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에 술렁이는 불교계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01.14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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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부에서 ‘개신교 편향’ 반발했던 불교계 내부 기대감 커져

“차기 박근혜 정부의 ‘종교 편향’은 심각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대한민국을 ‘불교 국가’로 만들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구성된 직후인 지난 1월7일, 한 개신교 단체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종교 편향’을 비판하는 논평을 냈다. “박당선인이 대선 후보 시절 내건 불교계에 대한 공약 정책이 매우 우려된다”는 것이다. 이 단체는 박당선인이 제시한 구체적인 불교 공약으로 증오범죄처벌법 제정 노력, 불교계 인사 정부 위원회 참여 확대, 한국 불교문화 해외 지원 약속, 사찰 소장 불교문화재 보호 지원, 폐사지 관리 및 복원 시스템 구축 등을 꼽았다.

박근혜 당선인이 대통령의 권좌에 오르게 되면서 종교계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장로 출신의 이명박(MB) 대통령을 배출한 개신교계는 혹시 차별받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이다. 반면, MB 정부 내내 ‘개신교 편향’을 주장하며 박탈감을 호소했던 불교계는 박당선인에게 거는 기대가 커 보인다. 정치권과 가까운 한 불교계 인사는 “박당선인만큼 불교를 잘 아는 정치인도 드물다. MB 정부에서는 피해 의식이 상당했는데, 차기 정부는 불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12년 10월19일 서울 종로구 태고종 법륜사를 예방해 총무원장 인공 스님에게 합장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태고종 ‘환호 ’ , 조계종은 다소 ‘머쓱’

박당선인과 불교계의 인연은 깊다. 알려진 대로 박당선인 본인은 특정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부모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고 육영수 여사 등 집안 어른들이 불교와 가깝게 지냈다. 특히 육여사는 첫 수확한 통일미를 도선사에 공양물로 올릴 정도로 불심(佛心)이 상당했다. 육여사는 도선사 청담 스님으로부터 ‘대덕화(大德華)’라는 법명을 받기도 했다. 도선사 법당에는 지금도 박 전 대통령과 육여사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박당선인도 ‘대자행(大慈行)’과 ‘선덕화(善德華)’라는 법명을 가지고 있다.

대선 기간 불교계에서는 박당선인에 대한 지지 열기가 뜨거웠다. 그런데 종단에 따라 미묘한 온도 차가 나타났다. 국내에서 조계종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큰 태고종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태고종 전국보국회와 전국신도회는 대선을 20여 일 앞둔 지난해 11월27일 새누리당 당사에서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유정복 당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본부장은 “불교계의 양대 종단 중 하나인 태고종이 박근혜 후보 지지 선언을 해주신 데 대해 너무 감사하며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라고 밝혔다.

천태종도 박당선인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태종은 박 전 대통령의 누나인 박재희씨와 인연이 깊다. 박당선인에게 고모가 되는 박씨는 천태종 종회 의장을 맡아 천태종 총본산인 구인사의 창건 불사를 도왔다고 한다. 불교계와 교류가 잦은 한 여권 인사는 “천태종은 박 전 대통령 집안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태생적으로 박당선인에게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천태종이 ‘호국 불교’ 성격이 강하다는 점도 박당선인을 지지한 것으로 보는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된다.

반면, 교세가 가장 큰 조계종은 이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이는 종단의 규모와 운영 방식의 차이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조계종은 다른 종단에 비해 행정 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다. 그렇다 보니 돌발 행동에 대해 일정 부분 단속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종단과 마찬가지로 조계종 내에서도 박당선인을 지지하는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 조계종 포교원 전법단장인 계성 스님이 대표적이다. 계성 스님은 대선 당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불교본부에서 상임지도법사를 맡았다. 박당선인은 조계종의 가장 큰 어른인 종정 진제 스님과도 친분이 두텁다. 박당선인에게 ‘대자행’이라는 법명을 내려준 이가 바로 진제 스님이었다. 진제 스님은 종정 추대식 때 박당선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초청했을 정도로 가깝게 지내는 사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조계종 총무원 내부의 흐름은 야당 후보에 대한 지지가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계종 교육원장을 지낸 청화 스님은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 촉구 기자회견에 동참했고,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장을 맡고 있는 도법 스님은 안철수 무소속 후보를 지지한 불자들의 모임인 ‘미래불교포럼’ 창립 법회에 참석했다. 특히 조계종 총무원 등에서 일하는 종무원들 가운데 야당 후보를 지지한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내부 사정에 밝은 불교계의 한 인사는 “종무원은 30·40대가 많다. 이 중에는 1980년대 학생운동을 경험했던 이들도 있고, 대학에서 불교 학생회 등을 통해 인연을 맺은 이들도 있다. 아무래도 성향상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후보에 대한 지지가 강하다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조계사 앞에서 박근혜 후보 지지 선언을 하려던 스님들이 제지받은 일이 이러한 기류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불교인권위원회 공동대표인 진관 스님과 한일불교문화교류협회 이사장인 정산 스님 등은 2012년 12월3일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박후보 지지 선언을 하려다가 조계사와 총무원에 의해 제지당했다. 이유는 사전에 장소 사용 승인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당시 조계종 내에서는 “조계사 앞마당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자칫 종단 차원의 지지 선언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상당했다고 한다. 특히 젊은 종무원들 사이에서 반감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 일각에서는 ‘태고종·천태종+박근혜’ 대 ‘조계종+문재인’ 구도로 대선이 치러졌다는 말도 나온다. 물론 해당 종단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한 해석이다. 여권과 가까운 한 불교계 인사는 “종단 차원에서 공식적인 지지를 보인 곳은 없다고 봐야 한다”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불교계 인사는 “대선 막판에 조계종 총무원으로 문재인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크다는 보고가 올라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런 이야기들이 부풀려진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한국에서 불교는 종단과 관계없이 여전히 보수적이다. 야당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이 일정 부분 있지만, 대체적으로 여당 후보를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다”라고 설명했다. 


박정희 정권에서 ‘핍박’받고 , 대선에서는 ‘박근혜 지지’ 
태고종과 박당선인 부녀의 인연

태고종과 박근혜 당선인 집안과의 인연도 관심을 끌고 있다. 태고종은 이승만 자유당 시절에 이어 박정희 군사 정권 시절에도 핍박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고종 내에서는 박정희 정권이 불교재건위원회를 구성해 조계종을 편들고 태고종을 억압했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제기되었다. 불교재산관리법을 통해 태고종 사찰을 빼앗아갔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고종은 지난 대선에서 박당선인을 지지한 셈이다.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활동한 한 여권 인사는 “태고종이 가장 적극적으로 도움을 줬다. 3천여 개에 이르는 사찰에 ‘투표하라’는 밀지를 내려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불교계의 한 인사도 “박당선인을 지지하던 불교계 인사들이 투표를 독려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카카오톡을 통해 투표를 독려하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박당선인은 2012년 10월19일 태고종 총무원을 방문해 총무원장 인공 스님과 환담을 나누었다. 박당선인은 이 자리에서 “불교문화재 보호와 전통 계승에 힘을 보탤 것이며, 영산재에도 많은 관심을 갖겠다”라고 약속했다고 한다. 영산재는 무형문화재 제50호로 등록되어 있는 한국 불교의 전통문화이다. 매년 봉원사에서 거행되는데, 봉원사는 태고종의 총본산이다. 이날 인공 스님도 “박근혜 후보님께서 부처님의 원력으로 18대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기원해드리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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