 탈락하거나 기권했다. 이번 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육상에서는 더욱 실망스런 기록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과 북한의 올림픽 맞대결 역사

북한이 올림픽 무대에 처음 나온 것은 1972년 뮌헨올림픽이었다. 당시 한국은 올림픽 첫 금메달에 목말라 하고 있었는데, 북한은 소구경 속사에서 이호준 선수가 5백99점을 쏴 금메달을 획득했다. 한국의 최홍석 선수는 5백89점으로 60위에 머물렀다. 당시 이호준은 “김일성 주석이 ‘사격지 표적을 원수로 생각하고 쏘아’라고 지시했기 때문에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뮌헨 대회에서 남북은 여자 배구 3, 4위전에서 정면으로 충돌해 북한이 한국에 3 대 0으로 이겨 동메달을 땄다. 북한은 뮌헨올림픽에서 첫 금메달과 구기 종목 첫 메달을 따면서 금1-은1-동3개로, 은메달 1개에 그친 한국을 제쳤다.

이후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한국이 양정모의 금메달을 비롯해서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4개(북한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로 북한을 제친 이후,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 까지 모두 한국이 북한에 우위를 보이고 있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도 결국 한국이 북한보다 더 많은 메달을 따겠지만, 북한은 역도 종목에서 세계신기록 등을 세우며 질 좋은 메달을 따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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