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곳 투성이 교실의 속살이 고스란히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3.01.08 16: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교의 현실 그대로 비춘 드라마 <학교 2013>

“모든 인생은 실험이다. 더 많이 실험할수록 더 많이 나아진다. 아이들은 감추고 어른들은 모르는, 이곳은 바로 학교다.”

시청자들로부터 호평과 지지를 받고 있는 드라마 <학교 2013>은 첫 회 첫 장면을 극 중 강세찬 선생님(최다니엘 분)의 독백으로 꾸몄다. 학교를 정면으로 다루겠다는 의지를 담은 카메라는 정문을 지나 건물 중앙 출입구를 통과해 교실 앞문으로 들이닥친다.

이 드라마를 본 많은 이들이 호평을 보냈다. 방송작가 출신이며 방송 모니터 요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서울 염창동의 양 아무개씨는 “이렇게 학교의 현실을 정확히 짚어내다니, 놀랍다. 시청률을 의식해서 학교는 배경일 뿐이고 성장통을 다루거나 러브 라인에 치중할 것으로 알았는데, 시리즈 중반까지도 기획 의도를 그대로 가져가는 데 박수를 보낸다”라고 호평했다.

ⓒ KBS 제공
교육 현장의 진실을 파헤치다

이 드라마를 기획하고 연출하고 있는 이민홍 프로듀서는 불행해져가는 학교 그리고 청춘들의 아픔에 관한 상황을 펼쳐내는 ‘리얼 스토리’로 모두가 조금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1999년 <학교1>을 연출했던 그가 13년 만에 다시 바라본 현재의 학교는 불행했다. 학생은 왕따·자살·폭력의 아이콘이 된 지 오래고, 선생은 벌점 주러 등교하는 무기력한 직장인이 되었으며, 부모는 자식의 신분 상승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폭군일 뿐이다. 학생들과 교사 사이의 위계질서가 사라지고, 정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메마른 곳이 바로 지금의 학교인 것이다. 이프로듀서는 “취재하러 학교에 갔는데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심각했다. 그래서 학교의 속살을 사실감 있게 들여다보는 드라마를 만들자고 생각했다. 학교가 토해내는 절망을 절망대로 아프게 직시해야만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을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희망이 괴물이 아닌 학교의 미래를 만날 수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학교 2013>에는 아이들의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우선시했기에 교사와 학부모 이야기도 똑같은 비중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민홍 프로듀서의 고집대로 끝까지 교육 이야기를 풀어갈 계획이다. 이에 공감한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 2013>에 장관 표창장을 주었다. <학교 2013>은 교육과학기술부와 공동으로 학교 폭력 사례 수기 공모전을 실시했다. 공모전에 오른 내용을 골라 드라마에 에피소드로 활용한다고 밝혔다.

시청자의 호평과 함께 언론의 관심 또한 폭발했다. 각 언론사에서 문의와 인터뷰 요청이 빗발치자 바쁜 일정에도 제작진은 촬영 현장 공개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 1월4일 낮에 예정되었던 공개 행사는 갑자기 취소되었다. 제작진의 한상우 프로듀서는 “상황이 갑자기 급해져서 어쩔 수 없었다. 현장에서 다음 주 방송분 제작에 차질이 생겨서 시간을 따로 뺄 수가 없겠다고 해서 미루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시청자 김진주씨는 “<학교 2013>을 챙겨볼 때는 그저 거기 나오는 학생이나 선생님에 빙의되어서 학교를 다닌다고 할까요? 더 보고 싶은데, 벌써 끝나간다니요. 연장 안 될까요”라고 아쉬워했다. 많은 주제와 내용을 담는다고 해서 연속극인가 했는데, 16부작 미니시리즈이다. 한프로듀서는 “연장에 대해서는 논의된 것이 없다. 장나라씨가 2월부터 중국에 가서 중국 드라마에 출연해야 하는 등 주요 배우들의 차후 일정 때문에 연장할 수도 없다. 늘어지면서 끝나는 것보다 아쉽게 끝나는 것이 낫다는 데 연출진들이 동의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교사들의 말 못 할 고민을 아십니까?

이 드라마는 현직 교사들로부터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말하지도 못하고 답답해하던 것을 속 시원히 털어놓은 것 같다는 반응이다. 극 중 교무실의 풍경을 시청한 초등학교 교사들까지  답답한 현실을 대신 토로해주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홍은동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수요자 중심의 교육 정책으로 열심히 서비스하라고 교사들에게 강요하는 교육계의 윗사람들 덕분에 교권은 지하로 추락한 지 오래다. 하지만 그들은 교사들 스스로 교권을 버렸다고 발뺌한다.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은 10년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졸속 행정으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부장관이 바뀔 때마다 바뀌어서 일선 학교에서는 혼란만 가중되고 사교육만 춤춘다. 현장과 동떨어진 교육 정책을 강요하고 잘 안 되면 정책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하기보다 교사의 자질 부족으로 책임을 회피한다”라며, <학교 2013>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폭 넓은 호평이 이어지는 데 대해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드라마에서 진정성이 느껴진다. ‘현실을 제대로 그려내겠다, 그 속에서 희망을 한번 찾아보겠다’라는 제작진의 진정성이 느껴져서 시청자 입장에서 지지를 보내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하씨는 또 “칙칙한 드라마이다. 현재 국민이 체감하는 현실을 반영해서 리얼한 드라마가 나왔다. 그래서 시청자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 이유를 드라마에 녹여내고 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공간 같은, 수용소 같은 학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준 드라마이다. 미화하지도 않고, 청소년의 꿈이 배어 있는 하이틴 드라마가 아닌 것이 유감이지만, 지옥 같은 대한민국 학교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반영한 드라마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덧붙였다.


ⓒ KBS 제공
승리고등학교는 특목고, 자율고 등으로 고교 평준화가 이미 깨진 현실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서울 강북에 있는 신흥 일반 고등학교이다. 교훈은 ‘홍익인간’이지만, 강남의 명문고 교장을 지낸 새 교장이 부임하면서 진짜 교훈은 ‘넘버3’가 된다. 전국 50위 안에 드는 학교 중 47개가 특목고·자율고이고 나머지 세 개가 일반고이니, 일반고 중 세 번째라도 들어 특목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자는 뜻이다. 그 목표를 위해 복장 및 두발 검사, 전교 등수 공지, 비수능 과목 수업 변칙 운영, 방과 후 교실과 전원 야간 자율 학습 운영을 원칙으로 정한다.

전교 1등과 전교 꼴등, 학교 일진과 특수 학생이 공존해 있는 승리고등학교 2학년 2반은 대한민국 교육 현실의 축소판이라 할 만하다. 내신을 위해 시험 문제를 훔치는 아이들, 가정 폭력에 시달리다가 이제는 친구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일진 짱, 괴롭힘당하는 특수 학생을 모두 품어야 하는 담임선생님은 학생의 자율권을 존중하는 5년차 국어교사 정인재(장나라 분)이다.

휴대전화를 압수했다고 덩치 큰 학생에게 얻어맞고, 체벌했다고 학부모에게 머리끄덩이 잡혀 수모를 겪고, 급식 때 소란을 떤 아이에게 반성문을 쓰게 했다고 학부모에게 무릎을 꿇어야 하는 여교사. 어떤 이는 교사는 방학이 있어서, 일 안 해도 월급이 나와서 좋겠다고, 부러움 반 질투 반 섞어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누가 직업 선호도 1위, 최고의 신부감이라 말했던가”라고 반문한다.

그래도 정인재 선생님은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우리들이 그렇게 가르치고, 부모도 그래라 그래라 하고, 학교도 어쩔 수 없다고 그냥 내버려두는데! 애들이 무슨 잘못이겠어요?”라며 끝까지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너무 힘들어 교사직을 그만둘까 고민하던 정선생님이 문득 지난날의 교사 일기를 펼쳐본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아직은, 아이들의 손을 놓을 때가 아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