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단일화’만 되면 만사형통?
  • 양정대│한국일보 기자 ()
  • 승인 2012.10.16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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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안팎에서 “불가능” “효과 없다” 등 회의론 ‘솔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10월27일 국회 민주통합당 당 대표실에서 열린 담쟁이 캠프 1차회의에 참석했다. ⓒ 문재인 제공
오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야권에서 후보 단일화가 최대 화두가 된 것은 승리의 보증수표라는 판단 때문이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3자 구도로 가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대권을 헌납하겠지만,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단일화하면 100% 정권 교체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단일화 지상주의’는 몇 가지 함정을 가지고 있다. 당장 단일화 자체가 가능할 것이냐의 문제가 있다. 이것은 당위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이다. 단일화가 안 되었을 경우 엄청난 후유증을 겪을 수도 있다. 또,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에도 물음표가 붙는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극적인 성사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모두가 단일화를 떠들고 있는 마당에 과연 실제 득표에 도움이 되겠느냐는 의문이 그것이다.

본질적으로는 어떤 명분과 설명에도 단일화가 결국은 정치 공학적 접근이라는 점이다. 문후보가 얘기한 정치 혁신이나 안후보가 표방한 새 정치와 어울리지 않는다. 유권자들에게 제시된 시대정신과 국정 운영의 철학, 각종 정책과 공약 등을 모두 가리는 블랙홀이 될 수도 있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10월7일 김성식 전 새누리당 의원(오른쪽)과 손을 잡고 있다. ⓒ 안철수 제공
“양 캠프의 자기방어 논리가 방해될 수도”

현재 야권 내에서는 단일화에 대한 낙관론이 대세이다. 지금은 샅바 싸움 단계이고, 따라서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공방을 벌일 수밖에 없으며, 이 과정에서 때로는 위험 수위를 넘나들겠지만, 어쨌든 최종적으로는 단일화 수순을 밟으리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가능성을 그리 크게 보지 않는 시각도 엄존한다. 선거 경험이 풍부한 야권의 한 인사는 “두 후보의 진정성을 믿지만 캠프가 꾸려지고 조직이 움직이다 보면 자기 논리가 생기고 확대 재생산되기 마련이다. 특히 안후보가 단일화의 조건으로 제시한 정당 쇄신과 국민 동의라는 것의 기준이 모호한 만큼 정치 인생을 걸고 안캠프에 합류한 이들의 자기방어 논리가 단일화의 최대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 <문재인·박근혜·안철수 그리고 선택>을 펴낸 신율 명지대 교수도 “단일화는 지지율 차이가 15%포인트 이상 되어야 가능하다. 지금처럼 박빙일 경우 모두가 대통령의 꿈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는 15~20%포인트, 1997년 김대중·김종필 후보는 25%포인트 안팎으로 격차가 벌어졌을 때 단일화를 이루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가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양측이 몇 달을 물밑에서 조율한 결과였다. 단일화 방안 논의에 들어가면, 예를 들어 여론조사 문구 하나가 승부를 결정짓게 될 텐데 이것이 단시간 내에 가능할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문후보와 안후보가 단일화하더라도 대선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꽤 있다. 우선 단일화 논의가 조기에 불붙을 경우에 대한 우려가 많다. 민주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단일화에서는 1과 1을 합쳐 2가 넘게 하는 시너지 효과가 중요하다. 그런데 두 후보가 서로를 경쟁 상대로 여기는 순간 외연 확장이 어렵다”라고 말했다. 단일화의 성패는 결국 야권 지지층의 확보가 중요한데, 조기에 단일화 국면이 도래하면 두 후보 모두 자신들의 행보를 야권 지지층에만 맞추게 되면서 표의 확장성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는 얘기이다.

단일화가 이미 예상되어왔다는 점에서 그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는 “누구나 예상하는 상황에서는 단순히 합친다고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가 단일화 이후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10%포인트가량 앞섰지만, 실제 득표율 차이는 2.3%포인트였다”라고 지적했다. 단일화의 컨벤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인구 구성비를 근거로 “단일화가 되더라도 박후보가 승리할 가능성이 51%이다”라고 말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후보가 상당한 격차로 우위를 보이는 50대 이상 유권자의 수가 40% 가까이 되는 데 비해 20대와 30대는 합쳐야 37%에 불과하고 이들의 유효 투표율은 50대의 3분의 2 수준을 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단일화 플러스알파가 필요하다”

단일화 이전에 국가 운영의 비전과 실천 전략에 대한 큰 그림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는 “단일화는 대선 승리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단일화에 플러스알파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교수는 선거의 초점을 인물에서 의제로 전환시킬 것, 정치 개혁 구상과 실천 방안을 제시할 것 등을 제안했다. 그는 “문후보의 민주당 쇄신이나 안후보의 세력 확보 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두 후보가 유권자들에게 어떤 신호를 주는가가 중요하며 그래야 단일화를 통한 대선 승리가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교수의 주장에는 야권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거론하기 껄끄러운 문제가 들어 있다. 이른바 ‘안철수 현상’으로 불리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의 수혜자 격인 두 야권 후보가 인위적인 단일화를 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하는 점이다. 사실 안후보를 제외하면 ‘안철수 현상’의 최대 수혜자는 문후보이다. 

문후보는 대선의 목표로 정권 교체, 정치 교체, 시대 교체를 제시했다. 안후보는 새로운 정치, 새로운 시대를 얘기한다. 하지만 정권 교체가 곧 새로운 정치와 새로운 시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유권자들은 수평적 정권 교체의 경험을 통해 이를 간파하고 있다. 안후보가 단일화의 조건으로 정치 혁신을 강조한 것도, 문후보가 정치쇄신위원장 인선에 가장 공을 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후보 단일화가 정권 교체를 위한  한 방법일 뿐 그 자체로는 국민적 지지와 유권자들의 판단을 인위적으로 조합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낡은 정치에 가깝다는 점이다. 물론 문후보가 민주당을 환골탈태 수준으로 바꿔내고 국민들이 흔쾌히 마음을 연다면 모르겠지만, 이는 단기간에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교수가 “국민들에게 어떤 ‘신호’를 주는가가 중요하다”라고 말한 이유이다.

이 때문에 문후보로 단일화되었을 경우 안후보 지지층이 온전히 옮겨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적지 않다. 기존 정치권에 염증을 느껴 안후보에게 환호했던 중도·무당파 지지층이 문후보의 새 정치에 대한 약속만을 믿고 투표장까지 가겠느냐는 얘기이다. “단일화 논의는 유권자의 판단 근거를 왜곡시키는 주범이다. 마치 게임을 하듯 시시각각 전달되는 여론조사 결과와 정치인·전문가의 분석 등에 이목을 빼앗기다 보면 비전이나 정책·공약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 정치 쇄신과 시대 교체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담아내려면 차라리 결선투표제 도입에 힘을 쏟는 것이 맞다”라는 한 정치학 교수의 쓴소리가 오랫동안 귓전을 맴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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