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심이 변형된 것일까 콤플렉스의 반영일까
  • 이나미│신경정신과 전문의 ()
  • 승인 2012.08.25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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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국민들이 보이는 집단 무의식의 실체

ⓒ honeypapa@naver.com

조선 시대만 해도 통성명은 간단했다. 남자라면 어디 무슨 씨 무슨 파, 몇대 손이라고 말하고, 여자라면 어디에서 온 누구 집 안사람이나 여식이라고 답하면 그만이었다.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자기 소개에는 몇 가지가 더해진다. 어느 학교를 나왔고, 직장은 어디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가문이나 고향 말고도 어떤 사람에 대한 파악과 평가를 할 수 있는 잣대가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병합하게 되고, 일본뿐 아니라 외국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조선인’이라는 민족 개념이 들어간다. 최근에는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발달과 여행의 자유화로 세계가 좁아지면서 ‘한국인’이라는 항목이 중요한 자기 정체성의 한 축이 되었다. 해외에 나가면 “한국인이세요?”라는 질문을 누구나 받는다. 사실 한 개인을 규정하는 정체성(Identity)에 국가나 민족이 중요한 항목이 된 것은 근대 이후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식민지 경쟁이 극심한 근대 이전까지는 국경이 명확하지 않았고, 미국 독립전쟁이나 프랑스 혁명 이전까지는 ‘국가’라는 개념이 확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독도 문제와 센카쿠 열도 문제 등으로 국가 간 ‘충돌’ 일으킬 수 있어

세계가 점점 좁아지면서 외국인들과의 소통이나 접촉이 늘어나지만, 이 때문에 갈등이 일어날 확률도 높다. 전쟁이나 봉기가 아니더라도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국가 대 국가가 집단적으로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총칼 없이 매스컴과 사이버 세계에서 싸우는 양상이다. 최근 독도나 센카쿠 열도 등을 놓고 한·중·일이 싸우는 양상도 그 선상에 있다.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은 뜨겁게 자신들의 애국심을 표현하고, 노인들은 완고한 고집으로 자신들의 애국심을 드러낸다. 얼핏, 모든 애국심은 매우 감동적이고 자기희생적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국가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가에 대한 개인의 희생은 모든 사람의 안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예컨대 외세가 우리나라를 침탈할 때 자기 목숨을 기꺼이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많은 나라가 이길 확률이 높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꽁무니를 빼는 겁쟁이들이 많은 나라가 전쟁에서 이기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국가 간 갈등을 일으키는 모든 개인이 반드시 순수하고 성스러운 이유만 갖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역사를 보면, 지도층의 권력 유지가 불안할 때, 나라 재정이 피폐할 때, 사회에 대한 불만이 오랫동안 쌓여 있을 때, 권력자들은 종종 민중들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외부로 돌려왔다.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와 무솔리니와 일본 천황이 그랬고, 이라크 전쟁 때 부시 부자가 그랬고, 북한의 김일성 3대가 아직도 그러고 있다. 살기가 팍팍한 민중들의 분노는 외부의 적이라는 공동의 타깃으로 향하게 되고 상대적으로 정권을 잡고 있는 이들은 자체 내 혁명이 일어나 뒤집어지는 것보다는 바깥의 적과 싸우면서 자신의 안위를 보장하려 한다. 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일반인들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와 싸워 자신의 폭력성을 풀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평화로운 사회에서 자칫 살인마가 될 수 있지만, 전쟁터에 나가면 전쟁 영웅으로 거듭날 수도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읽고 공부한 분석심리학자 체 게 융은 ‘자아 정체성’의 한 축으로서의 ‘국가관’에 ‘집단의식과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더했다. 쉽게 풀어 이야기하자면 집단의식은 한 집단이 공유하는 기억·의지·생각 등 의식 수준에서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들이다. 예컨대 한국인으로서의 집단의식은 한국 역사와 한국 사회를 같이 겪는 사람으로서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이다. 국기나 애국가에 존경을 표하고, 한국이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 이기면 같이 기뻐하는 마음이다. ‘집단 무의식’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의식 수준에서는 명확히 알 수 없으나, 때로 예고 없이 불쑥 튀어나와 사람들의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다. 예컨대 평소에는 순진하고 상냥했던 흑인들이 LA 폭동에서처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한국인들의 집과 가게를 부수는 행동은 흑인들의 ‘집단 무의식’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지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자부하는 독일 국민들이 나치의 주술에 빠져 유대인에 대한 인종 청소를 자행했던 것도 역시 독일 국민들의 ‘집단 무의식’에 있는 인종 콤플렉스를 보아야 이해할 수 있다.

평소에는 한국인이나 중국인에게 더 없이 상냥하고 예의 바르던 일본인들이 갑자기 극우파의 행동에 동조해서 국가 간의 분쟁을 일으키는 것 역시 일본인들의 ‘집단 무의식’ 때문이다. 특히 천황이라는 존재는 일본인들의 집단 정신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대상이라 외국인들이 건드리면 발끈한다. 비유를 하자면, 누군가에게 “당신 부모는 문제가 많다”라고 말한다면 객관적으로 그런 지적이 옳다 해도, 상대방이 버럭 화를 낼 것이다. 일본에게 천황은 아버지 그 이상이다. 21세기에 테크놀로지가 발달되어 있는 일본에서 어떻게 전근대적인 천황제에 그리 집착하느냐 할 수 있느냐고 의아해할 수 있다. 그러나 천황을 아버지나 신이라 생각하는 것도 일본의 선택이고 그들의 상황이다. “너는 왜 그런 부모와 아직도 같이 사느냐”라고 그 누구에게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의식은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쉽게 따라가지 않는다.

가짜 애국자는 자기 욕심 채우는 데 자국민의 집단 무의식 이용하기도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그런 집단 무의식에서 자유로운가. 그렇지 않다. 한국인 역시 일본인 못지않게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산다. 예컨대 서구의 유명 브랜드 집착, 서구 대학이나 석학들에 대한 일방적인 짝사랑, 우리 것은 폄하하고 서양 것은 우월하게 보는 태도 등은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에 숨어 있는 ‘서양 콤플렉스’ 때문이다. 일본인이나 중국인이 우리 국토를 침탈한 과거의 역사 때문에 꼭 무의식까지 가지 않아도 ‘집단의식’ 속에 있는 반중·반일 감정은 충분히 이해할 사항이다. 그러나 집단 무의식 속에 있는 일본·중국·미국에 대한 콤플렉스는 훨씬 더 복잡하고 비이성적일 수 있다. 조선 시대 이전까지 오랫동안 중국 것이라면 무조건 우러러 보던 사대주의, 일제 강점기 때, 일본 문화를 동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질투하고 미워하던 그 복잡했던 감정, 광복 이후 모든 것을 빅브라더처럼 봐주었던 미국에 대한 선망과 열등감 등이 우리의 애국심에는 복잡하게 섞여 있다.

이렇게 보면 애국심 역시 단순하게 결론 내릴 수 없는 심리적 연구 과제이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일견 아름답지만, 동시에 종종 추하게 변할 수 있다. 애국심 역시 변형되고 타락할 수 있다. 상대에게 너무 집착해 나와 주변을 모두 파괴해버리는 욕심,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주변에 폐를 끼치는 이기심까지 모두 면죄부를 받을 수 없듯이 나라 사랑하는 마음도 항상 무죄는 아니다. 자기를 희생하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다고 강변하지만 사실은 나라에 폐를 끼치는 자칭 애국지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예컨대 알카에다의 수장이었던 오사마 빈 라덴을 보자. 부잣집 자식으로 충분히 호의호식할 수 있는 사람이 동굴에 은신하면서 테러와의 전쟁에 맞섰다. 서방 세계에서 빈 라덴은 테러리스트지만, 알카에다의 입장에서는 감동적인 희생적 애국자이다.

한·일 합병을 주도했고 일본 헌법을 제정하는 등 일본의 근대화에 큰 공을 세운 이토 히로부미는, 죽어서도 일본 쪽에서는 충정군이라는 높은 칭호를 받았다. 그러나 한국과 동아시아인들에게는 끔찍한 전범이다. 대한 의군 참모 중장 안중근 의사가 그를 죽인 것을 국제 사회에서 살인이라 보지 않는 이유이다. 히틀러나 무솔리니와 그 주변 사람들은 스스로를 애국자로 포장했지만, 자기 나라에 어마어마한 손해를 입혔다. 이런 가짜 애국자들은 국민들의 허약한 자기 정체성, 불안한 사회 내의 응집력, 경제적 불만들을 이용해 자기의 욕심을 더 채운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독일의 철학자 피히테, 스펭글러, 헤겔, 하이데거 그리고 작곡가 바그너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직·간접으로 군국주의의 발흥을 도왔다.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이 좀 더 냉정해야 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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