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화 효과’ 잠재울 묘수가 안 떠오른다
  • 서상현│매일신문 기자 ()
  • 승인 2012.11.2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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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캠프, 대응 전략 고심 ‘총리 조기 지명’ 러닝메이트 카드도 갑론을박

ⓒ 사진공동취재단

“특별한, 아주 기발한, 대응 전략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어떤 정치공학도 진심을 넘어설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에게 실천에 대한 믿음을 드리고, 국민에게 꼭 맞는 정책을 만들어 내는 것을 통해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지난주 방송기자클럽과의 토론회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를 뛰어넘을, 파격적인, 숨겨놓은 비장의 전략이 무엇인가”라고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대국민 단일화 약속을 본 뒤 “쇼는 할 필요가 없다”라고 했던 박후보는 단일화를 ‘이벤트’로 비판하면서도 사실상 현재 ‘무(無)전략’임을 고백했다.

하지만 박후보를 돕는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실무진, 당 밖과 원내에서는 단일화 이벤트를 덮을 비장의 ‘빅카드’로 무엇이 좋을지 찾느라 긴 시간을 보냈다. 캠프 내 한 핵심 관계자의 말처럼 솔직하게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그 카드가 박후보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박후보 밖에서는 많았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카드는 총리 후보 조기 지명을 통한 러닝메이트 전략이었다. 야권에서 단일화 이후 두 후보가 서로 손을 잡고 선거운동에 나서는 컨벤션 효과에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호남보다 차라리 수도권·PK 총리가 낫다” 

몇 달 전부터 정치권 안팎에서는 박후보가 ‘준비된 대통령감’임을 보이려면 ‘미래’ 국정 운영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논리로 “조기에 ‘섀도우 캐비닛’(예비 내각)을 발표해야 한다”라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왔다. 정부 부처 개편에서부터 초대 내각 리스트까지 구체적으로 발표해야 한다는 다소 ‘도발적인(?)’ 안도 있었다. 그것이 축소되면서 ‘호남 총리 러닝메이트’가 구체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문후보와 안후보가 단일화 이후 한 명은 대통령, 한 명은 총리로 ‘협공(協攻)’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그에 맞서야 한다는 논리는 남았다는 것이다. 실제 많은 호남 출신이 거론되었다. 하지만 가능성은 줄어들고 있다.

박후보측에 자문을 해주는 한 정치권 인사의 말이다. “100% 국민대통합을 외친 박후보가 본인이 TK(대구·경북) 출신이니까 호남 총리를 지명해 한국 정치사를 양분한 동서 화합을 꾀한다고 치자. 그러면 서울·경기·강원·충청은 물론이고, 특히 PK(부산·경남)에서는 어떤 마음이 들까? 호남이라는 끈 때문에 총리가 된다는 말은 감동적이지도 설득적이거나 논리적이지도 않다. 표 때문이라면 차라리 박후보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수도권 출신이나 PK 출신을 (총리 후보로) 선택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호남 총리는 박후보가 ‘100% 국민대통합’을 외쳤을 즈음 나왔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그때는 기발한 아이디어였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는 식상한 꾀로 비친다는 지적도 있다. 한쪽에서는 야권 후보의 단일화를 야합(野合)으로 공격했던 새누리당이 총리를 지명하면 ‘권력 나눠 먹기’로 역풍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박후보가 지지율 ‘45% 박스권’에 갇혀 좀처럼 올라오지 못하는 것을 두고 박후보를 돕는 ‘닳고 닳은 사람들’에 대한 피로감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새누리당은 3박자, 즉 숫자(재산), 학력, 배경이 갖춰지지 않으면 사람을 쓰지 않는다는 선입견과 편견을 깨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 11월7일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단일화하겠다고 전격 합의한 뒤 20여 일이 지났다. 야권의 두 후보가 ‘내란(內亂)’ 중일 때 박후보는 저만치 앞서가야 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각 여론조사는 여전히 평행선을 긋고 있다.

정세 판단이 빠른 인사들의 평가를 요약하면 이렇다. “2007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경선에서 실패했던 패장(敗將)들을 고스란히 모셔놓았다. 그나마 쓸모 있던 사람들은 역할이 없거나 뒤로 물러서 관망만 한다. ‘아마추어리즘’이라고 보기보다는 ‘근무력증’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지금 보수 진영 중 ‘박근혜 유보층’은 박후보가 어떤 공약을 내놓느냐를 보고 있지 않다. 그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를 보는 것이다.”

문재인 후보(오른쪽)와 안철수 후보가 11월18일 서울 정동의 한 음식점에서 단일화 회동을 마치고 나서며 악수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낙선하면 정계 은퇴” 벼랑 끝 전술도 거론

11월25일 새누리당 선대위 청년본부 출범식에서 박근혜 후보가 빨간 운동화를 신었다. 하지만 김상민 청년본부장이 박후보의 운동화 끈을 매주면서 효과가 반감되었다. ‘공주’ ‘귀족’ 이미지로 매도당할 가능성이 있는 모습을 왜 연출하느냐는 지적이었다.

지난해 동남권 신공항 추진이 무산되고 저축은행 사태가 터지면서 새누리당을 향한 부산 민심이 묘하게 바뀌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산 출신 대선 후보가 나오면서 “고향 출신 대통령 함(한번) 만들어 보입시더!”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PK 의원들이 박후보의 결단을 촉구하는 것도 분위기가 너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가덕도 신공항이다.

11월22일 남부권신공항범시도민추진위원회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 제2 관문 공항에 대한 선언문’을 발표했다. “국내외 전문가의 공정한 입지 선정 결과에 대해 어떠한 이의 제기도 하지 않을 것이고 이를 무조건 수용한다. 우리는 밀양 신공항을 주장하지도, 가덕도 신공항을 반대하지도 않는다”라는 것이 요지이다. 이 추진위는 그동안 경남 밀양을 최적지라고 고집해왔는데 입장을 ‘갑작스레’ 선회한 것이다. 표 분산을 의식해 신공항 추진만 약속하고 어디에 둘 것인가에는 입을 닫았던 박후보가 대선 정국에서 신공항 이슈를 선점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대구·경북·울산·경남과 부산의 대립이 막을 내리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뿐만이 아니다.

“가덕도 신공항에 ‘플러스α’까지 부산에 내려주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굵직한 언론사로부터 나왔다. 박후보측에 전달되었거나 전달될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부산 민심이 좋지 않다는 것인데 일각에서는 50 대 50까지도 보고 있다고 한다.” TK는 집토끼이니까 다른 먹을거리를 줘도 표심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권 사정에 밝은 청와대 관계자의 전언이다.

박후보는 비례대표 의원직 사퇴라는 카드로 기득권을 내려놓음으로써 정치 쇄신을 외치는 야권을 압박하는 모습이다. 한쪽에서는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면 정계를 은퇴하겠다는 벼랑 끝 전술도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래야 보수 이탈층의 지지를 재결집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이회창 전 선진통일당 대표가 지지를 선언하면서 충청 표에서는 다소 유리한 위치에 올랐다. 하지만 설(說)이 너무 길어지면서 그마저도 ‘식상하다’는 비판이 많다. 과거사 관련 지원법에 박후보가 공동 발의자로 참여한 것을 두고서는 적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1월19일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 이종격투기 선수가 새누리당사에서 박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격투기 선수인 만큼 지지한 이유도 “여자로서 얼굴에 칼을 맞는 그런 일을 당하고도 다시 정치를 하는 모습이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다”라고 했다. 하지만 정치권은 “뜬금없다”라는 반응이다. 11월22일 새터민이자 세계복싱협회(WBA) 여자 페더급 세계 챔피언인 최현미 선수가 지지 선언을, 앞서 21일 탈북자유민 종합복지원예술단의 지지 선언을 보면서도 “북(北)을 활용하는 것이냐”라는 지적이 나왔다. 박후보에게는 이런 지지 선언이 정치공학이 아닌 진심일지 몰라도 반대로 ‘정치공학적 포석’으로 보는 국민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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