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대통령 만드는 전위대
  • 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2.12.2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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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명암…인수위는 출세 보증수표?

‘“쎄다고 해서 사람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나….”

대통령직인수위(이하 인수위)에 업무보고를 하러 갔던 공기업 사장 ㅈ씨는 분을 삭이지 못했다. 국회의원 배지도 달아봤던 ㅈ씨에게 한 여성이 “코는 큰데” 운운하며 면박을 주었기 때문이다. 갑을의 위치가 반대였다면 성희롱 시비가 될 법한 일이었다. 1998년 1월에 있었던 한 해프닝이다.

인수위는 정말 ‘쎄다’

미래의 권력인 ‘떠태(떠오르는 태양)’가 행차할 길을 닦는 만큼, 막강한 게 당연하다. 월권 시비는 ‘철저한 준비를 하느라 생긴 잡음’쯤으로 치부한다. 통상 3명의 위원과 전문위원 등으로 구성된 인수위 분과위원회에 불려간 정부 관계자들은 주눅 들 수밖에 없다. “업무 인수인계를 위해 왔는데 왜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뒷전의 메아리일 뿐이다. 자칫 더 호된 불벼락을 맞을지 모르는 탓이다. 1998년 2월에는 인수위가 정보통신부의 개인휴대통신(PCS) 의혹과 관련해 감사원에 특별감사를 요청하는 일도 있었다. 김대중(DJ) 당선인의 언급이 있어 그렇기도 했지만, 어찌되었든 밉보였다가는 무슨 사단이 날지 조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최근 정권 교체가 이념·스타일·구성원 등등이 전혀 다른 주체들 간에 이뤄진 것도 서슬의 강도를 높인 요인이다.

현직 대통령보다 ‘더 높은’ 사람… 5년 전인 2007년 12월26일 삼청동 인수위 현판식에 나온 제17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 연합뉴스

첫 인수위…외양에 신경 쓴 YS

인수위는 제14대 김영삼(YS) 당선인 때부터 생겨났다. 노태우 대통령의 청와대가 자신의 전례에 비춘 취임준비위원회를 꺼내자 YS는 단호히 거부했다. 민자당이라는 같은 뿌리의 후보로 당선되었긴 했지만 군 출신 전임자를 인정하지 않던 YS는 미국의 예를 들며 ‘정권인수위원회’ 구성을 주장했다. 최초의 문민 대통령이라는, 자부심 강한 YS는 ‘당신과는 다르다’는 것을 내세우려 했고 결국 ‘대통령직인수위원회’로 절충되었다. 노대통령 본인은 전임 전두환 대통령의 “퇴임 날(2월24일)까지 대통령으로서 모든 권한을 행사한다. 단 하루 더도 덜도 없다”는 으름장 때문에 요즘의 인수위 모습은 꿈도 꾸지 못했다. 나중의 ‘백담사 유폐’ 등이 엄중했던 것도 이런 것들과 무관치 않다.

YS 인수위는 평소 ‘폼’에 신경 쓰는 그의 스타일 그대로다. 일을 위한 조직이기보다는 모양 내기, 즉 홍보용 측면이 강했다. 박희태 대변인이 “인수위원들이 할 일은 인수인계 업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설명한 그대로다. 실제 실무 인력도 별로 없던 인수위가 할 역할은 별로 없던 것이다. YS가 밀실 정치를 청산한다며 청와대 안가를 없앤 것과 관련해서는 “멋은 부렸는지 몰라도 ‘청와대’를 몰라서 한 일이다. 결국은 두고두고 부담이 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YS는 간판 격인 위원장으로 정원식 전 국무총리를 임명했을 뿐 나머지 14명은 박관용, 최병렬, 서정화, 이해구, 장영철, 신경식 등 하나같이 정치인들로 채웠다. 인선의 기본이 지역 배분이었듯이 12명이 각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구 의원이었다. 인선은 YS가 철저한 보안 속에 단독 결정했다.

YS가 점지한 박관용 의원은 청와대비서실장·국회의장이 되었고, 최병렬 의원은 서울시장·당 대표, 서정화는 내무부장관, 신경식은 정무제1장관을 지내는 등 거의가 승승장구했다.

역시 정치인 일색이었던 DJ의 인수위

제15대 DJ 때 인수위가 자리를 잡아간다. 기구 인원이 대폭 확충되었다. 그러나 정치인 중심이긴 마찬가지였다. 부위원장인 정종욱 교수 정도가 예외이다. 후일 국정원장이 된 이종찬 국민회의 부총재가 위원장에 임명된 것을 비롯해 박지원, 이해찬, 김한길 등이 인수위에 합류했다. 박지원 위원은 문광부장관·청와대비서실장을 지내며 ‘소통령’으로 불릴 만큼 실세가 됐고, 이해찬 위원(민주당 전 대표)은 교육부장관, 대변인을 겸한 김한길 위원은 문광부장관이 되는 등 인수위원이 출세의 지름길임을 입증했다.

DJ 당선인은 선거 당시 ‘집권 후 임명직 공직에 나서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는 권노갑·한화갑·김옥두 등 동교동 가신들이 공무원 사회에 나서는 것을 차단했다. 하지만 권노갑은 2인자로 막후에서 공기업까지를 포함하는 공직 인사를 재단하다 기어코 사고를 쳤다.

DJ는 DJP 공동정권 특성에 따라 위원의 절반을 자민련에 할애했다. 김현욱, 이동복, 조부영, 이건개, 최재욱, 김종학, 함석재, 이양희 등이 참여했지만 행동반경은 뻔했다. 수시로 회의를 주재하기도 했던 DJ가 공동정부 파트너인 자민련을 그들 지분만큼은 챙겨줬지만 알짜 핵심에 접근하는 것은 경계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IMF 외환위기까지 겹쳐 인수위 못지않게 비상경제대책위원회와 노사정위원회가 주목받았다. 이종찬과 인수위원장 경합을 했던 한광옥은 노사정위원장을 거쳐 청와대 비서실장이 되었다.

노무현 인수위 "공직 기용 않겠다" 했으나 결국...

제16대 노무현 당선인의 인수위는 인적 구성과 규모·예산·활동·마무리 등 여러 면에서 눈길을 끈다. 대통령령에 기초했던 인수위가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이라는 법제의 뒷받침을 받은 것도 이때부터다. 노당선인은 정치인을 철저히 배제했다. 당에 뿌리가 없는 태생적 이유와 더불어 무엇보다 시민사회를 지향하는 ‘코드’가 크게 작용한 듯하다.

제16대 노무현 당선인은 인수위에 특히 관심이 컸다.ⓒ 국회사진기자단

위원장으로 임명한 임채정 민주당 정책위의장과 김병진 부위원장, 이병완 기획조정 간사 등 5명을 제외한 나머지 20명 위원은 12명의 대학 교수를 포함한 40·50대의 진보 성향 학계·시민사회 인사들이다. 해당 분야의 소수파가 많은 것도 한 특징이다. 

노당선인은 이들을 공직에 기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예전 정부와 다르지 않았다. 거의가 공직을 꿰찼다. 임채정은 국회의장, 이병완은 청와대 비서실장에 발탁되었다. 정무분과 김병준 위원은 교육부총리에 올랐다. 논문 표절 시비로 1개월 만에 교육부총리에서 물러난 그는 부총리 퇴임 한 달 만에 대통령자문 경제기획위원장이 되어 여러 사람을 놀라게 했다. 표절 스캔들 여진이 진행될 때에 이뤄진 인사이니까.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을 맡던 성경륭은 신정아 사건으로 물러난 변양균의 청와대 정책실장 자리를 차지했고, 통일원장관·국가안전보장위 상임위원장이 된 이종석 등도 있다. 외무부장관이 된 윤영관을 비롯해 서주석, 이은영, 이정우, 허성관 등도 노당선인을 뒤에서 돕던 교수 출신이다.

실무진에도 노당선인의 복심들이 상당수 포진했는데 나중에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되었다가 뇌물 수수로 구속된 정윤재 전문위원과 청와대 대변인이 된 천호선 전문위원 등이 대표적이다.

‘참여정부’라는 닉네임에 걸맞게 인수위 회의를 TV 생중계하고 인수위 내에 ‘국민참여센터’ ‘국민제안센터’라는 민원 창구를 개설하는 등 운영도 파격적이었다. 참여를 확산시키겠다며 전국 순회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예산이 DJ 때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에 대해서는 물가 상승과 임차 비용 증가라고 설명한다. 활동 내역을 5백여 페이지로 정리한 인수위 백서의 백미는 언론 보도를 공박한 상세를 자랑하며 부록으로 실은 점과, ‘더 많은 포퓰리즘이 필요하다’는 칼럼을 두드러지게 편집한 대목이다. 노정권 내내 거듭된 갈등과 분란이 우연이 아님을 확인시켜준다.

발탁과 승진 산실이 된 MB 인수위

제17대 이명박(MB) 당선인의 인수위는 학계·정계·관계 인사들을 두루 기용했다. 위원장에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 부위원장에 김형오 의원(나중에 국회의장)을 각각 임명하고 22명의 위원을 7개 분과에 배치했다.

DJ가 비상경제특위를 가동시켰듯이 MB는 인수위와 별개로 경쟁력강화특위라는 별도의 기구를 구성했다. ‘실용정부’라는 기치를 입증이라도 하듯이 사공일 전 재무부장관과 데이비드 엘든 두바이국제금융센터 회장을 공동위원장으로, 그 아래에 정부혁신 및 규제 개혁, 투자 유치, 한반도 대운하, 기후변화 및 에너지, 과학비즈니스벨트 팀 등 6개 T/F를 두었다.

역대 모든 당선인이 신경을 쓴 위원장 임명과 관련해서는 특히 말이 많았다. MB 캠프의 좌장인 이재오 의원이 이경숙 위원장은 안 된다며 2시간 동안이나 MB와 언쟁을 벌였다는 등 설이 분분했다. 이위원장이 국보위 입법위원 출신이라는 점을 특히 시비했지만, MB는 소망교회를 함께 다닌 이위원장을 끝내 감쌌다는 후문이다. 엉망이라는 MB의 ‘고(고려대)소(소망교회)영(영남)’ 인사의 초판이라는 얘기이다. 금융·경제계를 휘저은 강만수나 곽승준 위원도 소망교회 출신이다.

지난 9월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인수위 출범은 새날이 밝아옴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 연합뉴스
낯익은 얼굴에 유난스레 집착해 ‘회전문 인사’라는 꼬리표를 달고 사는 MB의 인수위원들은 비상(飛翔)했다. 나중에 국회의장이 된 김형오 부위원장뿐 아니라 맹형규(정무수석·행안부장관), 곽승준(미래기획위원장), 남주홍(캐나다 대사·안기부1차장), 현인택(통일부장관), 정동기(민정수석·감사원장 지명/사퇴), 이달곤(행안부장관·정무수석), 강만수(산은 회장), 백용호(청와대 정책실장), 이주호(교육부장관) 등등이다. 굳이 열거하지 않은 인사들도 대개는 국회의원이나 장·차관급 예우를 받는 단체장 등으로 진출했다. 하기야 인수위원 아래의 전문위원이나 부처 파견 실무진 가운데서도 국회의원, 국세청장 청와대 비서관 등이 숱하게 배출되었다. 인수위가 상종가를 치는 이유를 새삼 느끼게 한다.

자문위원에도 원로 그룹 격인 당선인 자문위원과 분과위 자문위원, 취임준비위 자문위원 등 여러 갈래가 있다. 손병두 서강대 총장은 당선인의, 방송통신위원장이 되었던 최시중은 취임준비위의, 기획재정부장관으로 발탁되었던 윤증현이나 문광부장관이 된유인촌은 분과위의 자문위원이다. 한편 일각에서 남발된 자문위원 격에 불만을 표시하자 이들 중 일부를 ‘상임’ 자문위원으로 차별화했고, 상임 자문위원 중 일부를 ‘상근’ 자문위원으로 다시 차별화하기도 했다. 

이런 것들은 또 외부에 드러난 것일 뿐 인수위의 핵은 당선인 비서실과 행정실이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던 임태희 비서실장에다 대변인 주호영 의원, 실장 보좌역 정두언 의원, 총괄팀장 박영준(전 지경부 차관·구속 중), 정무1팀장 신재민(전 문광부 차관), 정무2팀장 권택기(국회의원), 정책기획팀장 추부길, 공보팀장 김인규(KBS 사장), 의전팀장 박대원(KOICA 사장), 스케줄팀장 김희중(청와대 제1부속실장) 등등 면면이 화려하다.

비서실장 보좌역 정두언 의원은 MB 친형으로 당대를 주름잡던 이상득 의원(구속 중)과 맞설 정도였다. 박총괄팀장은 이상득의 대리인으로서 인수위와 청와대 진용 짜기에 깊이 관여했다. ‘왕비서관’ ‘왕차관’ 별명을 들은 실세의 하나였다. 박영준은 인수위 구성과 이후 정부 인사에서 자기 몫을 요구하는 정두언과 수시로 마찰을 빚었다. 이동관 대변인과 강승규 부대변인(국회의원) 등 언론계 출신들도 인수위 한쪽을 차지하고 목소리를 냈다.

5년 단임 정부의 성공 여부는 취임 전 60여 일의 준비에 달려 있다고 한다. 제18대 대통령이 될 박근혜 당선인도 예외가 아닐 것임은 불문가지다. 특히 치열한 보·혁 대결의 와중에서 무리한 공약을 내건 박당선인의 경우 완급과 경중을 가려 우선순위를 매겨야 하고, 때로는 상당수 공약을 일찌감치 털어내야 한다. 그 밑그림을 그리고 나아가 설계 도면에 근거한 미래의 결과까지도 예측해야 하는 중차대한 임무를 대행하는 기구가 인수위이다.

박당선인은 대통령에 당선된 후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화해와 대탕평책으로 과거의 분열과 갈등의 고리를 끊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소외되는 사람 없이 경제 성장의 과실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하겠다며 상생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그 첫 시험대가 인수위 구성이다.

 

 

‘점령군 사령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새 대통령의 취임 전반을 주도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별칭이다. 차기 정부의 ‘청와대와 내각’을 한데 뭉친 것 이상의 임무를 수행하니 기세등등하기 마련. 그런 측면에서 ‘점령군 사령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차기 정부를 이끌어갈 모든 인재를 모아놓았으며 실제 그 이상의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다만 대선 승리에 도취한 상당수 관계자들이 눈꼴사납게 거들먹거리기 일쑤고, 그래서 ‘점령~’에는 비아냥거림이 잔뜩 묻어나는 게 사실이다.  

점령~외에 ‘국보위’라는 비유도 있다. 1980년 신군부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국가 권력을 독점했다. 현직 장관의 권위는 국보위에 파견한 과장만도 못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나온 게 ‘국보위’이다.

‘떠태’라는 말도 있다. 곧 떠날 현 정권은 ‘지는 해’이고 새로 등장할 권력은 ‘떠오르는 태양(떠태)’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인수위는 정부의 조직·기능 및 예산 현황을 파악하고, 새 대통령의 정책 기조를 설정하고, 대통령 취임 및 인수에 따르는 제반 업무를 총괄하는 등 그 임무와 권한은 방대하다. 미래의 권력 주체로서 점령군 사령부라는 말이 허튼 소리만은 아니다.

대통령 당선인은 위원장·부위원장 각 1명과 24명 이내의 위원을 임명할 수 있다. 위원은 무보수 명예직이지만 차기 고위직 1순위 후보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위원에게는 줄을 대려는 공무원, 기업 등이 길게 늘어서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위원들은 기획·정무·외교안보·경제·사회문화 등 6개 안팎으로 세분화되는 위원회에 배속되어 소관 5~9개 행정 부서의 현황 등을 보고받고 새 정책을 마련한다. 국회의 국정감사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서슬이 시퍼렇다. 

장·차관급 반열은 아니지만 차기 청와대 비서실과 행정부, 당의 요직에 중용이 기대되는 실무진도 작은 미래 권력이다. 제17대 대통령 인수위의 경우 민주당과 선거 캠프에서 1백11명, 공무원 파견인력 1백10명이 근무했다. 이 실무진에 합류하기 위해 벌어지는 물밑 경쟁도 치열하다. 미리 눈도장을 찍어두려는 것이다. 선거 캠프에서 나름의 공을 세웠다 하더라도 잡은 연줄이 튼튼하지 못하면 끼어들기 어렵다. 각 부처가 전문위원·행정관·실무요원(사무관)으로 파견하는 3명 대오에 합류하기 위해 벌어지는 국·과장급들의 다툼도 다르지 않다. 차기 실세들과의 연줄 확보가 국장·차관보·차관 자리의 보증수표와 진배없는 탓이다.

인수위가 들어설 자리는 일정치 않다. 대통령 취임까지의 60여 일과 이후의 30일을 포함한 한시적 기구인 만큼 정해진 건물은 없다. 당선인 때마다 다르다. 노무현 당선인의 인수위는 외교통상부 건물에 입주했고, 이명박 당선인의 경우는 삼청동 금융연수원에 자리했다. 인수위 뒷바라지를 담당하는 행정안전부는 정부종합청사 8층과 금융연수원 등을 물색해놓고 있는데, 당선인측이 이의를 제기하면 군말 없이 따라야 한다. 그동안 행안부는 3백여 명이 일할 수 있는 1만㎡의 공간과 주차 공간을 찾느라 부심해왔다.


 
 

대통령 당선인? 대통령 당선자? 

헌법상으로는 당선자가 맞다. 제67조 2항은 ‘~다수표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한다’, 제68조2항은 ‘대통령 당선자가~’ 등으로 명기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은 ‘당선인’이다.

제17대 이명박 인수위가 ‘당선인’으로 호칭하자 헌법재판소는 ‘당선자’로 표기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인수위는 헌재의 요구를 일축했다. 공직선거법도 ‘당선인’이고 중앙선관위가 교부한 당선증에도 ‘당선인’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에 언어학자 등이 나서 “자(者)와 인(人)의 차이도 모른다”라며 “옥편의 훈이 ‘놈 자’라니까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는 모양”이라고 꾸짖었다. “者는 특정 사람 하나하나를 특정할 때, 人은 우주인·화성인처럼 범주에 드는 대상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라며 헌재의 권고를 즉각 수용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MB를 싫어하는 네티즌들이 벌 떼처럼 나서 MB를 헐뜯었다. MB가 제 멋대로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당선인으로 호칭을 바꿔 사용한 첫 대통령은 제16대 노무현 인수위이다. 최고 중책을 담당할 인물을 지칭하는 공적 부문인데 ‘者면 어떻고 人인들 어떠냐’고 그냥 지나칠 사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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