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노무현·이명박 정부 실패 교훈 잘 살펴야”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2.12.24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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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캠프’ 이상돈 정치쇄신특위 위원이 전하는 ‘박근혜 당선 드라마’ 막전막후

12월19일 밤. 개표가 한창 진행 중인데 방송 3사에서는 ‘박근혜 후보 당선 확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여의도 새누리당사는 환호의 물결로 뒤덮였다. 박근혜 당선인이 당사를 찾아 캠프 관계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이날 상황실에서는 박당선인과 눈을 마주치며 악수를 나누기 위한, 또 TV 화면에 자신의 얼굴을 내비치기 위한 관계자들의 자리다툼이 사뭇 치열했다.

이튿날 박당선인이 첫 공식 일정으로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도 수십 명의 측근이 그를 수행했다. 하지만 몇몇 핵심 인사들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상돈 정치쇄신특위 위원도 그중 한 사람이다. 이위원은 2011년 12월 박당선인의 부름을 받고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비대위원으로 참여했다.

총선을 승리로 이끈 뒤, 대선 캠프가 꾸려지면서 그는 정치쇄신특위 위원으로 연이어 발탁되었다. 내부에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던 그는, 쇄신과 개혁의 선봉장으로 부각되면서 친박 핵심 인사들과 각을 세우기도 했다. 치열한 선거전이 끝나고 모두가 승리의 축제 분위기를 만끽할 무렵, 오히려 이위원은 자신의 중앙대 법대 교수연구실에서 차분히 지난 4개월여의 치열했던 대선 드라마를 회상하고 있었다. 12월20일 오후 2시께 중앙대 연구실에서 이위원을 만났다.

 

정말 치열한 선거였다. 막판에 지지율이 문재인 민주당 후보 우세로 역전되었다는 얘기도 나오는 등 상당히 불안한 상황이었다.

그런 얘기도 있었는데, 그래도 끝까지 근소한 차로 박후보가 승리할 것이라고 믿었다.

박후보의 승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다른 정치인에게는 없는 ‘박근혜’라는 브랜드가 워낙 확고했다. 아무리 지지율이 떨어져도 35% 이하로는 좀체 안 내려가는 절대 충성도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다. 여기서 10%포인트 정도만 더 얹으면 되는 싸움이었으니까. 또 지난 총선을 통해서, 어쨌든 수명이 다한 한나라당을 새누리당으로 전면 개조하는 쇄신 작업을 한 게 대선 승리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본다.

야권의 패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야권은 총선에서나 대선에서 적절한 전략을 가져가지 못했다. 총선에서는 통합과 연대만 강조했다. 우리는 뼈를 깎는 쇄신을 내세웠는데, 그들은 연대만 강조하다 외면당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야권은 죽으나 사나 오로지 단일화에만 매달렸다. 오로지 단일화만이 살길이라는 식으로 매몰된 것이 결국 실패 원인이라고 본다.

어쨌거나 안철수 전 후보의 문후보 지지 선언 이후 판세는 예측 불허의 초박빙 구도로 흘러간 것 아닌가?

물론이다. 우리 역시 (안 전 후보의 12월6일 문후보 적극 지지 선언 이후) 긴장한 것은 사실이다. 11월의 3자 구도 상황에서 우리 쪽이 제일 우려한 시나리오는 역시 여론조사를 통해서 문후보가 단일 후보로 선출되고, 안 전 후보가 러닝메이트식으로 문후보의 손을 잡고 전국을 둘이서 같이 돌면 만만치 않은 판세가 될 것이라는 예상은 했다.

만약에 단일 후보로 안 전 후보가 나섰더라면 결과가 다르게 나왔을 것이라는 얘기도 많다.

가설은 의미가 없다. 그리고 안 전 후보는 이미 때를 놓쳤다. 본인이 정말 대통령이 되고자 했으면, 최소한 지난 4월 총선 때는 신당을 만들어서 본인이 직접 출마를 했어야 한다. 당시의 국민적 지지였다면, 본인도 당선되고 원내교섭단체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박근혜 후보 캠프 내부의 위기는 없었나?

사실 여러 차례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우선은 선거를 100일 정도 남겨둔 시점에서 나온 박후보의 ‘인혁당 발언’이었다. 대법원의 판결을 인정하지 않는 듯한 뉘앙스의 그 발언 파문이 확산되면서 ‘과거사 굴레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겠다’는 위기감이 엄습했다. 민주당에서는 호재를 만났다는 듯이 집요하게 공격하고…. 당시 박후보 표정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으니까…. 그래도 부랴부랴 기자회견을 통해 다시 바로잡고 하면서 파문이 좀 가라앉나 했더니, 연이어 10월에는 또 ‘MBC의 정수장학회 지분 매각 협상’ 의혹이 터졌다. 정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과거사 악재가 연이어 터지는 상황에서 11월 야권 후보 단일화 폭발력까지 더해지면 선거는 이대로 끝나는 상황이었다.

대선이 끝났지만 정수장학회 등 과거사 문제는 향후에라도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과거사 문제는 ‘유신 긴급조치 피해자 보상 특별법’ 발의로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고 본다. 정수장학회 문제도 지금 최필립 이사장이 아직 사퇴하지 않고 있지만, 당선되었으니 이후 상황이 바뀔 것이라고 본다.

10월에는 정수장학회 문제뿐만 아니라, 당시 캠프 내 핵심 인사들인 김종인 행복추진위원장과 안대희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의 사퇴설이 불거지기도 했는데.

그랬다. 단순한 설이 아니라, 그때는 진짜 두 분 다 박차고 나갈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더 심각했던 것은 박당선인이 당시 그런 절박한 위기감을 잘 못 느끼는 듯했다는 것이다.

박당선인도 그랬지만, 당시 캠프 내 다른 참모들 사이에서도 ‘나갈 테면 나가라’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박당선인은 당시 김종인·안대희 둘 다 설마 진짜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한 듯했다. 만약 당시 실제 두 사람이 캠프에서 나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대선에서 이기기 어려웠다고 생각한다.

결국 파국은 피한 채 봉합되었다. 누가 양보한 것인가?

그건 나도 모르겠다.

보도를 보니, 김종인 위원장이 “박당선인은 나머지 48%를 포용해야 한다”라고 했더라. 화합을 이루기 위한 카드로 일각에서는 탕평 인사와 호남 총리론을 거론하기도 한다.

꼭 지역이 호남이어야 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훌륭한 총리감인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내가 아는 박당선인의 스타일로 볼 때, 역설적인 인사는 안 할 것으로 본다. 아마도 예측 가능한 인사를 하지 않을까.

캠프 주변에서는 1997년 대선 때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벤치마킹할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당시 김대통령은 당선 직후, 전두환·노태우 정권에서 중용되었던 이종찬·김중권 씨 등을 인수위원장과 비서실장으로 전격 발표했는데.

당시는 호남 출신의 김대통령이 워낙 색깔론에 시달렸기 때문에 그런 파격 인사가 효과를 누린 측면이 있다. 하지만 지금 박당선인이 그렇게 해야 할 당위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오히려 지금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 대척점에 서 있던 사람들과 대척점에 있게 된 이슈들을 대승적이고 전향적으로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박당선인이 어떤 인사를 할 것으로 전망하는가?

캠프를 통해 구축된 학계 등 각 분야 전문가 그룹은 상당히 탄탄하다고 본다. 문제는 정무 라인이 아닐까. 야당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역대 정권 출범 때마다 가신들로 불리는 핵심 측근들의 거취가 항상 문제가 되었다.

과거 노무현 정부나 이명박 정부 모두 고집스럽게 핵심 측근들을 다 끌어안고 갔고,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 두 정권의 교훈에서 잘 살펴야 할 것이다. 박당선인이 과거 청와대 시절, 아버지(박정희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 대한 학습이 되어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박대통령의 초기 인사 스타일은 경제나 과학 등의 분야에 우수한 석학들과 전문가들을 과감히 발탁해서 상당히 오랫동안 그들에게 전권을 맡겼다는 것이다. 물론 정권 말기에는 그런 총기가 흐려지면서 측근들에게 오히려 당했지만….

향후 박근혜 정부의 최대 관건은 무엇이 될 것이라고 보나?

결국 인사가 만사가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도 출범 직전 청와대 수석 인사에서부터 완전히 망가지기 시작했다. 경제와 과학 등 각 전문 분야는 정치권과 상관없는 전문 인재들을 등용해야 하고, 정치권 인사들 중에서는 정말 정무적인 감각이 있는 이들을 잘 발탁해야 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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