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깜냥이 되지 않고 문재인은 경제 민주화 실행 능력 있는지 모르겠다”
  • 이철현 기자·정리│유소연 인턴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2.11.2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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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전 국무총리 “양극화 해소할 대통령 절실”

경기 침체 탓인지 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경제 정책 공약이 쟁점이 되고 있다. 대선 후보 진영마다 양극화 해소, 일자리 창출, 성장 잠재력 확충 방안을 담은 경제 민주화 공약을 내놓고 갑론을박하고 있다. 세부 정책에서 다소 차이가 나는 듯이 보이지만 총론에서는 큰 차이가 없어 변별하기 쉽지 않다.

18대 대통령 선거가 한 달 남짓 남은 11월2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집무실에서 정운찬 전 총리를 만나 대선 후보별 경제 민주화 공약에 대한 평가와 차기 정부의 경제 정책 과제에 대해 들었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 가운데 한 명이다. 오랫동안 대학 교단에서 지냈기 때문인지 정 전 총리는 인터뷰 내내 단조로운 말투로 긴 설명을 쏟아냈다.

정운찬1973년 충남 공주 출생서울대 경제학 학사미국 프린스턴 대학 경제학 박사제23대 서울대 총장제40대 국무총리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현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 시사저널 이종현

세계 대공황 극복에 기여한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경제학자는 정부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해주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경제학자로서 차기 정부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택시 타면 택시 운전기사 절반가량이 거칠게 추궁한다. ‘요즘 왜 옳은 말을 하지 않습니까?’ ‘이명박 정부에서 총리까지 지낸 인사가 어찌 경제 정책마다 일일이 비판할 수 있는가’라고 답하면 ‘그럼 명박이한테는 왜 갔냐?’고 핀잔을 준다. 한 운전기사는 ‘민심은 폭동 직전이다. 요즘 학생들은 왜 시위도 안 하냐?’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민심이 요동칠 만큼 양극화가 심각하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국정을 운영하기가 매우 힘들 것이다. 세계 경제가 불안정하고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 소진된 탓에 대선 이후 서민 가계 위기가 현실화할 수 있다. 국민은 대선 후보들이 서민 가계를 바로 회복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음 정부는 재벌 대기업 중심 정책이 아니라 서민 가계 소득 증대와 중소기업 지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또 재벌 개혁 없는 양극화 해소는 불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 구조도 만들 수 없다. 대통령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재벌 개혁 정책을 만든 참모들과 임기를 함께해야 한다. 재벌 개혁은 일관성과 지속성이 중요하다. 이에 따라 경제 민주화 공약을 입안한 참모들을 믿고 임기 내내 함께해야 한다.

다음 정부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두 가지이다. 우선 재벌 대기업 중심의 경기 부양책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재벌 대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 짧은 시간 안에 일자리 창출과 경기 활성화 모습을 연출하려고 재벌 대기업 중심의 성장 정책을 사용하거나 재벌 개혁을 실행하지 않으면, 현재의 양극화 구조가 정착될 것이고 1~2년 뒤 심각한 파국이 올 것이다. 단기 경기 부양책으로는 ‘건설 경기 부양을 위한 토목 사업’ ‘고환율 정책을 통한 수출 증대’ 같은 정책이 사용될 수 있다. 이는 한국 경제에 독약이 될 것이다. 다음 정부는 또 정치 일정과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 출범 직후 경기가 빠르게 좋아지지 않을 것이므로 여론이 나빠질 수 있다. 그렇다고 여론에 쫓겨 대기업 중심의 경기 부양책을 사용하면 절대 안 된다. 지방자치단체나 보궐 선거를 앞두고 경기 부양책을 사용하자는 유혹을 받을 수도 있다. 다음 정부는 양극화 해소를 역사적 사업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서민 가계의 소득 증대 정책을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대선 후보들은 나름으로 경제 민주화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진정성이나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 가장 제대로 된 경제 민주화 공약을 제시한 대선 후보는 누구라고 보는가?

경제 민주화는 기업, 노동자, 소비자가 대등한 관계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사회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칼 포퍼의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나온 말이다. 평등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대등하다는 것은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구직자가 근로 조건을 보고 ‘노’라고 말할 수 있으면 경제 민주화가 된 사회이다. 일 안 해도 밥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최저 생활이 확보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오늘 일을 못 하면 내일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만큼 일자리가 충분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도 대등해야 한다. 대기업은 협력업체로부터 물건을 받을 때 가격을 후려친다. 안산에 있는 전자 부품업체 사장은 “이게 대기업에게 납품하는 배전판이다. 10년 전 납품가가 1억원이었다. 지금은 4천만원에 불과하다”라고 하소연하더라. 대기업이 물건값을 후려치면 중소기업이 ‘물건 못 주겠다’라고 하면 경제 민주화가 실현된 사회이다. 이러려면 대기업에 경제력이 집중되지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은 경제 민주화 관점에서 대선 후보를 평가해보자. 일단 박근혜 후보는 ‘깜냥’이 되지 않는다. 경제 민주화가 왜 필요한지도 모르고 있다. 그러니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해소해야 한다는 정책 과제를 외면하고 있다. 순환 출자 관련 공약만 보더라도 박후보는 기존 순환 출자 구조는 봐준다고 한다. 규정만 지키면 재벌에게 마음대로 하라고 풀어주는 것과 같다. 이는 링 위에 헤비급과 라이트급 선수를 붙여놓고 ‘반칙하지 마라’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문재인 후보는 순환 출자 해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문후보는 유예 기간을 두겠다고 한다. 적어도 의지는 있어 보인다. 다만 실현 가능성이나 지속성에서 의구심이 간다. 대선 정국 이전에 한 번도 재벌 개혁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무엇보다 재벌 개혁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재벌 장학생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한국에는 재벌 장학생이 너무 많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꺼내 든 재벌 개혁 정책은 재벌 장학생에 의해 왜곡되고 무력화되었다. 참여정부가 대표 사례이다. 양극화의 근원은 참여정부이다. 2006년 중소기업 고유 업종 제도를 없앴다. 중소기업 업종 지정이 경쟁을 해친다는 것이 제도 폐지 이유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벌 개혁을 제대로 실행한 최초 대통령이 되겠다고 천명했으나 결과적으로 삼성그룹 대리인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노대통령은 이학수 전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과 부산상고 인맥으로 엮여 있었다. 대통령은 정책에 대한 이념·의지·능력을 두루 갖춰야 한다. 노대통령은 이념은 있었지만 의지는 확고하지 못했고, 경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신자유주의자와 재벌의 유혹에 넘어갔다.

이명박 대통령이 저지른 가장 큰 실책은 인사 정책이다.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끼리 모여서 서로 현안을 논의해야 창의적인 생각이 나올 수 있다. 편중 인사는 다양한 생각을 허용하지 않고 늘 하던 대로 결국 대기업 위주 정책만 나온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 당시 잉태된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말았다. 이처럼 경제 민주화 대선 공약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경제 민주화에 대한 의지와 능력을 갖춰야 한다. 지금 대선 후보들이 정책 실행 능력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대선 후보들과 경제 민주화 정책에 대해 논의해본 적이 없나?

없다. 자연스럽게 토론할 기회가 생길 줄 알았다. 하지만 안철수나 문재인 진영에서 문을 열지 않았다.

안철수씨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기자들이 안철수씨에 대해 자주 묻는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좋아하더라. 경제에 대한 이해가 있는 듯하다’라고 평가하자 ‘안철수와 가깝다’라거나 ‘안철수에게 구애했다’라는 말이 나오더라. 그와는 개인적으로 만나본 적이 없다. 일생에 두 번 대화했다. 지난 2월 말 서울대 졸업식과 이헌재 전 총리 출판기념회에서 만났을 때가 전부이다. 안철수 진영에 합류한 제자가 있다. 그 탓에 내가 안철수를 지지해 제자를 파견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제자 연배가 몇인데 내가 파견하고 말고 하겠는가. 대선 후보 진영마다 제자들이 많이 가 있다. 왜 안철수 쪽으로만 갔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차기 정부에서 경제학자 내지 경제 정책 전문가로서 정 전 총리의 식견과 경륜이 필요하다고 하면 관계나 정계로 다시 진출할 의향이 있는가?

없다. 관직은 할 만큼 했다. 서울대 총장과 국무총리 지냈으면 되었다.

대선 후보가 선거 운동 과정에서 정 전 총리에게 손을 내민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동반 성장 관련해 뜻이 맞는다면 도울 수 있다. 하지만 관직에 다시 나갈 뜻은 없다.

정 전 총리께 주어진 시대적 사명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라고 물으면 ‘동반 성장 전도사가 되겠다’는 것이 답이다. 어렸을 때 아주 어렵게 살았다. 사회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았다. 방황할 때 도와준 은인들 덕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그 빚을 갚는 심정으로 동반 성장에 매진하고 있다. 동반성장위원장은 월급도 없는 자리였다. 지금 동반성장연구소도 내 돈으로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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