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대학생들 “제발, 잠잘 곳 좀”
  • 강성운│독일 통신원(쾰른) ()
  • 승인 2013.02.1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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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늘면서 주택난 심각…‘도우며 살기’로 출구 찾아

독일에서는 대학생 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대학 안팎의 인프라 시설 부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대학생의 주택난은 최근 3년간 이어지고 있는 유례없는 부동산 붐과 맞물려 쉽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독일의 대학생 수는 2백50여 만명을 기록했다. 독일 연방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이는 2001년의 1백90여 만명에 비해 27%나 증가한 수치이다. 대학생 증가의 배경에는 임금 격차가 있다. 대졸자와 직업 전문 교육을 받은 사람 간의 임금이 점점 벌어지면서 대학 교육을 선택에서 필수로 보는 경향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 게시판에 붙은 임대 주택 전단들. ⓒ DPA 연합
거실·체육관·지하실에 임시 거처 마련

독일 대학생 수가 꾸준하게 증가 추세를 보인 것은 아니다. 지난 2007년 보수 성향의 기독민주연합당(CDU)과 기독사회연합당(CSU)이 대학 등록금을 도입한 이후 독일의 대학생 수는 감소세를 보였다. 이후 ‘대학 등록금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중도 진보 성향의 사회민주당(SPD)이 여러 주의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2010년을 전후로 등록금을 받지 않는 주가 점점 늘어났다. 2013년을 기준으로 독일에서는 전국 16개 주 가운데 14개 주에서 대학 교육이 무상으로 제공되고 있다. 무상 교육은 대학생 수의 증가를 불러왔다. 여기에 더해 2011년 7월 징병제가 폐지되고, 일부 주에서 고등학교 교과 과정이 1년 단축되면서 지난 2년간 대학생 수가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각 대학은 발 빠르게 입학 정원을 늘리면서 강사와 교수진을 추가로 채용하는 등 증가하는 학생 수에 대처하고 있다. 그러나 강의실과 기숙사 등 인프라 시설은 단기간에 확충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대학 안팎에서 곤란을 겪고 있다. ‘슈피겔 온라인’은 집을 구하지 못해 유스호스텔에서 통학하거나 남의 집 거실에 신세를 지는 것은 물론, 심지어 체육관이나 지하실에 임시로 거처를 마련한 대학생들의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베를린·함부르크·뮌헨 등 대도시는 물론 전통적인 대학 도시인 하이델베르크나 본에서도 학생들 간에 월세가 싸고 입지가 좋은 주택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특히 또래의 자취생들이 모여 사는 주거 공동체는 인기가 높다. 쉽게 친구를 사귈 수 있고 생활비도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인데, 빈자리가 나면 그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많게는 서른 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려들 정도이다. 한국에 비해 입시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독일에서는 “대학에 들어가기보다 살 집을 구하는 것이 더 어렵다”라는 말까지 나온다. 주거 공동체에 들어가기 위해서 학기가 시작되기 두 달여 전부터 인터넷으로 화상 면접을 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최근에는 이러한 절차를 아예 ‘면접’이 아니라 ‘캐스팅’이라고 부른다. 빈방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서바이벌 게임이 된 셈이다.

대학에서 제공하는 기숙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독일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뮌헨의 경우 지난 학기에는 집을 구하지 못한 학생들이 기숙사로 대거 몰리는 바람에 뮌헨 시 전체 대학 신입생 1만2천여 명 가운데 절반가량인 5천9백여 명이 대기자 명단에 오르는 일이 벌어졌다. 알리안츠, BMW, 지멘스를 비롯해 닥스(DAX)에 상장된 대기업 본사가 다수 위치한 뮌헨의 주택 시장은 더는 대학생들이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 되었다. 뮌헨의 기숙사 관리인 지크리트 마이어 씨(64)는 “뮌헨의 임대료는 학생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다. 집주인들이 학생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에 방을 제공해야 하고, 대학과 정부는 창의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대학 당국과 정부도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여러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페터 람자우어 연방건설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각 대학의 학생회 및 부동산업자들이 참가한 간담회에서 하이델베르크의 대학생 주택난을 해소할 방편으로 전후 연합국의 주둔군이 머물렀던 병영을 기숙사로 쓸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건물의 안전성 문제로 취소되었다. 인구 30만 규모의 작은 대학 도시인 본에서는 2011년 신학기 주택난 당시 2백여 가구가 자발적으로 비어 있는 방을 학교측에 알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2천5백여 명의 신입생이 다시 거처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난처해졌다.

해결책으로 주목받는 ‘뉴 프로젝트’

대학생 주택난은 이제 더는 주택시장이나 임시방편을 통해서는 해결할 수 없을 지경에 도달했다. 독일 세입자연합회 회장 프란츠 게오르크 립스는 “지난해 말 현재 약 25만개의 임대 주택이 부족하다”라고 밝히며 주택난의 위험을 경고하고 나섰다. 1인 가구가 전체의 약 20%를 차지할 정도로 인구 구성이 변화한 데다 부동산 붐으로 인해 치솟은 주택 가격이 전국적인 주택난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대안이 이른바 ‘도우며 살기’ 프로젝트이다. 여러 대학에서는 집이 필요한 대학생과 도움이 필요한 독거노인을 연결해주며 주택 문제와 노인 돌봄 문제를 연계시키고 있다. 1992년 다름슈타트에서 처음 시행된 이 프로젝트는 현재 함부르크, 프라이부르크, 뮌스터 등 여러 대학에서 시행 중이다. 넓은 집에 혼자 사는 노인들은 대학생을 통해 장보기와 청소 등에 도움을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말동무로 삼을 수 있어 좋다. 학생들은 일반 주택에 비해 훨씬 저렴한 월세로 살 수 있어 이른바 윈윈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시도이다. 서로 다른 생활 양식으로 인해 갈등이 빚어지기도 하지만, 이는 비단 ‘도우며 살기’에 국한된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비슷한 또래가 함께 사는 기숙사나 주거 공동체에서도 갈등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도우며 살기’의 의의는 주택 문제를 부동산 시장의 움직임이나 정부의 장기적인 주택 정책과 무관한 사회적 관점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는 데 있다. 국내뿐 아니라 경제 위기로 불안감에 젖은 유럽 각국의 유동성이 자국의 주택 시장으로 흘러들어오는 지금, 독일 사회는 투자 수단이 아닌 삶의 터전으로서 주택이 품고 있는 사회성에 주목하고 있다. 대학의 울타리 바깥에서도 ‘도우며 살기’와 유사한 주거 프로젝트가 속속 생겨나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젊은 신혼부부와 홀로 사는 노인 가구가 함께 사는 주거 공동체, 자식이나 연고가 없는 동성애자 노인들을 위해 유럽 최초로 세워진 동성애자 주거 공동체 등도 부양과 주택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지금 독일 사회는 대학생의 주택 문제를 익숙하지 않은 삶의 방식을 실험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기회로 바꾸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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