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정국 주도권 카드 ‘서진 정책’
  • 이승욱 기자 (smkgun74@sisapress.com)
  • 승인 2012.12.24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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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비주류와 진보 인사까지 포함한 파격적 인사 예고

“대선 이후가 더 큰 문제이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절반을 차지할 반대 진영을 어떻게 품어 안느냐가 새 정권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할 것이다. 하지만 핵심 측근에게 의존하는 듯한 박후보의 스타일에 당장 큰 변화가 없을 듯해 보여 걱정이다.”

대선을 불과 이틀 앞둔 12월17일 한 친박계 핵심 인사에게서 나온 우려 섞인 목소리이다. 박후보의 당락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던 당시, 이 측근의 고민은 좀 더 현실적인 데 가 있었다. 그만큼 이번 대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지역·세대·이념 간 갈등의 골이 깊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18대 대선을 통해 얻은 득표율은 51.6%이다. 그는 1987년 이후 실시된 역대 대선 중에서 처음으로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얻은 당선인이 되었다. 하지만 경쟁자였던 문재인 민주당 후보 역시 48%의 높은 득표율을 올렸다. 낙선자가 48%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한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이다. 즉, 박당선인의 집권을 ‘바라지 않은’ 유권자도 1천4백69만여 명에 이르는 셈이다.

지지층 간의 갈등 양상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박당선인은 새누리당의 텃밭인 대구에서 80.1%의 득표율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민주당의 텃밭인 광주에서는 7.8%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세대별 갈등 양상은 더욱 뚜렷해진다. 50대와 60대 이상 고연령층은 박당선인으로의 쏠림 현상을 보였지만, 2030세대는 문후보를 지지하는 경향이 강했다.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50대와 60대 이상에서는 박당선인의 지지율이 62.5%와 72.3%로 높았지만, 20대와 30대에서는 문후보의 지지율이 65.8%와 66.5%로 더 높게 나와 대조적이었다.   

12월20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당선 후 첫 일정으로 현충원을 참배하러 가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호남 출신 장하준 교수 영입 시도했었다”

박당선인이 정국을 주도할 핵심 카드로 국민 대통합을 위한 공정한 인사를 최우선적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집권 초기의 혼란에서 드러났듯이 새 정부의 첫 인사는 집권 초반기 정권의 운명을 결정짓는 방향타가 된다. 

이런 가운데 박당선인이 추구하는 국민 대통합을 향한 탕평책 인사의 구체적인 모습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박당선인과 새누리당 주변에서는 15년 전 김대중(DJ) 정부가 집권 초반 구사했던 이른바 ‘동진(東進) 정책’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남권의 지지세가 취약했던 DJ 정부가 동쪽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면, 거꾸로 수도권과 호남권에 구애를 해야 할 박당선인 입장에서는 ‘서진(西進) 정책’을 펼쳐야 하는 셈이다.

DJ는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TK 출신의 김중권 전 의원을 영입했고, 인수위원장으로 5공 정권 출신의 이종찬 전 의원을 임명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DJ의 동진 정책은 당시 비(非)호남권의 민심을 안으면서 집권 초반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박당선인의 집권 후 첫 탕평책 카드로 ‘호남 총리론’이 꾸준히 거론되는 것도, 서진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새누리당의 TK(대구·경북) 지역 친박계 한 핵심 의원은 “대선 국면에서 호남 총리론 카드를 만졌던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는 “당시 호남 출신의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가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고, 실제 접촉을 시도했지만 장교수가 고사하면서 현실화가 안 되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박당선인이 집권에 성공한 만큼 지난 대선 국면 때와는 양상이 달라졌다. 호남 출신 인사를 다양하게 기용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만큼 호남 총리론은 다시 유력한 카드로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당선인의 서진 정책이 단순히 호남과 수도권 출신 인사를 기용하는 지역 간 안배에서 벗어나, 새누리당 내 비주류인 친이계와 심지어는 야권 및 진보 세력까지 포괄하는 폭넓은 인사 탕평책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친박계 재선의 조원진 의원은 “박당선인의 국민 대통합을 향한 인사 탕평책은 지역과 여·야를 막론하고 큰 범주에서 이뤄질 것이다. 박당선인이 대선 기간 동안 국민 대통합을 가장 앞선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만큼 박당선인을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보듬을 수 있는 통 큰 행보를 실천에 옮길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이념적인 스펙트럼이 다소 다르더라도 합리적인 진보 인사까지 인수위와 새 정부 내각에 기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왼쪽)이 1998년 2월25일 청와대 집무실에서 김중권 비서실장(가운데)이 올린 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친박을 쳐야 박근혜 대통령이 산다”

2030세대를 끌어안을 수 있는 인사 탕평책도 주목받고 있다. 새누리당의 김상민 초선 의원은 “박당선인을 지지하지 않았던 유권자가 48%에 이른다는 것은 그만큼 젊은 2030세대가 아직도 새누리당과 박당선인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젊은 세대와 현장에서 긴밀히 호흡하면서 소통해온 사람들을 대거 영입해 새 정부와 젊은 세대를 연결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만드는 방식으로 인사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친박계 등 핵심 측근들을 과감히 쳐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지역과 세대, 이념을 아우르는 박근혜식 서진 정책이 새 정부의 내각 인선 등에 제대로 반영되려면, 일부 핵심 친박 인사를 제외한 측근들의 2선 후퇴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친박계 내부에서도 “친박을 쳐야 박통(박근혜 대통령)이 산다”는 기류가 자리 잡고 있는 분위기이다.

친박계의 한 중진 의원은 “친박계 의원들이 자리다툼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만 해도 새 정부에는 심각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친박계가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선 당시 박당선인의 정책을 담당했던 새누리당의 한 수석전문위원은 “친박계가 정권 참여에 주도적인 모습을 보이는 순간 국민들의 외면을 받을 것이다.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친박계 인사들을 2선으로 후퇴시키고, 친이계와 나아가서는 이념적인 스펙트럼이 다소 다르더라도 합리적인 진보 인사까지도 새 정부에 참여시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야권과의 동반 행보도 주목받는 박당선인의 향후 정국 운영 방향이다. 박당선인은 새누리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여대야소 구도에서 국정 운영을 시작하는 만큼 부담은 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향후 안철수 전 후보 등이 가세하는 정계 재편이 정국에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고, 2013년 4월 ‘미니 총선’이라고 불리는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야권과의 원만한 관계 유지도 중요한 국민 대통합 과제 중 하나인 셈이다. 이미 박당선인과 새누리당은 대선 과정에서 안 전 후보가 제시한 정치 쇄신 과제를 포괄하는 국정 쇄신 종합 추진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 여부를 점검하는 가칭 ‘국정쇄신정책회의’를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꾸리기로 했다.

박근혜 당선인이 지난 12월16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대통령 선거 후보자 토론회에서 문재인 후보와 악수 하고 있다. ⓒ 문재인 제공

“세대 갈등은 전교조 탓” 갈등 부추겨 

특히 박당선인과 새누리당은 국정쇄신정책회의와 별도로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공약했던 여·야·정을 아우르는 정치 협의체도 검토하기로 한 만큼, 이 협의체를 통해 야권과의 관계 회복에 나설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박당선인은 12월20일 문후보와의 통화에서 “치열하게 선거를 치렀지만 이게 다 국민의 삶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선택받고자 함이 아니었겠느냐”라고 만남의 메시지를 보냈고, 이에 대해 문후보는 “제가 당을 책임지고 끌어갈 수는 없겠지만 민주당이 정파와 정당을 넘어서 국정에 협조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화답했다.

이에 앞서 박당선인은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해단식에 참석해 “우리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의 마음도 잘 챙기고 담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라면서 “앞으로 야당을 소중한 파트너로 생각해 국정 운영을 해나가겠다”고 밝혀 야권과 관계 회복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하지만 박당선인과 새누리당이 몇몇의 상징적인 파격 인사만으로 우리 사회에 깊게 골이 팬 보·혁 갈등을 풀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박선규 대변인은 당선 확정 직후인 12월20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18대 대선에서 세대 간 대결 구도가 눈에 띈다”는 사회자의 지적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라면서도 “(세대 갈등에는) 우리 교육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박당선인이 토론회 때 전교조가 가지고 있는 정치성 그리고 이념 편향성을 걱정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한 걱정이 좀 있다”고 말해 오히려 이념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초래했다.

결국 박당선인이 만들어갈 ‘박근혜 시대’의 갈등 해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박당선인과 새누리당 스스로가 진지한 성찰과 실천을 통해 국민 모두의 진정성을 얻어야 하는 셈이다. ‘박근혜 시대’의 주인공인 박당선인이 이제 구호가 아닌 행동으로 국민에게 답할 차례이다. 


집권 초기 갈등 봉합 못 하면 지지율 반 토막…
역대 정부 사례 반면교사 삼아야

역대 새 정권이 들어선 이후 1년차는 집권 5년 동안 국정 운영의 성패가 좌우되는 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집권 초반 1년의 성공은 당선인의 비(非)지지층을 얼마나 끌어안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실제 집권 초반 비지지층과 대립각을 세운 역대 정권은 집권 내내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쥐지 못한 채 집권 5년 내내 흔들려야 했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두 정부 출범 직후 모두 국정 운영 지지율은 75.1%와 57.4%로 과반 이상을 차지했지만, 집권 1년 만에 각각 34%와 32%의 지지율로 거의 반 토막 났다. 두 정권 모두 지역과 세대, 이념 갈등의 깊은 골을 안고 출발했다는 점에서, 이는 앞으로 열리는 ‘박근혜 시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MB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철저한 측근 중심의 인사 정책을 실시하면서 지지율 하락과 함께 정국 주도권을 상실하고 말았다. MB 정부는 집권 초기 이른바 ‘고소영’ ‘강부자’ 내각으로 조롱을 사더니, 이후에는 ‘회전문’ 인사로 자기 사람 돌려쓰기를 반복하면서 집권 내내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코드 인사’를 신랄하게 공격하던 MB 정부와 새누리당이 집권 초기부터 공정한 인사의 원칙을 무너뜨리면서 비지지층뿐만 아니라 지지층에게도 실망을 안겨준 것이다. 결국 집권 초기 비지지층을 아우르지 못하는 인사는 정권의 권위뿐만 아니라 자체 존립 기반마저 흔들 수밖에 없다.

박당선인이 당선 후 ‘국민 대통합’과 ‘탕평책’ 등을 특히 강조한 것도, 갈등을 봉합하지 않은 채 집권한 역대 정권의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12월20일 새누리당 당사에서 발표한 대국민 인사에서 “과거 반세기 동안 극한 분열과 갈등을 빚어왔던 역사의 고리를 화해와 대탕평책으로 끊도록 노력하겠다”라면서 “모든 지역·성별·세대의 사람을 골고루 등용해 대한민국의 숨은 능력을 최대한 올려 국민 한 분 한 분의 행복과 100%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 저의 꿈이자 소망이다”라고 말했다. 박당선인 역시 집권 초반의 정국 운영을 국민 대통합을 위한 공정한 인사에서 찾고 있다.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부일장학회 설립자 고 김지태씨의 유족들이 지난 10월15일 서울 중구 정수장학회를 항의 방문해 굳게 닫힌 문을 두드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야권과 반대 세력이 끊임없이 거론해온 과거사 문제에 대한 과감한 해결책을 정국 운용의 카드로 제시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때 발생한 민주화운동 탄압 갈등을 비롯해, ‘장물 유산’ 논란을 빚고 있는 정수장학회와 영남대 사유화 문제 등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해법을 제시해 국정 운영의 부담을  덜겠다는 의도이다.

이에 대해 박근혜 후보 캠프의 정치쇄신특별위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는 12월20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24쪽 참조)에서 “과거사 문제는 ‘유신 긴급조치 피해자 보상 특별법’ 발의로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정수장학회 문제도 (박당선인이) 당선되었으니 이후 (문제가 해결되는 방향으로) 상황이 바뀔 것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현 정부에서 산적해 있는 각종 사회 갈등 현안들도 박당선인에게 숙제로 남아 있다. 특히 방송·언론계와 현 정부의 대립과 갈등 양상은 심각한 수준에 있다. 지난 5년 동안 ‘낙하산 사장’ 취임에 반대하거나 보도 공정성 훼손에 항의하면서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해직된 언론인은 현재까지 20명에 이른다. 또 같은 이유로 정직과 감봉 등 징계를 받은 이들까지 합하면 4백5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새누리당에서 방송·문화 분야의 정책을 담당하는 한 인사는 “박당선인이 당선된 만큼 언론사 파업 등 해묵은 논란을 주도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아직 해법을 두고 구체적인 시나리오가 나온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 정부의 친기업 성향으로 노사 간 갈등 양상도 첨예해졌다. 특히 한 달째 송전탑 농성을 벌이고 있는 쌍용차 사태는 현 정부의 대표적인 노사 갈등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측은 쌍용차 사태의 국정조사 실시 등을 약속했지만, 가시적인 행보는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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