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하라
  • 김재태 편집부국장 (jaitai@sisapress.com)
  • 승인 2012.11.13 14: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빙의 승부가 되리라고 예측되었던 미국 대선이 의외로 싱겁게 끝났습니다. 오바마·롬니 두 후보가 확보한 선거인단 수는 당초의 예상을 깨고 3백3명 대 2백6명으로 큰 격차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결과의 의외성보다 더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승리가 확정된 직후 동영상에 비친 오바마 대통령의 모습이 그것입니다. 4년 전에 보았던 활기 찬 중년의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대신 피로에 지친 초로(初老)의 신사가 거기 서 있었습니다. 그 역시 ‘대통령의 나이 법칙’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분명합니다. 대통령의 나이 법칙이란, 노화 연구의 권위자인 미국 클리블랜드 병원의 마이클 로이젠 박사가 연구해 내놓은 미국 대통령의 노화와 직무의 상관관계입니다. 그가 조사한 결과,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백악관에 머무르는 동안 1년에 평균 2년 정도의 노화 속도를 보였다고 합니다. 최근 미국 경제 주간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가 흰머리 빼곡한 오바마의 4년 후 모습을 표지에 실은 것도 그런 맥락에서일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서도 그처럼 노화를 재촉하는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차지하려고 세 명의 후보가 팽팽한 각축을 벌이고 있습니다. 세 후보가 쏟아내는 말들을 들어보면, 누가 대통령이 되든 우리나라는 지금보다 훨씬 잘사는 나라가 되어 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공약의 얼개만 살펴보면 뭐 하나 부족할 것이 없습니다. 경제 성장도 이루면서 복지도 늘리겠다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747 공약’에 데인 유권자들의 마음은 다릅니다. 당장 환율이 떨어져 수출에는 비상이 걸려 있고, 유럽의 재정 위기도 아직 출구가 보이지 않는 마당에 경제를 더 성장시키느니, 일자리를 획기적으로 늘리느니 하는 말들이 곧이곧대로 들릴 리 없습니다. 그런데도 후보들의 입은 아직도 꿀에 잔뜩 절어 있습니다. 여기저기 가서 도깨비 방망이 휘두르듯 공약을 내놓는 후보들을 보면 그야말로 천하무적 만능입니다. 슈퍼맨이 따로 없습니다. 누구 하나 정직한 말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슈퍼맨을 원하지 않습니다. 노력하는 지도자를 원할 뿐입니다. 자신의 단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정직하게 털어놓을 줄 아는 후보가 더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들은 적어도 자신의 거짓말이나, 위선을 감추기 위해 임기 동안 더 무모한 일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직’ 하면 ‘어니스트 에이브’로 불렸던 제16대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떠오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가장 존경한다고 말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링컨은 잘못을 저지르면 언제든 시인하고 사과할 줄 아는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는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후에 “사실 저는 성년이 되었을 때에도 아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읽고 쓰고 외우는 것 세 가지는 계속해왔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라고 진솔한 자기 고백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야권에서 단일 후보도 나오겠지만, 막바지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대선 후보들 가운데 누가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지, 혹은 스스로에게 정직한지, 누가 허황된 신기루를 짓고 있는지 눈 부릅뜨고 지켜보아야겠습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