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차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3.01.14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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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 친박’ 가신의 반격 “간판은 양보해도 실무진은 양보 못 해”

#1. 지난해 12월 말. 18대 대선에서 승리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합·대탕평 인사’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던 무렵. TK(대구·경북) 지역의 한 재선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물론 차기 정부의 핵심 자리를 TK 출신들이 꿰차는 모양새가 되면 안 된다. ‘호남 총리론’까지도 양보할 수 있다”라고 전제한 뒤, “하지만 실용적인 측면에서 생각해야 한다. 눈에 띄는 총리나 장관 자리는 다른 지역 출신에게 줄지라도, 차관 등 실무진급 자리에는 반드시 우리 지역(TK) 사람을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2. 1월9일. TK 지역의 한 초선 의원과 지역 언론인 등이 오찬을 한 자리에서 “인수위 인사에서 보듯 앞으로는 TK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역차별이 불가피하다” “친박계와 TK는 ‘기계적으로’ 인사에서 배제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돈다” “소통 창구를 만들어 지역 여론을 알려야 한다. 두고 볼 수는 없다”는 등의 푸념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면서 “지역민의 기대가 큰 만큼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는 말이 이어졌고, 참석한 한 의원은 “이런저런 점을 살펴 (박근혜) 정부에서 TK 정치권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아이디어를 달라”고 주문했다.

대선 승리의 환호성도 잠깐, 선거가 끝난 지 20여 일이 지난 지금 친박계와 TK가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현장의 모습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당선 다음 날 “대탕평으로 대통합을 이루겠다”고 하자 TK에서 제기한 “탕평책에 발목 잡히겠다”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예상대로 인수위 등의 인선에서 박당선인의 가신 그룹으로 평가받는 TK 지역 친박계 의원들은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자신이나 측근의 참여는 고사하고라도, 아예 의견조차도 제시할 수 없었다.

1월6일 공식 출범한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현판식을 하고 있다. 하지만 TK 친박 인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 시사저널 임준선
유승민 “TK라도 유능하면 써야”

실제 비서실에는 박당선인의 측근이 대부분 기용되었음에도 TK에 지역구를 둔 의원의 보좌진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대구가 고향인 안종범(비례대표) 의원실의 이희동 보좌관이 행정실에 배치되었으나 안의원에게서 지역색이나 지역 마인드를 요구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자 최근 들어 “이대로 무기력하게 있을 수만은 없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들려오고 있다. 곧 새 정부의 조각 등 장·차관급 인사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어서 심상찮은 분위기도 감지된다.

정치권은 TK가 ‘당선 지분’을 요구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보고 있다. ‘8080 운동’(대선 투표율 80% 이상, 득표율 80% 이상)을 펼쳐 목표를 달성했지만 지역구 의원들 덕이라기보다는 박당선인 혼자의 힘이 컸다는 것이다. 오히려 “인기 없는 지역구 의원이 설쳐 표만 갉아먹는다”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까지 나왔다. TK 지역 의원들은 2008년 총선에서는 박풍(朴風)으로, 2012년 총선에서는 ‘朴의 공천’으로 당선된 바가 크다. ‘박근혜의 치마폭에서 자란 사람’이라는 비아냥이 지난 국회 개원 이후 수도권에서 치열하게 싸워 이긴 의원들 사이에서 나온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한 정치권 인사는 “박당선인으로서는 저 사람 때문에 자신이 살았다는, 빚진 마음이 없다. 오히려 저 사람들은 내 덕을 본 사람들이라고 여긴다”고 분석했다. ‘박근혜 효과’를 뺀 자신만의 경쟁력이 부족한 탓에 잘못 튀었다가는 ‘보스’로부터 버림받는다는 생각으로 잔뜩 움츠린 모양새이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대표적 친박계로 분류되었던 유승민 의원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당선인 자신이 아는 지식으로, (당선인의 뜻을) 교시처럼 받드는 사람이 옆에 있어서는 안 된다. 인사를 할 때 지역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경제나 외교·안보 등 국정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 인재를 쓰는데, 지역이 왜 필요한가? 일 잘하는 사람을 갖다 쓰면 된다. 호남 출신을 중용하는 것도 좋지만, 국가 생존과 관련된 분야는 지역을 따져서는 안 된다. TK 역차별은 말이 안 된다. TK 중에서도 유능한 인재는 당연히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의원의 이 발언은 TK 정치권이 ‘벙어리 냉가슴 앓는 삼룡이’가 되지 않게 해달라는 촉구로 읽힌다.

지난해 10월7일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비서실장인 최경환 의원(맨 앞)이 사퇴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TK 친박’의 자생력이 문제라는 지적도

혹자는 지난 대선에서 TK 정치권을 두고 “두뇌 없는 전차부대 같다”라는 평을 내놓았고, “링거(박근혜)를 꽂은 상태이다. 빼면 걸음을 못 걷는다”고까지 악평했다. 박당선인 스스로도 기존 친박계의 ‘무능’을 절감했고, 그래서 인수위에서부터 첫 조각까지 철저히 ‘구박(舊朴)’ 인사를 배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능력 있는 ‘신박(新朴)계’의 부상은 인수위 인선에서부터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TK와 친박계 일각에 ‘소극적 관망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적극적 구애파’와 함께 ‘자기 정치’를 시작하려는 일종의 반격 움직임도 포착된다. 박근혜의 후광 효과를 걷어낸, 다시 말해 ‘박근혜 없는 ○○○ 의원’으로서 몸집을 키우려는 그림을 이미 그리고 있는 정치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인사의 역차별이 불가피하다면 정책과 공약, 프로젝트에서 실익을 찾자는 움직임이 있다. TK의 한 초선 의원은 “역차별이라는 것은 인사와 공약에 기인한다. 지역 정치권이 사익(私益)만 좇지 않겠다는 공감대로 결집한다면 자리에 연연하기보다 TK를 먹여살릴 대기업 유치나 100년 먹을거리를 내다보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짜낼 수 있다. 박당선인에게, 우리가 이러이러한 피해를 보고 있으니 이것만은 해달라고 읍소하거나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그것을 빨리 찾아야 한다”라고 했다. 지난해 12월 말 대구 초선들의 모임인 ‘말목회’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TK는 대통령을 배출했다는 지역민의 자부심 때문에 핵(박근혜)을 이탈할 원심력이 발생하지 않는 만큼 철저하게 자리보다는 ‘지역 챙기기’에 나서야 한다는 발상이다. 박당선인도 ‘맹목적’인 TK 민심을 외면할 수만은 없어 보인다.

‘포스트 박근혜’에 기대를 걸어보려는 지역민의 움직임도 있다. TK의 유력지인 매일신문은 지난 신년호에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 그룹 2백2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차기 지역 리더를 묻는 질문에 유승민 의원이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고, 그 뒤를 김관용 경북도지사, 주호영 의원, 최경환 의원, 김부겸 전 민주당 최고위원 순으로 이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삼 정부의 ‘상도동 가신’, 김대중 정부의 ‘동교동 가신’, 노무현 정부의 ‘친노 가신’ 등 역대 정부의 가신 세력들이 정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줄줄이 몰락했다. 이명박 정부의 창업 공신으로 주목받던 ‘6인회’라는 가신 그룹도 마찬가지 전철을 밟았다. 박근혜 정부의 ‘TK 친박’ 가신 그룹은 과연 얼마나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줄지, 지금 그 기로에 서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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