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돈이 의원들 쌈짓돈인가
  • 신율 |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 승인 2013.01.08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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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예산안, ‘쪽지 예산’으로 얼룩… 자정 능력 상실한 국회 행태 가관

새해 예산안이 문자 그대로 새해에 통과되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얼핏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법적으로는 전년도 12월2일까지 다음 해 예산안이 통과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법정 시한을 넘겼을 뿐 아니라, 심지어 해를 넘기는 사태까지 벌어진 것이다.

물론 이번 예산안은 여야 합의에 의해 통과되었다. 여야 합의에 의해 예산안이 통과된 것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최초이다. 그러니까 막판에 철든 꼴이 된 셈이다. 그래서 이를 기특하게 생각해야 할지, 아니면 해를 넘기고 통과시킨 것에 대해 비난을 해야 할지 약간은 헷갈린다. 하지만 역시 법을 지켜야 할 국회가 시한을 또다시 넘겼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새해 첫날인 1월1일 오전에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2013년도 예산안이 통과되고 있다. ⓒ 연합뉴스
당 지도부 지역구에 집중되는 ‘쪽지 예산’

더구나 18대 국회 마지막 작품이 바로 일명 ‘국회 선진화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회는 더욱 거센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다. 국회 선진화법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첫째, 국회 몸싸움의 원인으로 지적되어온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권한을 대폭 축소해서 천재지변 또는 국가 비상사태나 교섭단체 대표들의 합의가 없는 한 직권상정을 할 수 없도록 했다. 대신 국회의장은 위원회에 회부된 안건에 대해 재적 의원 또는 소관 위원회 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신속 처리 대상 안건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둘째, 예산안과 부수 법률안은 매년 11월30일까지 심사를 마쳐야 하고, 심사를 마치지 못한 경우 해당 의안은 그 다음 날에 본회의에 바로 부의된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예산안이 법정 기일 내에 통과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셋째, 야당이 물리적 방법 대신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반대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미국식 필리버스터 제도를 도입했는데,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는 경우 본회의 심의 안건에 대해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무제한 토론할 수 있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국회 의사 진행 과정에서 야당의 물리적인 방해를 방지하기 위해 의장석이나 위원장석을 점거한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바로 본회의에 부의해 지체 없이 의결하도록 했다.

물론 이런 내용의 국회 선진화법이 통과되기는 했어도 법의 효력은 오는 5월에 발효된다. 그러니까 이론적으로는 아직 지키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론을 떠나 국회가 스스로 이 법을 통과시켰으면 자신들이 그 법의 정신을 지금부터라도 보여주었어야 옳다. 즉, 대선 때문에 지난해 11월30일까지 심사 완료는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최소한 해는 넘기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국회 선진화법이 제대로 발효되기도 전에 그 법의 실효성을 의심하게 만들고 또 한 번 국회를 신뢰할 수 없게 만들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번 예산안 심사 과정을 보면 이른바 ‘쪽지 예산’ 요청이 폭주했다는데, 이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쪽지 예산’이라는 말은, 예산안을 심사 중인 국회 예산결산위원들에게 다른 의원들이 특정 사업과 관련된 예산을 올려달라는 ‘민원’을 쪽지에 써서 전달하는 관행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은 쪽지가 아니라 문자메시지나 카톡으로 보내기 때문에 ‘문자 예산’으로 불러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물론 이런 쪽지 예산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쪽지 예산의 혜택을 비록 일부이지만 특정 지역 주민들이 보게 되는 것이고, 이들 역시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또 어떻게 생각하면 국회의원이 자신의 지역구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석할 소지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지역에 대한 선심성 예산이 해당 지역구 정치인들의 힘의 순서에 의해 배당된다는 점이다. 즉 당 대표나 원내대표, 특히 여당 지도부의 지역구에 이들 예산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의 지역구 의원이 당내에서 파워맨이 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역으로 당내에서 요직을 맡으면 이런 예산을 많이 따내 해당 지역구 의원을 더 오래 해먹을(?) 수 있게 된다고도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러니 의원들은 목 내놓고 당에서 한자리하려 하는 것이고, 그래서 정치 선진화는 고사하고 당내 권력 투쟁만 난무하는 꼴이 초래된다.

이런 상황은 당내 권력 투쟁만 야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치 신인의 국회 진입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뿐만 아니라 상향식 공천으로 공천 개혁을 한다는 본래의 취지도 훼손시킨다. 왜냐하면 기존의 정치인들이 이런 식으로 예산을 따서 지역구 사업을 벌이면, 그럴 능력이 없는 정치 신인들이 상향식 공천에서 공천을 받을 확률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상향식 공천이 공천 개혁의 계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성 정치인들의 현상 유지 수단으로 전락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예산안은 지난 18대 대선 기간 내내 여야를 막론하고 주장했던 ‘국회의원 특권 폐지’도 물 건너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데에서 또 하나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낸다. 바로 국회의원 특권 폐지의 단골 항목인 국회의원 연금이 이번 예산에 보란 듯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국회의원들은 ‘의원 연금 폐지에 관한 법’ 개정안이 아직 통과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의원 연금이 이번 예산에는 불가피하게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할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국회의원 연금, 이번에 보란 듯이 반영

국회의원 특권 폐지는 반드시 법의 개정만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정치권의 자정 의지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자신들의 월급, 그러니까 세비도 30% 깎겠다고 한 것이 불과 얼마 전인데, 자신들의 세비 역시 법 개정을 핑계로 이번 예산에 그대로 반영시켰다. 이 정도 되면 국회 스스로를 통한 정치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그런 바람이 얼마나 무망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결국은 우리 세금으로 힘 있는 국회의원들의 의원직 수명을 연장시키고 그들의 거짓말을 오히려 돕고 있는 꼴이 된 것이다. 그러면서 정치권은 “힘을 합쳐 경제 난국을 돌파하자”고 하고, “새로운 정권은 새로운 정치를 할 것”이라고 떠들어대고 있다. 정말 말이라도 하지 않았으면 덜 미울 텐데, 이건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정치권은 스스로 제 무덤을 파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들이 이런 짓을 계속할수록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국민들은 또 다른 새로운 인물을 통한 새로운 정치를 찾을 것이 분명하다는 점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이번 대선에서 돌풍처럼 일어난 ‘안철수 현상’은 바로 이런 정치권의 행태 탓에 나타난 것이었다. 만일 정치권이 계속 국민들의 돈을 마치 자기 돈인 양 굴리고 마음대로 한다면, ‘제2의 안철수’가 나올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기성 정치권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 역시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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