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벌 수위 놓고 거세지는 ‘거세’ 논란
  • 김회권·이규대 기자 ()
  • 승인 2012.09.11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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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와 ‘징벌’, ‘사회 안전’과 ‘인권 침해’ 등 싸고 찬반 팽팽히 맞서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성폭력 사건이 최근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사회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고심이 깊다. 특히 그 구체적인 방법론을 두고서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는 ‘화학적 거세’가 있다. 화학적 거세란 성욕을 억제시키는 약물을 주기적으로 투여해 성범죄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것을 말한다. 전자 발찌, 성범죄자 신상 공개 등의 제도적 수단이 강력 성범죄를 억제하는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아예 가해자의 성적 욕구를 감퇴시키는 방향이 주목받게 된 것이다.

2011년 7월부터 시행된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 치료에 관한 법률’에서는 16세 미만 피해자 상대 성폭력범에게만 화학적 거세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19세 미만 피해자 상대 성폭력범에게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마저도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다. 모든 성범죄자에게 화학적 거세를 실시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반면 화학적 거세 확대에 반대하는 이들은 인권 침해나 부작용 등 여러 문제가 있으며, 성범죄 문제에 대응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스웨덴·덴마크 사례를 근거로 들어

화학적 거세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치료’의 성격이 강하다는 입장이다. 물리적 거세와는 달리 성욕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킬 뿐이기 때문에, 인권 침해라고 보기 어렵다고도 말한다. 성폭력 범죄를 줄여야 할 현실적인 필요성을 고려하면 이 정도의 기본권 제한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종민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다른 대안보다 인권이 더 침해된다고 보기 어렵다. 수술적 거세는 되돌릴 수 없지만 화학적 거세는 재범 위험이 없어졌다고 판단되면 약을 끊고 원래 상태로 돌아올 수 있다. 성범죄자 입장에서는 성욕이 줄어들지라도 직업 생활 등 일상 활동에서 다른 욕구를 충족하면서 살 수 있다. 약간의 권리를 제한하는 대신 다수의 인권을 지키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화학적 거세의 제도적 실효성에 대해서도 높게 평가한다. 스웨덴·덴마크 등 관련 제도를 도입한 국가들의 성범죄 재범률이 낮아졌다는 점이 주된 근거로 활용된다. 새누리당 ‘아동여성 성범죄 근절 특위’의 위원장인 김희정 의원은 미국 오리건 주의 사례를 들어 “외국에서도 성충동 약물 치료의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지난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미국 오리건 주에서 화학적 거세를 한 범죄자 55명과 하지 않은 범죄자 79명의 재범률을 비교 조사한 결과, 거세를 하지 않은 79명 중 재범을 저지른 이가 10명(18.2%)이었던 반면, 거세를 한 55명 중에는 아예 없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화학적 거세의 확대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징벌’의 성격이 강하다고 본다. 유력한 근거로는 현행법상 화학적 거세가 당사자 동의가 없이 가능하다는 점이 꼽힌다. 스웨덴·덴마크 등의 국가들은 당사자의 동의를 거쳐야 화학적 거세를 할 수 있는 반면, 우리는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징벌적 성격을 벗지 못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만큼, 인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의 확대 적용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약물 투여에 따른 부작용도 우려의 대상이다.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항남성호르몬의 장기 사용이 골감소증, 골다공증, 권태감 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장기적으로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을지는 아직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치료 효과 면에서도 특정한 유형의 성범죄자에 대해서만 효과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성범죄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해 발생하는데, 약물을 통한 치료가 가능한 것은 일부의 경우에 국한된다는 것이다. 화학적 거세가 일부 성범죄자에 대한 ‘낙인찍기’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성폭력의 원인을 사회 구조적 차원 대신 범죄자 개인의 정신적 문제로만 몰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물리적 거세’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와

최근의 ‘거세’ 논란은 급기야 ‘물리적 거세’로까지 옮겨붙었다. 지난 9월5일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 등 19명의 국회의원은 교화나 재활을 기대할 수 없고, 재범 발생 위험성이 큰 성범죄자를 물리적으로 거세하는 제도적 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다(아래 상자 기사 참조). 흉악범들에 대한 분노와 공포 탓에,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여론이 상당수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인권 침해의 소지가 많은 ‘신체 절단형’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두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강하게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우리 법체계에서는 신체형을 금지하고 있다. 헌법에서 규정하는 인간 존엄성을 침해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18대 국회에서 동일한 취지의 법안이 제출되었을 때, 국가인권위원회는 “거세 대상자의 인간의 존엄성, 나아가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하고, 국회의장에게 형사 제재의 한 방법으로 외과적 거세를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물리적 거세라는 ‘극형’까지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걱정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지영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자극적인 사건에만 집중하니 직장·사회 내에서의 일상적인 성폭력 문제는 도외시되기 쉽다. 성폭력을 ‘소수의 괴물’만이 저지르는 것으로 왜곡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박인숙 의원실 제공
법안의 정확한 명칭은 ‘성폭력 범죄자의 외과적 치료에 관한 법률안’이다. 하지만 세간에는 ‘물리적 거세 법안’으로 더욱 유명하다. ‘성폭행범의 고환을 제거해야 한다’라는 내용의 강력한 법안을 발의한 박인숙 새누리당 의원은 “나도 이렇게 이슈가 될지 몰랐다. 확고하게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번 법안에 대해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

여자들은 압도적으로 찬성하고. 남자들도 일부 찬성하는 분위기이다.

물리적 거세가 왜 필요한가?

오해가 있다. 모든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형벌의 종류에 하나의 옵션으로 거세를 넣은 것이다. 심리 치료 등 모든 치료가 안 되고 교화가 불가능한 사람을 전문가가 결정하고 동의를 받아서 시행한다는 내용이다.

민주당 유승희 의원이 이번 법안을 두고 “인기 영합적이다”라고 비판했다.

나는 의사이다. 평생 이런 환자들을 보아왔다. 이것 한 법안만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예방 차원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주변 1km 이내에 전자 발찌 착용자의 신상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법안도 함께 냈다. 민주당 여성 의원들이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인기 영합적이라는 말은 무책임하다. 아무 법안도 내지 말라는 이야기인가.

지나친 인권 침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피해자를 만나 보니 4중의 피해를 입는다. 신체적인 손상이 너무 심하다. 기억을 지워버리려고 애쓰다가 뇌 손상이 생긴다는 결과가 있다. 그런 손상을 회복하기 위해 수술과 심리 치료를 수차례 받으면서 재정적 부담을 져야 한다. 게다가 가해자가 받은 솜방망이 처벌로 심리적인 상처도 받는다. 이런 피해자의 인권과 가해자의 인권을 어떻게 한 잣대로 잴 수 있나.

유럽에서는 물리적 거세를 ‘신체 절단형’이라는 이유에서 고문으로 규정한다.

맹장도 떼지만 절단이라고 안 한다. 다리 같은 곳은 눈으로 보이니 절단이라고 한다. 손목 잘린 사람과 고환 없는 사람이 어떻게 같나. ‘신체 절단’이라는 말로 선정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있다. 의사와 의사 아닌 사람의 개념이 다른 것이다.

어느 정도의 범죄 억제 효과를 예상하고 있나?

연구 사례가 체코에 딱 하나 있다. 거세한 90여 명 중 재범 사례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사실 억제 효과는 이론적이라 아무도 모른다. 더 포악하게 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면 안 된다. 부작용 때문에 약을 안 쓰면 결국 환자는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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