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하면 떠오르는 첫 이미지는 “싸움꾼”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3.01.1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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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미디어리서치, 정치 개혁 관련 대국민 여론조사 의원 직무 수행 점수는 10점 만점에 4.36점

‘“국회의사당이 여의도에 있는 한, 한강 물은 결코 맑아질 수가 없다.”

정치권에서 우스갯소리처럼 떠도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이제 더는 단순한 농담으로만 치부할 수 없게 되었다. 새해 벽두에 불거진 의원연금 1백28억원 예산안 통과 및 ‘쪽지 예산’ 논란과 국회 예결위 소속 여야 의원들의 외유성 해외 출장에 대한 비난 여론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새 의원연금제 추진 논란까지 이어지면서 “국회는 필요악”이라는 분노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시사저널>은 ‘정치 쇄신 및 정치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파악해보고자 1월8~9일 여론조사 전문 기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대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한 ‘RDD(무작위 임의 걸기)’ 방식을 이용했으며, 95% 신뢰 수준에 오차 범위는 ±3.1%포인트이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서울 광화문 광장에 모인 유권자들이 유세 연설을 듣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당초 이번 여론조사를 준비하면서 <시사저널>은 ‘국회의원의 이미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마련하고, 그 보기로 각각 긍정적 이미지와 부정적 이미지 5가지씩 총 10가지를 제시했다. 하지만 미디어리서치측에서 “특정 보기를 제시해서 대답을 제한하는 것보다는, 보기 없이 그냥 응답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편이 더 의미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당초 객관식 문항에서 아예 보기를 없애는 주관식 문항으로 바꿨다.

그런데 그 결과가 놀라웠다. 당초 보기로 책정했던 부정적 이미지 5가지 중 ‘싸움꾼’이 28.6%로 압도적 1위로 나타났다. 나머지 ‘기득권(패거리)’(8.0%)은 4위, ‘권위주의’(6.3%)는 6위, ‘비(非)신뢰 집단(거짓말)’(5.4%)은 8위, ‘무능’(1.4%)은 18위로 각각 나타났다. 반면 당초 긍정적 이미지로 책정했던 보기 항목 중 실제 대답이 나온 것으로는 16위에 오른 ‘일꾼’(2.0%)이 그나마 가장 많았다. ‘엘리트(지도층)’는 0.9%, ‘책임감’은 0.1% 수준에 그쳤다. ‘소통’과 ‘원칙·소신’에는 단 한 명의 응답자도 없었다. 오히려 ‘비소통’이 0.4%, ‘무소신’이 0.3%로 각각 나타났다. 지금의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불신이 가득한 눈높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 밖에도 20위권 안에 포함된 항목을 소개하면, 2위 ‘부정부패·비리’(15.8%), 3위 ‘권력 남용’(9.0%), 5위 ‘밥그릇 챙기기’(6.5%), 7위 ‘혈세 낭비’(6.2%), 9위 ‘이기주의’(4.4%), 10위 ‘특권층’(4.0%) 등이었다. 11~20위까지 순위 중에도 ‘공약 비준수’(2.9%), ‘호의호식’(2.5%), ‘외유’(2.4%), ‘무책임’(2.3%), ‘도둑놈’(2.1%), ‘사기꾼’(1.1%), ‘허례허식’(1.1%) 등 온통 부정적 이미지 일색이었다. 그나마 긍정적 이미지는 ‘일꾼’이 유일했다.

국회의원 하면 어떤 이미지가 생각나는가 ⓒ 연합뉴스
‘연금제 폐지’가 가장 시급한 정치 쇄신책

국민들은 현재 국회의원들의 직무 수행 활동에 대해서도 매우 불만스러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국회의원의 직무 수행 활동을 고려했을 때, 10점 만점에 몇 점을 주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딱 중간에 해당하는 ‘5점’이 23.1%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그 다음 순위를 보면 ‘4점’(12.8%), ‘3점’(12.1%) 등 낮은 점수들이었고, 심지어는 ‘0점’이라고 한 응답자도 11.5%로 네 번째로 많았다. 즉 4점 이하의 낮은 점수가 44.7%인 반면, 6점 이상의 높은 점수는 28.2%에 그쳤다. 전체 평균 점수는 4.36점으로 보통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4.47점)보다는 남성(4.26점)이 점수에 더 인색했다. 연령별로 보면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당선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 50대층이 4.01점으로 가장 낮은 반면, 20대층이 4.70점으로 가장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 다음은 60대 이상(4.62점), 30대(4.29점), 40대(4.22점) 순이었다. 지역별로는 서울(4.03점)과 인천·경기(4.18점) 등 수도권이 가장 인색했고, 충청(4.81점)과 호남(4.75점)이 상대적으로 후했다.

국회 기능은 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지만, 막상 국회 자신은 외부로부터 별다른 견제와 감시도 받지 않고 있다고 인식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가 외부로부터 견제와 감시를 잘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20.6%)보다 ‘그렇지 않다’(73.7%)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국회 정치 쇄신 사안 중 가장 시급하게 요구되는 항목’으로는 ‘국회의원 연금제 폐지’가 52.3%로 가장 높았다. 그 다음으로는 ‘국회의원 불체포 폐지 등 면책특권 제한’(36.8%), ‘의원 정수 축소’(26.2%), ‘무노동 무임금 원칙 적용 등 의원 세비 지급 제한’(21.3%) 순으로 나타났다. 이 질문에는 두 개까지 중복 응답을 허용했다.

눈에 띄는 것은 연령별로 차이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20대층은 국회의원 연금제 폐지(63.5%)를 상대적으로 많이 꼽은 반면, 30대층은 국회의원 불체포 폐지 등 면책특권 제한(47.4%)을, 40대층은 무노동 무임금 원칙 적용 등 의원 세비 지급 제한(29.6%)을, 50대 이상 고연령층은 의원 정수 축소(50대 32.0%, 60대 이상 32.9%)를 각각 가장 많이 꼽았다.

“정치 개혁, 박당선인이 주도해야”

국민들은 적절한 국회의원 정수로 ‘2백명 이하’(38.4%), 또는 ‘2백~2백50명 사이’(34.0%)를 택해 의원 수 줄이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현재의 3백명 유지’는 11.4%에 그쳤으며, ‘3백명 이상으로 더 늘려야 한다’는 1.8%에 불과했다. ‘적절한 국회의원 세비’에 대해서도 ‘1억원 미만으로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71.6%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최근 국회의원들의 ‘제 밥그릇 챙기기’ 논란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의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정치 쇄신 및 정치 개혁을 저해하는 주된 요인’과 ‘쇄신 및 개혁을 진행하는 주체’를 묻는 질문에서도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다. 정치 쇄신 저해 요인으로는 ‘정치 지도자들의 쇄신 의지 및 리더십 부족’(29.1%)과 ‘기득권을 가진 정치권의 반발’(29.0%)이 거의 엇비슷하게 1, 2위로 나타났다. 역시 기존 정치권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치권의 쇄신 노력을 감시할 외부 활동의 취약함’은 18.8%, ‘정치 쇄신을 추진할 신진 세력의 취약함’은 14.4%로 각각 나타났다.

‘정치 개혁과 쇄신의 진행 과정’에 대한 의견에서는 ‘박근혜 당선인이 주도해야 한다’는 응답이 39.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2위는 ‘정치권 밖의 시민사회 세력이 주도해야 한다’로 33.6%였다. 둘 다 국회 밖의 외부 세력이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반면 ‘기존 정당이 주도해야 한다’는 의견은 12.6%에 그쳤다. 국회의원 등 정치인 스스로의 자정 능력을 믿을 수 없다는 강한 불신감의 표출이었다.

‘만약 지금 다시 선거를 한다면 현재의 지역구 의원에게 또 투표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전체의 42.1%가 ‘현 지역구 의원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응답한 반면, ‘현 지역구 의원에게 투표하지 않겠다’는 31.7%였다. 하지만 ‘투표를 하지 않겠다’(14.5%)는 투표 포기층까지 포함할 경우 46.2%로 현 지역구 의원 지지율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권력 구조 형태로 어떤 제도가 바람직하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는 ‘대통령 4년 중임제’가 43.0%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현재의 ‘대통령 5년 단임제’가 37.8%로 그 뒤를 이었다. 반면 국회가 권력을 직접 쥐거나 대통령과 권력을 분점하는 ‘의원내각제’(8.2%)와 ‘이원집정부제’(1.6%)는 미미한 응답률에 그쳤다. 지난해 대선 이전 여론조사 때 의원내각제와 이원집정부제가 두 자릿수 응답률을 기록했던 것에 비해 대폭 떨어진 수치이다. 최근의 국회 불신 경향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안 돼. 안철수가 나서라”…‘개혁 이미지’ 조사에서 민주당 4위 ‘치욕’
 
이번 정치 개혁 관련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국민들의 정서는 지난해 총선과 대선에서 잇달아 패배한 민주통합당에 대해 싸늘했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이제 더는 기대할 것이 없다”는 뜻으로도 읽힐 정도였다. 반면 지난 대선에서 ‘새 정치의 아이콘’으로 등장한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 후보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안 전 후보가 귀국할 경우, 야권의 정계 재편을 두고 한바탕 회오리가 일 전망이다.

‘정치 쇄신이나 개혁의 이미지가 있는 인물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서 22.7%가 안철수 전 후보를 꼽았다. 2위는 박근혜 당선인으로 17.2%였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선 후보는 11.3%로 3위를 차지했다. 여전히 국민들은 기존 정치권의 박당선인이나 문 전 후보보다는 안 전 후보를 새로운 정치에 부합하는 이미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 4위 이하로는 응답률도 현저히 낮을 뿐 아니라, 대부분 고인이 많아 우리 정치권의 ‘개혁적 이미지’의 현역 정치인 빈곤 현상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미 고인이 된 박정희(3.2%)·노무현(2.0%)·김대중(1.1%) 전 대통령 등이 각각 4위와 공동 6위, 8위를 차지했다. 현역 정치인으로는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2.4%·5위), 박원순 서울시장(2.0%·공동 6위), 노회찬 진보정의당 의원과 유시민 진보정의당 중앙위원(이상 0.8%·공동 9위) 등이 이름을 올렸다.

‘안철수 전 후보가 향후 정치에 참여할 경우, 정치 쇄신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응답이 55.6%로 높게 나타났다.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은 39.5%였다. 역시 안 전 후보의 향후 행보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하는 수치였다. 안 전 후보에 대한 기대감은 저연령층에서 높게 나타났다. 20대는 무려 76.7%가 ‘도움이 될 것’으로 답했다. 반면 60대 이상은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응답이 56.5%로 가장 높았다.

‘정치적으로 가장 개혁적이라고 생각하는 정당 및 세력은 어디라고 보는가’라는 질문에서는 1위가 새누리당으로 나왔다. 35.5%가 그렇게 답했다. 이는 여당 지지 성향의 보수층이 새누리당을 선택한 때문으로 보인다. 눈에 띄는 것은 2위가 ‘민주당’이 아닌 ‘안철수 세력’(19.9%)이라는 점이다. 제1 야당인 민주당(10.7%)은 ‘시민사회 세력’(10.8%)에도 밀려 4위로 추락하는 치욕을 당했다. ‘개혁적인 정당 및 세력이 없다’고 답한 이도 무려 16.3%에 달했다. 민주당이 위기인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이면 향후 안철수 세력과 시민사회 세력을 아우르는 야권 대통합을 추진하더라도 민주당이 주도적으로 나설 명분이 없어지게 된 셈이다.

한편 통합진보당은 2.7%로 나타났고, 진보정의당은 1.4%로 그 뒤를 이었다. 통합진보당은 이정희 전 대표가 ‘개혁 이미지 인물’ 조사에서도 2.4%를 나타낸 바 있어, ‘종북’ 등 여러 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확고한 지지층이 2.4~2.7% 정도는 변함없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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