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동성애자… 누구도 그를 밟지 말라”
  • 김원식│미국 뉴욕 통신원 ()
  • 승인 2013.01.2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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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운동 대모’ 진 맨포드의 삶으로 보는 미국 동성애 역사

지난 1월9일 미국 언론들은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부고 기사를 일제히 다루었다. 동성애 운동의 대모(Mother)로 불렸던 진 맨포드가 향년 92세로 타계했다는 소식이었다. 미국의 동성애 권리 찾기 운동에서 선구자 역할을 했던 그는 동성애자가 아니었다. 평범한 학교 교사였던 그를 동성애 권리 운동에 나서게 한 것은 그의 아들 몰티 맨포드였다. 몰티는 동성애자였다.

1972년 4월 어느 날, 진 맨포드는 뉴욕 경찰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경찰은 아들 몰티가 폭행당해 병원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선 퉁명스럽게 “당신 아들이 동성애자인 것을 알고 있느냐”고 물어왔고, 그는 “알고 있다”고 짧게 대답한 뒤 병원을 찾았다. 몰티는 전날 뉴욕 힐튼호텔에서 열린 동성애자들의 모임에 참가했다가 폭행당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되었다. 경찰마저도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보호해주지 않았다. 그런 현실에 분노한 진 맨포드는 뉴욕포스트에 기고문을 썼다. “내게는 동성애자인 아들이 있고, 나는 그를 사랑한다.” 그것이 본격적으로 동성애자 권리 찾기 운동에 나서게 된 계기였다.

처음 20명으로 출발했던 이 모임은 1972년 6월, 지금은 동성애자 권리 찾기 운동의 상징적인 행사가 된 ‘뉴욕시 동성애자 긍지 퍼레이드(New York City Gay Pride Parade)’의 모태가 된 첫 거리 행진을 맨해튼에서 펼쳤다. 이후 진 맨포드는 동성애자 부모 가족 모임(PFLAG)을 만들어 동성애자들의 권리 보호 운동에 본격적으로 헌신했다. 오늘날 PFLAG는 미국 내 3백50여 개 지부, 20만명 이상의 회원을 둔 막강한 조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진 맨포드에게 불씨 역할을 했던 아들 몰티는 1992년 에이즈(AIDS)와 관련한 합병증으로 먼저 세상을 등졌다. 그는 1966년, 큰아들 찰리 맨포드를 병으로 잃었고, 1982년 남편마저 세상을 떠나보냈다.

1972년 사진. 진 맨포드(사진 왼쪽)는 동성애자인 자신의 아들(오른쪽)을 돕기 위해 동성애자 권리 찾기 운동에 나섰다. ⓒ The New York Times
“나는 아들을 사랑한다”

사회 조직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진 맨포드는 같은 아픔을 지니고 있는 동성애자 부모들과 만나면서 조직을 키워나갔다. 그는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 “나는 매우 부끄럼을 타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라도 내 아들을 밟고 넘어가게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게이·레즈비언·양성애자·트렌스젠더 등으로 대표되는 미국 동성애자 권리 찾기 운동 역사에서 인권운동에 불을 붙이고 광범위하게 조직력을 키워나가게 한 원동력은 모성애였다.

지난 1월21일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식 연설에서 미국 대통령 취임 연설 사상 처음으로 동성애 문제를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동성애 형제·자매들이 법적으로 다른 사람과 똑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과 수십 년 전 소수자 권리 차원에서 출발했던 동성애 문제가 미국의 핵심 현안으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이날 취임식에서 축도하기로 되어 있었던 루이 기글리오 목사는 과거 동성애 반대 발언을 했던 것이 문제가 되면서 스스로 사퇴한 적이 있는 인물이다. 기글리오 목사는 17년 전 “동성애는 죄이다. 기독교인들은 동성애 이슈에 관해 강력히 대처해야 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치료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다”라고 발언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비판을 받았다.

오바마는 이번 대선 과정에서 그동안 유보하고 있었던 동성애 결혼 문제에 대해 지지 의사를 뚜렷이 밝혔다. 지난해 5월9일 오바마 대통령은 “이제 동성 커플들도 결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공식적으로 발언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오바마의 도박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대선을 앞두고 정통 기독교 계층과 보수주의자들의 표가 이탈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감수하면서까지 평등과 소수자 권리 보호라는 가치 쪽으로 전환하는 승부수를 던졌는데, 결국 당선으로 이어졌다.

보수 세력 “동성애 반대론자 공격하지 마라”

오바마가 보여준, 동성애에 대한 진화된 관점은 미국인들의 의식 변화 조사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2011년 9월 라이프웨이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성애는 죄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4%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불과 1년 뒤인 지난해 11월 조사에서는 37%만이 ‘그렇다’고 답해 최근 1년 사이 동성애에 관한 인식이 너그러워졌음을 보여주었다.

최근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워싱턴 주를 비롯해 현재 미국 10개 주에서 동성 결혼을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그동안 동성애자들은 동거를 하더라도 법적인 권리를 확보하는 데 제약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민 결합(civil union) 형태로 결합을 인정받고 자녀 입양 등이 가능해졌으며, 다른 일반적인 부부들과 똑같은 법적 보장성을 지니는 동성 결혼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는 추세이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동성애 인정과 합법화는 현재 세계적 흐름이다. 동성 결혼과 입양 허용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도 곧 동성 결혼 합법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관대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동성애 합법화 문제는 종교계를 넘어 정치·사회 등 전 분야에서 뜨거운 감자임에는 분명하다. 동성애 합법화를 지지하는 사람들만큼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수도 만만치 않은 것이 미국 사회의 현실이다. 반대론자들은 “지지론자들이 자신들의 동성애 반대 주장을 마치 인권 탄압 행위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루이 기글리오 목사의 오바마 취임식 축도 포기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미국 남침례신학교의 앨버트 몰러 총장은 “미국에서 동성애에 반대했다는 이유만으로 몰아내는 신매카시즘이 출현했다”라며 최근 동성애 문제에 대한 미국 사회의 인식을 비판하고 나섰다.

하지만 가장 보수적인 종교계에서도 동성애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을 허무는 움직임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연합그리스도교회·성공회·미국 루터교·미국 장로교 등 4개 교단은 이미 동성애자의 성직자 안수를 허용하고 있다. 다른 교단들도 끊임없는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종교계에서도 동성애는 반대 일색에서 뜨거운 감자로 한 단계 진보한 셈이다. 자연의 질서를 무시하는 인륜에 대한 반란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과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평등을 위한 역사적인 진전을 이루어야 한다는 인식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동성애 문제는 2013년에도 전 세계를 휘어잡을 뜨거운 이슈가 될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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