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3.02.0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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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국가정보국이 내놓은 17년 후의 세계 ‘4대 시나리오’

여기 1백66쪽 분량의 보고서가 하나 있다. 지난해 12월10일 발표된 보고서이다. CIA(중앙정보국)와 FBI(연방수사국), 육·해·공 3군 정보부 등 미국 연방정부의 16개 정보기관에다 세계 20개국의 대학과 연구소 등이 협업했다. 자료를 취합해 발표한 곳은 정보기관들을 관리하는 ‘미국국가정보국(DNI)’이다. 2030년까지의 세계적인 흐름이나 변동을 예견한 이 보고서에는 ‘Global Trends 2030’라는 제목이 붙었다. DNI는 4년에 한 번 이런 장기 전망 보고서를 발표하는데 이번이 네 번째 작품이다.

어디까지나 미래에 ‘있음직한 일’을 생각하고 대비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보고서이다. ‘반드시 이렇게 된다’는 복음서가 아니다. 이번 보고서 내용은 사뭇 흥미롭다. 이전 버전과는 달리 미래를 상정해 그린 4개의 가상 시나리오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왼쪽맨위부터 시계방향으로) ⓒ AP 연합, ⓒ AP 연합 , ⓒ AP 연합, ⓒ EPAa 연합
#1. 정지된 엔진(Stalled Engines)

유럽이 결국 재정 위기 극복에 실패해 심각한 불황에 들어간다. 미국은 셰일오일과 셰일가스 개발이 실패하면서 에너지 혁명에 차질을 빚는다. 미국과 유럽은 자국 내부로 역량을 집중하면서 세계 주도권 다툼에 관심을 덜 두게 된다. 국제 분쟁을 중재할 국가가 사라지면서 전쟁 발발 가능성이 커진다.

전쟁의 무대는 중국을 중심으로 ‘그레이트 게임’이 새롭게 펼쳐질 아시아이다. 하지만 주변국이 중재에 나서면서 세계대전 형태로까지 발전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아시아를 무대로 전쟁이 벌어지면서 세계 경제는 크게 침체된다.

#2. 융합(Fusion)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등 남아시아 분쟁이 확대될 조짐이 보이자 미국과 유럽, 중국 등 주요 세력이 해결을 위해 긴밀히 협력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이 정치 개혁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주요 국가들 사이에 신뢰 관계가 구축되면서 세계적인 국제기구들을 개혁하고 확장시킨다. 모든 국가는 크게 성장한다. 신흥국 경제는 더 빠른 속도로 커가며 선진국 경제의 GDP(국내총생산)도 회복된다. 2030년까지 세계 경제는 현재보다 2배가량 커진다. 미국에서는 ‘아메리칸 드림’이 부활하고 10년간 소득이 국민 1인당 1만 달러가 뛴다.

#3. 판도라의 상자(Gini Out of the Bottle)

세계화의 어두운 부분이 전 세계를 지배한다. 많은 국가에서 불평등 문제로 정치적·사회적 긴장감이 높아진다. 국가 간에도 그렇다. 유로존 중심 국가는 번성하지만 주변국은 유로존 이탈을 강요받는다. 유럽연합(EU) 단일 시장은 간신히 명맥만 유지되고 있다. 에너지 공급 국가는 에너지 가격이 하락하면서 경제 구조를 다변화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치고, 내부 분쟁의 위험에 노출된다. 중국의 해안 도시는 계속 번성하지만 국내 격차가 확대되고 중국 공산당이 분열된다. 중국 중산층은 사회 불만이 높아지고, 베이징 중앙 정부는 통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민족주의 노선’을 취한다.

#4. 비국가 세계(Nonstate World)

국가가 소멸하지는 않지만 정부는 국내 문제에 집중하게 된다. 정부가 손을 쓰지 못하는 문제에 국제적으로 협력하는 곳은 NGO와 거대 도시, 다국적 기업, 학술기관 및 부유한 개인 등 비국가 단위이다. 엘리트층은 빈곤·환경·부패·법치·평화 등 지구적 과제에 관한 여론을 이끈다. 문제의 성격에 따라 국가와 비국가가 혼재해 움직이면서 유연성은 커진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불안하다. 비국가 행위자의 문제 해결 노력을 국가 권력이 나서 막기도 하고 개인이나 소규모 그룹에 의한 폭력과 파괴가 증가한다.

 

물론 우리가 가장 피하고 싶은 미래는 ‘가장 비관적인 미래’이다. 따라서 DNI가 제시하는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인 ‘#1’은 좀 더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시작은 미국의 셰일 에너지 전환 시도가 실패하면서부터다. 셰일가스는 미국을 에너지 자급 국가로 만들고 에너지 비용을 낮춰 제조업을 부활시킬 수 있는 ‘비밀 병기’였다. 그러나 채굴 과정에서 지하수와 토양 오염 가능성이 커지고 파쇄법으로 인해 생기는 환경 파괴가 염려되면서 소송이 잇달아 일어나게 된다. 미국의 법·제도에서 셰일가스 개발은 진행하기 어려운 문제가 된다.

셰일가스 생산은 기술적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이 기술 혁신이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못한다. 게다가 공화당과 민주당은 재정 적자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 시간만 흐른다. 정치와 경제가 서로 얽히면서 미국 경제는 침체되고 세계의 경찰 역할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

유럽에서는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갑자기 탈퇴한다. 게다가 유로존의 채무국들이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차례로 탈퇴하며 유럽은 대혼란에 빠진다. 개발도상국은 경제 성장을 하지만 중국과 인도는 개혁하지 못한 정치·경제 시스템에 발목이 잡혀 성장이 둔화된다. 8% 안팎을 기록하던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2030년 3% 안팎으로 떨어진다.

미국이 세계 경찰의 지위에서 물러나자 중국과 인도를 포함한 주변국들에서 분쟁의 위험이 커진다. 경제 성장이 둔화된 중국은 성장의 과실마저 분배하지 못해 체제 비판 움직임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중국 정부는 ‘민족주의’를 설파하게 되고 내부 단속을 위해 대외적으로 공격적인 모습을 띤다. 특히 인도와의 관계가 매우 악화된다. 마찬가지로 중동에서는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에 분쟁이 격화된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는 갈등이 심해진다.

세계 경제가 악화되고 지정학적 위험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동남아시아에서는 사스(SARS·급성 호흡기 증후군)가 유행한다. 사스는 동남아시아를 거쳐 인도와 아프리카로 퍼진다. 선진국은 사스의 대응책으로 국경 폐쇄 조치를 실시한다. 제3 세계를 지원하기보다 억제하는 방법을 택하면서 제3 세계에서는 불만이 쌓여간다. 갈등이 심화되면서 이들 지역에 위치한 다국적 기업들이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에 의해 국유화된다. #1의 구체적인 시나리오는 이처럼 우리가 반드시 피해야 할 만큼 비극적이다.


통일 한국, 미국과의 동맹에서 벗어날 수도… 
‘Global Trends 2030’ 보고서에 나타난 한국의 모습은?

‘Global Trends 2030’에 한국은 자세히 언급되지 않는다. 몇몇 부분만 발췌해보면 일단 2030년의 한국은 유럽 국가들, 타이완 등과 함께 ‘고령화 국가’로 분류된다. 경제적으로는 중국·인도·브라질 등 일명 ‘자이언츠 그룹’과 더불어 한국은 터키,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멕시코 등에 섞여 세계 경제에서 떠오르는 파워 집단으로 꼽힌다.

동북아시아 경제는 갈수록 중국 의존도가 커지는 데 반해 안보에서는 여전히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한다. 하지만 한반도가 통일된 뒤 탄생하는 ‘통일 한국’은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럴 경우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맹 사슬이 이완되면서, 결국 통일 한국 때문에 동북아의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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