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자, 춤을 추자
  • 권대우 발행인 ()
  • 승인 2012.12.3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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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화초와 나무로 꾸며진 정원. 그곳에 5~6살 되어 보이는 아이가 삽을 들고 나타난다. 이 녀석의 모습이 재미있다. 정원 한 구석의 흙을 파내기 시작한다. 힘에 부치는 듯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흙 파내는 데 정신이 팔려 있다.

잠시 후 파 놓은 구덩이에 자신이 갖고 놀던 장난감 승용차 벤츠를 집어넣고 묻어 버리는 게 아닌가? 그리고 물을 뿌린다. 마치 화초나 나무를 심듯이. 장난감 벤츠 승용차를 땅속에 묻는 일에 이렇게 정성을 쏟을 수 있을까? 흙에다 물을 뿌리는 녀석의 모습이 왜 이처럼 행복하게 보일까?

알고 보니 고개가 끄덕거려졌다. 땅을 파 화초를 심고, 물을 뿌리고, 기다리면 성장해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듯이, 성장한 나무가 되듯이 장난감 벤츠도 그렇게 될 거라 믿고 있었다. 이 장면은 메르세데스 벤츠 회사가 유럽 지역에서 방송되는 TV에서 보여준 CF이다.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홍보 영상이었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아니고는 꿀 수 없는 꿈, 순수한 믿음의 단면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어느 날 서울 거리. 길을 달리던 경차 한 대에서 벤츠 CF를 연상시키는 장면을 목격했다. 차 뒤편 유리창에 붙은 글귀가 인상 깊다. 그냥 혼자 보고 넘기기에는 아까운 문구였다. “나도 빨리 커서 벤츠가 될래요.” 경차를 타는 소시민의 소박한 꿈. 바로 그것이었다.

꿈, 희망, 미래가 있는 사회. 소시민의 꿈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사회. 이런 사회는 행복한 사회이다. 꿈이 없고, 좌절감이 팽배한 곳에서 행복이라는 나무는 크지 못한다. 미래도 없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되기를 꿈꾼다. 백수는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고달프지만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준비하면서 때를 기다린다.

절망 속에서 꿈을 잃어버린 사람이 많으면 희망의 싹이 트지 않는다. 편 가르기의 맥을 끊지 못하면 선진국의 꿈은 무산된다. 상상의 나래를 펴며 꿈을 꿀 수 있어야 역동적인 사회이다. 그런 꿈이 이루어지도록 돕는 자가 많으면 행복의 나무를 키우는 사회가 된다.

2013년.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새해에 맞은 태양이 송년에 떠올랐던 태양과 뭐가 다를까? 그러나 2013년은 좀 다르다.

우리는 좌절과 대립, 갈등 속에서 2012년을 보내야 했다. 이념·지역·세대 갈등 속에서 총선과 대선을 치렀다. ‘가계 빚 1천조원 시대’가 말해주듯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양극화가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화되었다. 젊은 백수가 거리에 넘치는 아픔도 겪었다.

지구촌도 마찬가지였다. 곳곳에서 예기치 못한 재앙, 불행한 사건들이 잊을 만하면 발생했다. 수시로 다가오는 지구촌의 긴급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그런 탓에 인내심은 동이 났다. 초조하게 발을 구르며 동분서주했지만 실망만 키웠다. 

새해에는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다. 국민들은 큰 숲을 보면서 그늘진 곳을 챙기는 새로운 리더십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상처 준 사람이 반성하고, 상처받은 자가 치유받는 새 시대가 열리기를 원한다. 꿈을 꾸는 사회, 꿈이 실현되도록 끌어주고 밀어주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시사저널> 임직원들도 다음과 같은 2013년 목표를 정했다. “어떻게 하면 꿈을 꾸는 사회, 그 꿈이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까?” “어떻게 하면 행복한 독자들이 많은 사회를 만들까?” “어떻게 하면 꿈이 이루어지는 기쁨 속에서 독자들이 매일 춤을 추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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