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로 들끓던 일본, ‘WBC’ 사라졌다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3.02.0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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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우승 이후 ‘특수’ 실종…흥행에 빨간불

축구에 월드컵이 있다면 야구에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있다. 월드컵처럼 WBC도 4년에 한 번씩 열린다. 열기도 월드컵만큼이나 뜨겁다.

2006년과 2009년에 열린 1, 2회 대회 때는 전 세계 1백50만명에 달하는 야구팬이 직접 구장을 찾았으며, TV를 통해 대회를 지켜본 이들도 10억명을 넘었다.

미국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WBC가 월드컵·올림픽의 인기를 따라잡는 것도 시간문제이다. WBC는 명실공히 전 세계 스포츠팬이 즐기는 메가 이벤트가 되었다”라고 주장한 것도 뜨거운 열기와 폭넓은 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는 3월에 열릴 예정인 3회 WBC는 그 열기와 관심도가 급격하게 식은 느낌이다. 일본이 대표적이다.

“2009년 일본 TV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가 뭔지 아나? 바로 WBC이다.”

1월24일 일본 도쿄에서 민영방송 후지TV 관계자를 만났다. 이 관계자는 2009년 2회 WBC를 떠올리며 “2008년 10월 일본 WBC 대표팀 감독이 확정되고부터 2009년 3월 대회가 끝날 때까지 6개월 동안 WBC 관련 프로그램이 수백 개나 쏟아졌다. 일본이 우승을 차지하자 2009년 겨울까지 WBC 특집 프로그램이 줄을 이었다”고 회상했다.

2009년 3월 LA 다저스 스타디엄에서 열린 결승전. ⓒ EPA연합
WBC 특수로 초호황 누리던 일본 방송계 ‘잠잠’

실제로 당시 일본은 어느 방송사로 채널을 돌려도 온통 WBC 이야기뿐이었다. WBC 인기가 원체 높다 보니 광고 시장도 활황이었다. 얼마나 활황이었으면 2, 3월이 광고 비수기임에도 방송사에는 광고가 폭주했다. 광고의 대부분은 WBC를 소재로 한 내용이었다.

후지TV 관계자는 “당시 방송가에서는 ‘WBC 특수’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내심 3회 대회에서도 ‘WBC 특수’가 재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돌아가는 사정을 보자면 ‘WBC 특수’는 고사하고, ‘WBC 한파’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우선 언론의 관심이 예전 같지 않다. 지금쯤이면 WBC 기사로 1면을 뒤덮었을 일본 스포츠 신문에서는 프로야구·스모 등 자국 스포츠 소식이 주를 이룬다. WBC 소식은 단신에 그치거나 비중이 낮다.

TV에서도 좀체 WBC 관련 프로그램을 보기 어렵다. 후지TV 관계자는 “1, 2회 대회 때는 1년 전부터 라이벌 한국에 취재팀을 파견해 프로그램을 사전 제작했지만, 이번에는 스튜디오 내에서 처리하는 토크 프로그램 몇 개만 준비하고 있다. WBC 프로그램을 내보내도 시청자의 반응이 뜨겁지 않다”고 설명했다.

광고 시장에서도 WBC 특수는 옛말이 되었다. 1, 2회 때 WBC 광고에 적극적이던 일본의 많은 기업은 3회 대회를 앞두고는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당연히 광고 단가도 2회 때보다 현저하게 떨어진 상태이다.

‘WBC 한파’가 가장 거세게 몰아치는 분야는 역시 스폰서이다. 2009년 WBC 조직위는 일본 기업들을 스폰서로 유치하며 이들로부터 1천100만 달러(1백30억원)의 스폰서료를 챙겼다. 하지만 3회 대회 때는 WBC 스폰서를 하겠다는 일본 기업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일본야구기구(NPB) 핵심 관계자는 “지금 상태라면 1천만 달러를 모으기도 어려울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WBC 일본 대표팀 감독으로 임명된 야마모토 고지 감독. ⓒ AP연합
스타가 외면하자 방송도 외면

그렇다면 왜 일본에서 WBC 인기가 4년 만에 식은 것일까. 일본의 저명한 야구 칼럼니스트 하세가와 쇼이치 씨는 “4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먼저 대표팀 선수 지명도가 앞선 대회와 비교해 크게 떨어진다. 1, 2회 대회만 해도 스즈키 이치로, 마쓰자카 다이스케, 다르빗슈 유 등 일본 야구를 대표하는 슈퍼스타가 총출동했다. 특히나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일본인 선수가 대거 합류하며 국민적 관심도가 높았다.

그런데 3회 대회에는 일본인 메이저리거 대다수가 팀의 반대와 컨디션 조절을 이유로 불참을 선언했다. 현재 일본 대표팀 멤버는 전원 국내파로 구성되었다. 당연히 국민과 언론의 관심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감독 브랜드 파워가 떨어져도 너무 떨어진다는 것이다. 1회 대회 감독 오 사다하루(소프트뱅크 회장), 2회 감독 하라 다쓰노리(요미우리)와 비교하면 3회 감독 야마모토 고지의 브랜드 파워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현역 시절을 약체 히로시마 도요카프에서만 보낸 데다 감독도 히로시마에서만 했었기에 지명도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오 사단’ ‘하라 호’ 등 감독을 브랜드화했던 앞선 대회와 달리 야마모토 감독에 대해서는 아직 특별한 수식어가 붙지 않는 것도 사령탑 인기가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목표 상실이다. 1, 2회 WBC에서 일본은 세계의 야구 강호들을 차례로 꺾고 두 대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이미 충분히 우승을 경험했기에 일본 야구팬에게 WBC는 더는 미지의 세계도, 도전의 대상도 아니다.

세 번째는 대회 일정의 단조로움이다. 2회 대회까지 일본, 한국, 타이완은 아시아 라운드를 치르고서 미국으로 날아가 본선 라운드에 참여했다. 덕분에 아시아 국가뿐만 아니라 미국, 도미니카, 베네수엘라, 멕시코 등 다양한 야구 강국과 만나 결전을 치를 수 있었다. 특히나 거대한 체구의 중남미 선수를 체구가 작은 일본 선수가 삼진으로 처리하는 장면을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3회 대회는 준결승·결승만 미국에서 치르고 1, 2라운드는 일본에서 진행한다. 준결승전까지 일본이 만나는 상대도 한국, 타이완, 쿠바 등에 불과하다. 대회 몰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WBC 흥행 전선에는 빨간불이 들어왔지만, 일본 선수의 각오는 앞선 대회를 능가한다. 자국 리그에서 뛰는 젊은 선수가 주축이 된 WBC 일본 대표팀은 “선배들이 거둔 두 대회 연속 우승 신화를 ‘3’으로 늘리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NPB 관계자는 “국외파 선수는 대거 불참을 선언했지만, 자국 리그에서 뛰는 선수는 대표팀 합류 요청에 순순히 응했다. 젊은 선수들 가운데에는 ‘나를 뽑아달라’고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이도 있었다”라고 귀띔했다.

소속팀 스프링캠프와 대회 일정이 겹친 탓에 선수 입장에서는 WBC 참가가 귀찮은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1, 2회 대회까지는 그래왔다. 그런데 어째서 일본 젊은 선수들의 태도가 바뀐 것일까.

NPB 관계자는 “젊은 선수들은 WBC를 일본 야구의 우수성을 알리는 국제 대회로 보기보다는 자신의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한 ‘홍보의 장’으로 인식하고 있다. WBC에서 특출한 성적을 내고 미국 진출에 성공한 마쓰자카와 다르빗슈의 뒤를 그대로 따르겠다는 욕망이 무척 강하다”라고 귀띔했다.

그래서일까. 일본 야구계는 “3회 WBC 흥행은 실망스러울지 몰라도 젊은 선수의 의욕과 투쟁심이 강한 만큼 성적은 1, 2회만큼이나 좋을 것이다”라고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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