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보다 빅뱅이 좋아요”
  • 엄민우 (bestmw1@naver.com)
  • 승인 2012.11.2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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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총련-민단 경계 허물어지는 일본 교포 사회 현장 취재

지난 11월4일 일본 오사카 성에서 열린 원 코리아 페스티벌 행사 모습. ⓒ 원 코리아 페스티벌 제공
지난 11월4일 일본 오사카 성에 위치한 야외음악당 입구. 쌀쌀한 날씨임에도 수많은 사람이 길게 줄을 서 있다. 남녀노소 구성도 다양하다. 추위에 몸을 떨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얼굴은 활짝 웃고 있다. “입장하세요!” 자원봉사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다리던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간다. 앞줄은 5분 만에 모두 제 주인을 찾았다. 이날 이곳에서는 통일을 염원하는 ‘원 코리아 페스티벌’이 열렸다. 조총련과 민단 구분 없이 모여 ‘하나!’를 외치며 축제를 즐겼다.

조총련과 민단이 대립했던 일본 교포 사회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념으로 갈려 있던 경계선이 희미해지면서 점차 조총련도 아니고 민단도 아닌 동포들이 늘어나고 있다. 융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조총련계의 변화가 눈에 띈다. 김선화씨(29·여)는 조총련 학교를 졸업해 조총련계 학교에서 4년간 교사 생활을 했다. 그런데 최근 교편을 놓았다. 한국 가수 빅뱅의 콘서트를 모두 쫓아다니는 열혈 팬으로 살기 위해서다. 그녀는 빅뱅의 콘서트를 따라다닌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번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변화이다. 일본 한인 사회에서 한류는 단순히 문화 콘텐츠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과거 조총련 조직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요새 젊은 애들 사이에서는 조총련, 민단이 의미가 없다. 한류 영향이 크다”라고 전했다. 한류에 관심 갖는 젊은이들이 한국을 오가고 문화를 소비하며 융화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지도자 됐을 때 부정적 목소리 다수

변화는 젊은 층에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 정세에 눈을 뜨고 한국과 왕래를 하게 되면서 조총련계 전체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제일교포 최재우씨(가명·60)는 과거 조총련계 조직에서 일했다. 그러나 이제 더는 조총련과 관련해 어떠한 활동도 하지 않는다. 최씨는 “한국에서는 조총련을 거의 북한 사람으로 보는 것 같은데, 일부 적극적인 ‘활동가’를 제외하면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김정은이 북한의 지도자가 되었을 때도 부정적인 의견이 다수였다”라고 귀띔했다.

이러한 변화에 힘입어 원 코리아 페스티벌도 활기를 띠게 되었다. 원 코리아 페스티벌은 조총련도, 민단도 아닌 원코리아페스티벌재단이 매년 일본에서 행사를 열어왔다. 과거에는 일본 정부와 조총련, 민단 모두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으나 최근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응원이 늘어나고 있다. 원코리아페스티벌재단은 올해 7월 일본 정부로부터 공익재단 인증을 받았다. 정갑수 원코리아페스티벌재단 회장은 “까다로운 일본 정부로부터, 통일을 외치는 우리가 공익재단으로 인증받은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변화이다”라고 전했다.

남북 탁구 단일팀을 주제로 한 영화 <코리아>의 연출자 문현성 감독도 행사에 참여했다. 문감독은 “통일은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선 인기 없는 주제이다. 그런데 조총련과 민단은 서로 물리적 분단 없이 함께 살고 있어 통일의 필요성 등에 대해 더 실감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28년 동안 원코리아페스티벌재단에 몸담아온 한 인사는 “과거에는 행사 때 노래가 나오면 아리랑 춤을 추는 어르신이 많았는데 이제는 조총련인지 민단인지 구분도 할 수 없는 젊은 사람들이 방방 뛰며 어울려 춤을 추고 있다. 저 모습 자체가 일본 교포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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