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제정신인지 모르겠다”
  • 양정대│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3.01.29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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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계파 정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에 비난 거세

“다들 입으로는 비상 시기라고 하면서도 기껏 ‘관리형’ 임시 지도부를 구성하는 데 3주가 걸렸다. 대선평가위원장과 정치혁신위원장 인선에만 또 열흘이 넘게 흘렀다. 도저히 질려야 질 수 없는 큰 선거에서 연달아 져놓고도 이렇게 느긋할 수가 있을까 싶다. 정말 제정신들인지 모르겠다.”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멤버로 정치권에 들어온 뒤 현재 민주통합당에서 국장급 당직을 맡고 있는 ㄱ씨의 말이다.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뿌리 깊은 계파 정치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른바 ‘친노(親盧)’와 ‘비노(非盧)’ 간 갈등의 골이 제3자의 눈에 비친 모습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18대 대선이 치러진 지 한 달이 훨씬 지났지만 민주당은 지금껏 대선 패인에 대한 통찰과 반성도 없이 계파 간 이해에 파묻혀 ‘네 탓’ 공방에만 몰두하고 있다. 무엇보다 비대위원장 선출 과정 자체가 낯 뜨거웠다. 당초 박기춘 원내대표가 소속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했을 때는 이른바 ‘혁신형’ 비대위원장 선호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뼈를 깎는 자성을 통해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당 안팎의 압박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비주류 쇄신 모임은 “친노·주류가 총선 패배에 대한 반성 없이 대선까지 주도한 것이 결정적 패인이었다”(김영환 의원)며 ‘친노 책임론’을 들고 나왔고, 친노·주류 측은 “대선 패배의 책임은 특정 계파가 아니라 당 전체에 있다”(박범계 의원)고 반박했다. 이 과정에서 언론 인터뷰를 통한 비난전도 가열되었다. 외부 인사에게 비대위원장을 맡기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기 어려웠고, 원혜영 의원과 이종걸 의원이 하마평에 올랐지만 주류와 비주류 양 진영이 각각 결사반대하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리형 비대위원장으로 무게추가 기울었고, 5분 전에야 귀띔을 받은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만장일치로 추대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졌다.

‘회초리 민생 현장 방문’ 이틀째인 1월16일 부산민주공원을 찾은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과 위원 등 지도부가 부산시민들을 향해 사죄와 참회의 3배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선 패배 후에도 계파 싸움만

더 가관인 것은 벌써부터 차기 지도부의 임기를 두고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전당대회가 늦어도 4월에는 치러질 것으로 보이는데, 비주류는 지도부의 임기를 2년으로 상정한 반면, 친노 진영 일부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측은 지난해 1월 민주당 출범과 함께 첫 대표로 선출된 ‘한명숙 체제’의 잔여 임기(2014년 1월까지)만 채우자는 입장이다. 이는 사실상 내년 지방선거 공천권 확보전의 서막이다. 지방선거에서 어느 쪽이 얼마나 공천권을 행사하느냐가 2015년 전당대회, 2016년 총선 공천 그리고 2017년 대선 후보 경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비주류는 친노 진영이 이번 전당대회에 독자 후보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심사이다. 이에 비해 친노·주류는 잠시 숨을 고르더라도 내년 지방선거 공천권에 대한 욕심은 여전한 것이다.

이러한 친노·주류와 비주류 간 대립은 사실 연원이 길다. 게다가 내부를 들여다보면 각 그룹별로도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그러다 보니 이념과 노선에 따른 경쟁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실제 대부분의 충돌은 감정적 대립에 가깝다. 양측 간 갈등이 좀처럼 수그러들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민주당 내 계파는 크게 친노·주류와 비주류 진영으로 가를 수 있다. 양측의 감정적 대립은 사실상 2002년 대선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새천년민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후보로 선출했지만, 경선 과정에서부터 친노와 비노가 확연히 갈렸다. 특히 노후보의 지지율이 10% 중반대까지 추락하고 월드컵 열기 속에 정몽준 국민승리21 후보가 급부상하면서 일부 의원들이 사실상 후보 교체를 주장하는 등 내홍이 상당했다. 당시 한화갑 당 대표가 노후보측에 자금 지원을 하지 않아 선대위가 극심한 자금난을 겪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여곡절 끝에 노무현 정부가 출범했지만 2003년 말 노 전 대통령이 민주당을 깨고 나와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양측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열린우리당은 친노·GT계·정동영(DY)계로 갈려 실용·개혁 논쟁으로 당력을 소진했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는 2002년 경선 지킴이였던 DY측과 친노의 거리가 가까웠지만, 2007년 대선을 앞두고 DY가 열린우리당을 깨고 대통합민주신당 창당을 주도하면서 거리가 멀어졌다. DY가 대선 후보로 선출된 당일 경쟁자였던 이해찬 후보가 탈당할 정도였다. 지금의 비주류 쇄신 모임 구성원의 다수는 당시 범DY계이다. 반면 진보·개혁주의를 표방했던 GT계는 시종일관 친노·DY계와 대립했다.

안철수, 민주당 계파 갈등 파고들까

2007년 DY가 대선에서 참패한 뒤 야권 소통합이 이뤄진 뒤에는 당내 지형이 한 차례 요동쳤다. 한나라당을 탈당해 민주신당에 합류했던 손학규 상임고문이 구(舊)민주당 계열 박상천 전 의원과 공동대표를 맡으며 이른바 손학규계가 형성된 것이다. 친노 진영만 해도 내부적으로는 이해찬 전 대표의 주도권을 인정하는 쪽과 이를 거부하는 쪽으로 나뉜다. 한명숙 전 대표가 지난해 1월 당 대표로 선출된 뒤 독자 노선을 표방했는데, 총선 공천을 둘러싼 잡음이 극에 달했던 데에는 이러한 힘겨루기도 한 요인이 되었다. 비주류 역시 손학규 고문과 김한길 의원이 의기투합하는 관계가 아니어서 구심력이 거의 없는 상태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때 대북 송금 특검 사건으로 구속되었던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이해찬 전 대표와 손을 잡는가 하면, GT계가 문재인 전 후보 선대위의 핵심 요직을 차지하는 등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이합집산도 적지 않다.

현재로서는 민주당 내 친노·주류와 비주류의 대립·갈등이 단기간에 수그러들기는 어려우리라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이번 전당대회에서는 대표의 권한이 대폭 강화된 단일 지도 체제가 도입될 가능성이 커 양측 간 충돌 가능성은 더 커졌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측의 움직임을 주목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차기 총선이 3년 넘게 남았다는 점에서 단기간에 민주당 내부가 급격히 흔들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신율 명지대 교수)는 시각이 우세하다. 하지만 그의 존재가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는 점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민주당 안팎에서는 소속 의원들과 안 전 후보와의 친소 관계에 대한 직·간접적인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안 전 후보의 한 측근은 “대체로 GT계와 손학규계에 대해 안 전 후보가 호감을 표시한 적이 많았다”고 전했다. 우원식·조정식 의원 등 구체적인 이름도 거론된다. 대선 과정에서 껄끄러운 관계로 변한 경우도 있다. 문재인 전 후보 선대위를 이끌었던 박영선·이인영 의원 등이 그들이다. 안 전 후보 주변에서는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이들에 대해 실망했다는 얘기가 적지 않다. 수도권 출신의 한 재선 의원은 “안 전 후보가 차기 대선을 구상하고 있다면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건 내년부터일 것”이라며 향후 정치권의 지각 변동 가능성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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