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와 일해보니 한국 스태프의 우수성 실감돼”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10.24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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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명배우들 출연한 <설국열차>, 내년 3월까지 후반 작업 마치고 개봉”
●INTERVIEW 봉준호 영화감독

ⓒ 시사저널 자료
봉준호 감독은 2010년부터 영화 분야 차세대 리더 1위에 올라 있다. 재미있는 것은 2010년 10월 그는 <설국열차>의 시나리오를 막 탈고한 상태였고, 지난해 10월에는 <설국열차> 촬영을 앞두고 촬영 스튜디오로 점찍은 프라하에 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올해 10월, 그는 <설국열차>의 편집을 위해 서울로 들어와 작업에 한창이었다. <설국열차>에 지난 3년을 다 바친 것이다.

개봉 시기가 내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설국열차>는 <마더>(2009년) 이후 4년 만에 나오는 신작인 셈이다. 전화 인터뷰를 통해 한국 제작사와 한국 감독이 중심이 되어 할리우드까지 끌어들인, 사실상 충무로 최초의 국제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1월 아메리칸필름마켓에서 조율 거쳐야 개봉 시기 확정될 것”

“7월14일에 촬영이 끝나서 19일에 귀국해 편집 작업에 들어갔다. 10월 말쯤 편집이 끝난다. 편집과 동시에 그래픽 작업도 시작되었다. CG(컴퓨터그래픽) 작업에는 메소드와 스캔나인이라는 두 군데 회사와 체코 회사, 한국 회사 등 모두 4개사가 참여한다. 편집과 동시에 진행되는 CG 작업 때문에 요즘도 미국의 CG 책임자와 화상 회의를 일주일에 몇 번씩 하고 있다. 11월에 배우들을 미국에 불러놓고 후시 녹음에 들어간다. 이런 후반 작업은 내년 3월까지 이어진다. 개봉 시기는 미정이다. 국내에서 CJ가 주 투자자이기는 한데 오는 11월 아메리칸필름마켓에서 전 세계 배급사와 북미 배급사가 최종 조율을 해야 개봉 날짜가 확정될 것이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사전 준비 기간을 1년 정도 했더니 실제 촬영은 72회차, 2개월 4주 만에 완료했다. <괴물>을 1백10회 찍고, <마더>를 90회 찍었던 것에 비해 72회차에 마무리한 것은 스케줄을 상당히 타이트하게 가져간 것이다. 준비를 워낙 세밀하게 했기에 크게 무리가 된 것은 없었다. 촬영감독이 한국 사람이었지만, 스태프의 90%가 미국이나 영국 사람이라 미국식으로 진행되었다.

기본적으로 내가 쓴 시나리오에, 내가 짠 콘티로 찍는 것이니까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없었다. 다만 한국보다 스케줄 운영 방식이 타이트하다. 미국 배우조합 규정에 반드시 12시간은 쉬고 일해야 한다는 등의 규정이 엄격해 어길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 촬영 현장처럼 가족적으로 뭉쳐서 계속 찍고,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는 분위기가 아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한국 배우는 송강호와 고아성이고, 한국계 미국 배우인 스티브 박도 나온다. <파고>에서 일본인 역으로 나왔던 스티브 박은 우리말을 하지 못한다. 송강호는 우리말로 대사를 한다. 극 설정에 통역기라는 장치가 있기에 무리 없는 설정이다. 송강호는 주인공 아닌 주인공이다. <스타워즈>의 해리슨 포드 정도의 역할로 중요한 인물이다. 틸다 스윈튼과 존 허트는 중요한 조연이다. <어벤져스>의 캡틴 아메리카 역으로 나온 크리스 에반스가 중심 인물이다.

캐스팅은 순조로웠다. 틸다 스윈튼과 존 허트가 시발점이었다. 둘 다 내 영화 <마더>나 <괴물>을 보고 좋아했다고 한다. 틸다는 어찌 보면 기차 안의 대처 총리 같은 존재이다. 굉장히 큰 캐릭터이다. 틸다와 존의 캐스팅이 확정되자 크리스 에반스가 합류했다. <헬프>로 아카데미 조연상을 탄 옥타비아 스펜서는 캐스팅 제의 때 여기저기서 상을 타다가 캐스팅 확정 뒤 극 중 의상 피팅 때 아카데미 조연상을 탔다.   

대사가 주로 영어였지만 촬영 전 대사의 뉘앙스와 토씨 같은 디테일에 대해 스태프들과 상의를 많이 했다. 이런 영어 액센트와 사투리는 현지인들에게 무슨 뉘앙스인지, 어떤 캐릭터라는 느낌을 주는지, 연출부와 상의를 많이 해서 언어의 차이 때문에 섬세한 뉘앙스를 살리지 못한 부분은 없다.

이번 영화는 극한의 추위를 피해 피난을 떠난 여러 인종이 미래판 ‘노아의 방주’인, 길고 긴 기차 안에서 싸우는 영화이다. 액션 장면이 정말 많다. 무술감독은 줄리안 스펜서라는 영국인으로, 목욕탕 액션 장면으로 유명한 <이스턴 프라미스>의 그 장면을 연출한 사람이다. 

 SF 영화에서 제작비 4천만 달러(우리 돈 4백20억원 안팎)면 할리우드 관행상 중·저 예산 영화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는 ‘사상 초유의 대작’으로 알려지고 있어 조금 부담스럽다. <괴물>의 순제작비는 1백15억원 정도였다. 충무로 관행으로 보면 <설국열차>의 제작비가 ‘사상 초대작’이기는 하지만 할리우드의 올 최대 히트작인 <어벤져스>는 2천7백억원짜리 영화이다. 제작비만으로 따지면 <설국열차>는 <디스트릭트9> 정도의 규모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역대 최대의 제작비라고 하니 그 간극이 크다. 크리스 에반스나 제이미 벨, 틸다 스윈튼 같은 배우의 출연료와 스태프 비용이 우리와 다르니 제작 관리를 타이트하게 해서 아낄 수 있는 것은 다 아꼈지만 4천만 달러가 든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봉테일’이라며 치밀하다고 말하는데, 아니다. 나도 막 찍는다. 와전된 부분이 많다. 찍다 보면 이랬다저랬다 하는 부분도 있다.

(차세대 리더로 뽑힌 것에 대해) 나야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영화라는 분야에서는 리더라는 개념이 없는 것 같다. 다들 제 앞가림하기 바쁘고, 힘들지 않나. 영화나 문학 같은 분야에서는 누가 누구를 리드하고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한국 영화는 지난 9개월 동안 프라하에 있느라 잘 보지 못했다. 귀국해서 극장에서 <도둑들>을 보았고, <무산일기>를 DVD로 보았다. <도둑들>은 아주 뛰어난 범죄 오락 영화였고, <무산일기>는 굉장히 강렬했다. 내가 없는 사이(?) 4백만 히트작도 줄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좋다. 이런 기세가 이어졌으면 한다. 다양한 장르에서 히트작이 나오고 <피에타>처럼 큰 경사도 있었고, <도둑들>처럼 큰 히트작도 나오고. 2000년대 초반에도 한때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다 나빠졌다.

“<설국열차>는 인간의 조건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

할리우드와 일을 해보니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톱클래스 스텝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톱클래스인 것이 맞다. 결과물도 좋고. 기술 수준에서 우리는 톱클래스이다. 우리 힘만으로도 기술적·문화적 측면에서 SF 필름을 만들 수 있다고 느꼈다.

다음 작품으로는 체코로 떠나기 전에 20쪽짜리 시나리오를 다른 작가에게 주고 간 것이 있다. 살을 붙여보라고. 또 일본에서 만화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을 받기도 했다. 미국 쪽에도 에이전시가 있는데, 최근 흥미가 가는 범죄극 제안을 받았다. 여러 복잡한 조건이 있어서 어떤 것을 먼저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이번 4년간의 공백은 너무 길다. 2년 안에라도 뭔가 내놓고 싶다. 결국은 시나리오 때문이다. 누가 준 시나리오를 덥석 받아서 찍는 것이 꿈인데, 아직 그런 인연을 못 만났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를 받아보지도 못했고.

내가 어떤 장르를 해보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때그때 꽂힌 캐릭터나 이미지를 따라갔다. 어떤 장르를 해도 그 장르의 규칙대로 찍은 영화도 없고. 나도 관객이다. 내가 관객으로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 그런 영화를 하고 싶고 그런 흥분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데, 겁도 많이 나고 늘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럼에도 나는 행운이 많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설국열차>는 액션 장면이 많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SF 영화이다. 여기에 다채롭고 독특한 액션 장면이 들어간다. 밀폐된 공간에서 뚫고 나가는(piercer) 액션이다. 지구 멸망이라는 극한 상황에 처한 지구 별 생존자들이 기차 안에 모여서 서로 미친 듯이 싸운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도 왜 인간은 서로 싸우는가, 시스템이란 무엇인가, 결국은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인간의 조건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이다. 등급은 아마도 15금 내지 18금. 상영 시간은 2시간 5분 정도? 내년에 가까운 개봉관에서 확인해달라.”(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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