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리스트는 무엇을 물려받았길래 타고난다는 것일까
  • 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2.08.25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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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과학 저널에 발표된 연구 결과 “해당 종목에 맞는 유전자 변이 가진 선수들이 성공”

기보배. ⓒ 연합뉴스

런던올림픽이 끝났다. 17일 동안 거의 매일 밤 선수들의 경기 장면을 TV로 지켜보면서 선수들은 정말 우리 일반인들과는 선천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100m를 9초대에 달리거나 42.195㎞를 2시간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주파하는 등 월등한 운동 능력을 가진 선수들은 실제로 ‘타고난다’는 점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최근 영국의 과학 저널 <네이처>에는 ‘인간의 특정 유전자가 그 사람의 운동 능력을 결정한다’는 미국의 생명과학 연구회사 엑셀벤처매니지먼트의 연구 내용이 실렸다. 올림픽 선수들은 해당 종목에 맞는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어 그 분야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변이 유전자가 없는 사람은 운동선수로서도 적합하지 않을뿐더러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성공할 수 없다는 얘기이다. 스포츠과학자들은 이처럼 운동 능력과 관련된 유전자가 2백가지가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선수가 원천적으로 어떤 유전 형질을 가지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일이 스포츠에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운동선수와 유전자는 과연 어떻게 연관되어 있을까?

스포츠에서 유전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근육이다. 몸을 움직이는 원동력일 뿐 아니라 사람을 구성하는 조직 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근육은 수축 속도에 따라 두 가지로 구분된다. 수축 속도가 느린 지근(slow-twitch muscles)과 수축 속도가 빠른 속근(fast-twitch muscles)이 그것이다. 지근은 지구력이 좋지만 수축 속도가 느리고, 속근은 아주 빠르게 수축하지만 지구력이 부족하다.

유산소 운동에 적합한 근육을 결정하는 신경섬유

지근은 유산소 운동에 적합한 근육이다. 모세혈관이 촘촘히 박혀 있고 미토콘드리아가 많이 분포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속근에는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도 당을 분해할 수 있는 효소가 다량 들어 있어 순간적인 동작에 유리하다. 실제로 단거리 선수의 근육은 대부분 속근으로 이루어져 있고, 장거리 선수의 근육은 90% 정도가 지근이다. 이런 근육의 성격을 원천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신경섬유이다. 어느 신경섬유가 근다발에 꽂혀 있는가에 따라 지근인지 속근인지가 결정된다. 과학자들은 이 신경세포의 분포가 유전에 따른다고 설명한다.

근육 하면 트랙을 질주하는 단거리 육상 선수들을 빼놓을 수 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순간적 근력이 중요한 단거리 경주를 휩쓸고 있는 선수들은 대부분 서아프리카계의 흑인이라는 점이다. 육체적 능력이 결과를 가장 크게 좌우하는 종목인 100m의 상위 기록 5백개를 보면 여섯 개를 제외하고 모두 서아프리카계 흑인들이 세운 것이다. 이들 흑인은 속근이 67.5%인 반면, 백인은 평균 59%이다. 그만큼 근육이 순간적인 스피드를 내는 데 유리하게 조성되어 있어 다른 인종이 이들을 능가하기가 쉽지 않다.

서아프리카계 흑인 선수들은 또 좋은 신체 구조를 갖추고 있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뼈밀도가 높은 반면 체지방이 적다. 엉덩이도 좁고 허벅지가 굵은 대신 다리가 가늘고 길며 장딴지가 더 가볍다. 같은 키와 체중에서 체지방이 적다는 것은 근육의 비율이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더 많은 힘을 낼 수 있다. 또 그들의 골격근에는 에너지를 많이 뿜어내는 데 도움이 되는 효소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더 집중되어 있다는 점도 밝혀졌는데, 이런 경향은 모두 유전적 요인 때문이다.

육상에서 단거리 선수와 장거리 선수의 유전자는 달라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가 달리는 모습을 보면 과연 그가 우리와 같은 종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오늘날 100m는 0.01초, 즉 10cm의 승부이다. 10초를 기준으로 할 때 0.1%의 차이에 불과하다. 이처럼 단거리 스피드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는 무엇일까?

호주 시드니 웨스트미드 어린이병원 신경근육연구소 캐서린 노스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이봉주 같은 마라토너와 우사인 볼트 같은 단거리 육상 선수는 서로 다른 유형의 운동 관련 유전자를 갖는다. 노스 박사가 찾아낸 운동 관련 유전자는 ACTN3. 이 유전자에 R형과 X형이라는 서로 다른 두 유형이 있다. R형은 단거리 선수처럼 폭발적인 속도와 힘을 내는 데 도움이 되는 근섬유를 형성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반면, X형은 그것을 만들지 못한다.

모든 사람은 염색체가 쌍으로 존재하므로 R형 유전자 둘, R형 유전자 하나와 X형 유전자 하나, 또는 X형 유전자 둘 가운데 한 쌍의 유형을 갖는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아프리카 사람들은 85%가 유전자 한 쌍 가운데 적어도 하나가 R형인 반면 유럽과 아시아 사람들은 50%만 이에 해당한다. 이는 유럽과 우리나라 사람 절반은 R형을 가지고 있지 않아 단거리 종목에 약하다는 얘기가 된다.

노스 박사는 각국의 뛰어난 운동선수 3백명을 대상으로 유전자 검사를 했다. 그 결과 단거리 선수의 95%가 적어도 R형 유전자 하나를 가졌고, 장거리 선수는 76%를 가졌다. 반면 단거리 선수의 50%, 장거리 선수의 69%가 적어도 하나의 X형 유전자를 가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지구력을 필요로 하는 장거리 육상 선수들에게 해당하는 우수한 유전자는 무엇일까. 이것은 지구력 유전자 ‘안지오텐신 변환 효소(ACE)’와 관련 있다는 것이 영국 몽고메리 박사의 설명이다. 이 효소(단백질)는 혈압과 인체의 대사 기능을 조절하고, 인체가 산소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이용하는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ACE에는 효소 활성이 높은 D형과 낮은 I형이 있다. I형은 지구력을 보장한다. 염색체는 쌍으로 존재하므로 우리는 II형, ID형, DD형 세 가지 유전자형 가운데 하나를 갖는다.

몽고메리 박사는 7천m 이상의 높은 산을 산소 없이 오른 경험이 있는 산악등반가 25명을 선발해 건강한 일반인 1천9백명과 ACE 유전자를 비교했다. 그 결과 일반인들은 II형이 25%, ID형이 50%, DD형이 25%로 나타났다. 그러나 극한의 지구력을 가진 산악등반가들 가운데는 II형을 지닌 사람이 DD형보다 다섯 배 정도 많았다.

ACE 유전자는 운동선수들에게서도 같은 현상을 나타냈다. 국민대 체육학부 이대택 교수는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리듬 체조, 배구, 축구 등의 종목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의 대표급 선수들에 대해 ACE 유전자를 연구했다. 그 결과 선수들의 종목·연령·성별에 관계없이 차이가 없었지만 육상의 경우는 달랐다. 중·장거리 선수들은 거의 II형인 것으로 밝혀진 것. 이는 DD형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지구력이 필요한 종목을 택할 경우 똑같이 훈련을 받아도 뒤처질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육상 종목에서 남자 장거리 경기는 케냐 선수들의 독무대이다. 현재 마라톤과 하프마라톤을 비롯해 25km, 20km, 15km, 3천m 등의 경기에서 세계 기록을 휩쓸고 있다. 당연히 이들 나라 선수들의 경우도 거의 II형의 유전자를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격투기나 양궁에서 메달을 많이 따는 이유

그렇다면 체구가 작은 우리나라 선수들은 어떤 종목에 유리한 유전자를 가졌을까. 한반도라는 유전자 풀에서 형성된 한국인 역시 한국인만의 신체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다리는 흔히 말하는 ‘조선무 다리’이다. 종아리는 굵고 발목이 가늘다. 둔근(엉덩이 근육)은 크지만 대둔근의 부착점이 낮아 무릎을 구부릴 때 힘이 덜 든다. 다리 중에서도 특히 하퇴(정강이)의 근육이 크고 아래로 길게 붙어 있다.

허리는 옆에서 보면 두텁고 단면이 둥글다. 따라서 몸통을 굽히거나 펴고 돌리는 움직임이 쉽다. 또 허리가 굵으면 복부의 내외 복사근의 근력 전달이 좋아진다. 게다가 흉곽의 하단이 넓어져 10번 늑골이 긴 지렛대를 가진 결과가 되어 몸통을 돌리는 힘이 증가한다.

한국체육과학연구원 박동호 박사에 따르면, 이런 신체적 조건과 함께 세로토닌 운반체 유전자(5-HTT 유전자) 연구를 통해서 볼 때 우리 선수들은 공격성이 요구되는 권투나 레슬링 같은 격투기 종목에 유리하다고 한다. 박동호 박사는 2001년부터 우수 운동 능력 보유자를 발굴하기 위한 유전자 연구를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일반인 24명과 운동선수 76명을 대상으로 특히 5-HTT 유전자의 유형을 조사해왔다. 운동 능력과 관련해 세로토닌을 연구한 사람은 박동호 박사가 처음이다. 이 유전자의 유형에는 S형과 L형이 있다. SS형은 공격성이 강한 사람에게, LL형은 만성피로증후군 환자에게 많다.

세로토닌은 신체를 조용한 각성 상태로 이끌어 체력적 한계에 도전할 수 있는 발판 역할을 한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세로토닌이 적게 분비되면 자살, 폭력, 우울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박동호 박사의 연구 결과에서도 장거리 육상 선수에게는 SS형이 많이 나타났고, LL형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장거리 선수는 물리적인 체력(지구력)뿐 아니라 정신적인 능력(공격성)도 뛰어나다는 점을 시사하는 증거라는 것이 박동호 박사의 설명이다. 또 학계 자료에서도 한국인은 SS형이 외국인보다 많이 나타나고 있다.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유도나 레슬링, 권투와 같은 격투기 종목에서 메달을 많이 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유독 한국인은 양궁을 잘한다. 그 이유가 있을까. 아직 양궁 선수들의 유전자에 대해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밝혀진 사실은 없다. 물론 뼈를 깎는 노력과 체계적인 훈련 노하우가 있기 때문이겠지만, 분명히 특이한 한국인의 활쏘기 유전자도 물려받았을 것이다.

앞으로 올림픽 경기에서는 ‘유전자 조작’이 새로운 도핑이 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근육을 만드는 유전자를 세포에 주입하면 근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과학 저널 <네이처>는 올림픽에서 육상과 사이클 종목에 유전자 조작 선수가 등장할지 모른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하지만 운동선수가 만들어낸 신기록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유는 그 숫자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오랜 땀방울 때문이 아닐까.  


양학선 선수의 도마 경기 모습. ⓒ 연합뉴스
1964년 올림픽 크로스컨트리 스키 종목에서 메달을 7개나 딴 핀란드의 이에로 멘티란타 선수는 적혈구 생성 인자(erythropoietin)의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아주 드문 변이이다. 적혈구 생성 인자는 적혈구를 만들라는 신호를 주는 단백질이다.

스포츠과학자들은 멘티란타가 놀라운 스태미너를 갖는 이유는, 이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적혈구가 일반인에 비해 훨씬 많이 만들어져 산소를 운반하는 능력이 25~50%나 더 강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영국의 브루넬 대학 스포츠과학자인 크래이그 샤프는 ‘위대한 운동선수는 생리적인 변종이다’라는 말로 운동선수와 유전자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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