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려든 젊은 층, 더 몰려든 고연령층
  • 윤희웅│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 ()
  • 승인 2012.12.24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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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선에서 드러난 민심 향배

결코 20대와 30대의 젊은 층이 투표장에 적게 나간 것이 아니다. 한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투표장을 많이 찾았다. 실제 수치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로 파악해보면, 20대와 30대에서는 각각 65.2%와 72.5%가 투표를 했다. 이는 한·일월드컵만큼이나 젊은 층의 투표 열기가 뜨거웠다고 평가되는 2002년 대선에 비해서도 높은 것이다. 당시에 비해 20대는 약 9%포인트, 30대는 5%포인트 오른 것이다. 통상적으로 젊은 층은 선거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실 이 정도의 수치는 현실적 최대치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그 어떤 선거에서도 젊은 층이 이번보다 더 높은 투표율을 보여주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벼랑 끝에 내몰린 젊은 층에게 어느덧 투표는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되어버렸다. 이대로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가고 있는 세상의 진로를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 젊은이들에게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개선의 여지가 없는 세상, 능력도 관심도 없어 보이는 정권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대와 30대에서는 이번 대선에서 ‘분노의 결집’이 분명 있었다. 대학 등록금의 반값 인하는 몇 년간 말만 무성하고, 청년 실업은 당연한 사회 현상이 되고 있다. 불량한 임시직 일자리를 놓고도 경쟁이 필요한 상황이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연애도, 결혼도, 자녀 출산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른바 ‘삼포 세대’가 괜한 우스개 말이 아니다. 이들은 정치적 대변 세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인 행동을 한 것이다. 분노의 투표는 이들을 정치의 중심에 앉히고, 정치인이 두려워할 존재로 등극하게 할 것 같았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12월17일 충남 천안시 서북구 쌍용동 이마트 앞 유세에서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공식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12월18일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가 서울, 천안, 대전, 동대구, 부산으로 이어지는 경부선 총력 유세를 시작하며 서울역에서 연설하고 있다.

50대 이상 연령층 ‘위기의 결집’ 투표

하지만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하면서 이들의 높은 투표율은 빛이 바랬다. 바로 50세 이상의 놀라운 투표율이다. 오히려 고연령층의 응집력이 더 강하게 나타났다. 50대와 60세 이상에서는 89.9%와 78.8%의 투표율이 나왔다. 50대의 투표율은 거의 90% 수준이다. 투표에 불참할 경우 페널티를 주는 제도가 없음에도 이렇게 높은 투표율이 나온 것은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이 정도는 합리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다. 만약 누군가 이 예상을 했다면 그는 합리적이지 않은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을 투표장에 모이게 했을까. 젊은 층이 분노의 결집에 의한 투표를 했다면, 50세 이상의 고연령층은 ‘위기의 결집’에 의한 투표를 했다고 볼 수 있다. 50대는 베이비부머 세대이다. 이들도 20대와 30대 못지않은 불안에 휩싸여 있다. 생존의 고민이 있다. 은퇴가 다가오고 있다. 정년 연장에 대한 기대도 있을 것이다. 이미 은퇴해 임시직 일자리를 찾고 있을 수도 있다. 이들의 사회적 존재감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자칫 권력이 젊은 층을 중시하는 정치 세력에게 맡겨진다면 이들에 대한 배려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가중되었다. 이들의 위기감은 이들을 투표장으로 유인했다. NLL 등 안보 이슈는 표면적으로 이들을 결집하게 하는 소재로 작용했다.

이제껏 선거 결과의 결정권자가 40대라는 데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40대가 선택하면 대세는 결정된다. 그래서 40대를 ‘세대의 독재자’라고도 부른다. 세대 간 균형추 역할을 하면서 승패가 한쪽으로 기울게 하는 데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하지만 이제 그 위상을 50세 이상 고연령층에 내줘야 할 것 같다. 이런 투표율 흐름이라면 사실 50대 이상이 선거 결과의 결정권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후보측에서 비록 ‘국민 대통합’을 이야기하고 ‘100% 대한민국’을 구호로 활용했지만, 실질적으로 보수 연합을 통한 51 대 49의 현실적 승리, 최소 승리 전략을 편 이면에는 이러한 유권자의 연령별 구성 변화를 무게감 있게 인지하고 활용한 것이라고 평할 만하다. NLL 문제를 집중 거론하고 안보를 강조하는 것은 중도층 확장 전략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까지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고연령의 보수 유권자들을 더욱 강하게 묶어냈다.

수도권, 더는 야당 안방 아니었다

지역별로는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수도권은 야당 지지세가 강했다. ‘여촌야도(與村野都)’라는 말의 생명력은 질겼다. 지난 총선에서도 전체적으로는 야당이 패했다 하더라도 서울 등 수도권에서 월등히 앞섰다. 영·호남 대결이라는 우리나라의 기본적 선거 구도와 26% 대 10%라는 영·호남 유권자 구성비를 고려하면 야당으로서는 수도권에서 지역의 절대적 열세를 벌충해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균형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이번에는 수도권이 야당의 안방이 아니었다. 서울에서 다소 앞서긴 했지만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이기기 위해서는 5%포인트 이상 격차를 냈어야 했다. 인천과 경기도에서는 오히려 박후보가 문후보를 앞섰다. 

서울은 20대와 30대의 비율이 높고, 화이트칼라 직업군이 많다는 특성을 보이는데, 이들은 대체로 야당 지지세가 강한 그룹이다. 이슈에 민감하고, 새로운 변화에 대한 수용성이 크다는 특성을 보인다. 그래서 바람을 잘 탄다. 그동안 바람을 잘 이용했던 야당이 수도권 선전에서 수혜를 입은 바 크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먹고사는 문제에 관심이 그 어느 지역보다도 크다는 특성도 지닌다. 즉, 실용적 정서도 함께 갖는 이중적 정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박후보는 경쟁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민생을 더 강조함으로써 수도권 유권자들의 이러한 정서와 욕구를 파고들었다.

경기도는 서울에 비해 인적 구성이 이질적이고 다양하다. 도농 복합 지역이 존재하고, 북부 접경 지역은 안보 이슈에 민감하다. 보수·안정 지향적 경향이 만만치 않다. 인천에는 충청 출신 유권자 비율이 높다. 수도권에서 사실상 밀리면서 PK(부산·경남·울산) 지역에서 문후보가 얻은 40%는 의미가 퇴색되었다. 충청 지역과 PK 지역이 주목받았지만 전체 유권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수도권에 비할 바 아니다.

그 밖에 박근혜 후보가 승리한 배경에는 문재인 후보측 캠페인이 미흡한 데 따른 면이 없지 않다. 정권 교체 기류가 강했다. 여론조사에서 일관되게 55%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이 기류를 후보 지지율로 흡수하지 못했다. 전면에 내세운 ‘정권 심판론’과 ‘정권 실정 공동 책임론’, ‘이명박근혜’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유권자들은 박후보를 현 정권 책임자인 이명박 대통령과 다른 정치 세력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에서는 양쪽을 묶는 전략을 추진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심판의 대상은 이대통령 또는 현 정권이지만 선거에서의 싸움의 대상은 박근혜라는 다른 세력이었다. 대중의 인식에서는 말이다. 이렇게 심판의 대상과 경쟁의 대상이 불일치하다 보니 심판론이 제대로 작동할 리 없었던 것이다. 문후보의 독자적 브랜드 구축 실패에도 기인한 바 크다. 과연 문재인표 정치, 문재인이 지향하는 미래가 어떤 것인지 대중들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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