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이제 영화가 아니다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3.02.1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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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2억명 시대, 삶의 축소판으로 공감 이끌어내

외롭고 울적할 때 친구를 찾아가듯 극장에 갈 때가 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을 때도 극장에 가서 영화 목록을 살펴본다. 극장을 단골 데이트 장소로 삼은 커플도 많다. 그런 커플을 위해 ‘스위트박스’라는 이름의 커플석을 마련한 극장도 있다. 한국 영화들이 대박 행진을 이어가면서 올해 극장가는 ‘관객 2억명 시대’를 낙관하고 있다.

오락 영화도 있지만 많은 영화가 ‘삶의 축소판’으로 만들어져 관객들을 울리고 웃기며 공감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다큐 영화가 아닌 이상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라면서 극장을 빠져나올 것이다. 여가 활동으로 영화를 보는 사람이라면 감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을 원할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일이야 신문·방송을 통해 일상적으로 접하니 극장에서까지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러기도 싫기 때문이다. 그러던 관객들이 변한 것일까. 많은 영화가 사회적인 이슈들을 배경으로 깔고 있다. <부러진 화살>처럼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정면 돌파하는 영화도 잇달아 나왔다. 영화감독 정지영씨는 “영화는 그저 영화일 뿐이라는 말에 절대로 속지 마라”라고 말하며 책 한 권을 추천했다. <영화에게 세상을 묻다>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 때로는 내 가족이 될 수도 있으며 친구와 이웃은 물론,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어쩌면 뉴스나 신문보다 더 적나라하게 우리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를 통한다면 사회 곳곳에 만연한 갈등과 문제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그런 생각에서 기획되었다. 저자들은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겠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욕심이 되어버린 사회, 자신의 삶을 나눌 용기와 타인의 삶을 이해할 의지도 없는 사회에서 현실의 축소판인 영화라면 이야기가 통하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라고 말했다.

저자들은 정치·환경·인권·고용·교육·복지 등 우리 사회의 10대 난제를 선별한 뒤, 다시 30개의 세부 주제를 뽑아내 각각의 상황을 그리고 있는 영화를 통해 해당 문제를 들여다보았다. 예를 들면 고용 문제에 대해어서는 청년 실업, 정리 해고를 둘러싼 고용 불안, 이주노동자 등으로 문제를 세분화해서 분석했다. 복지 문제에 대해서는 의료 민영화, 부동산 재개발, 자살 문제 등으로 세분화했다.

오래전 <방가? 방가!>를 보았던 관객들은 이주노동자 문제에도 눈을 떴고, 이 시대 청년 실업 문제의 심각성도 깨칠 수 있었다고 반가워했다.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이 책에 소개한 영화들이 새롭게 느껴질 듯하다. 영화 속 주인공 같은 사람을 주변의 이웃 중에서 쉽게 찾아내는 등 눈이 새롭게 떠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우리는 지금 우리의 절박한 울부짖음이 상대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메아리가 되어 그대로 되돌아오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 같은 하늘,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사회의 갈등의 간극은 좀처럼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도 사람들은 공염불 외듯 ‘공감’과 ‘소통’을 외치고 있다. 그런데 굳이 용기를 내거나 의지를 갖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소통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영화 속 주인공들이다. 그 인물들이 실재하는 것 같아서 헷갈릴 때도 있다. 아니, ‘같은’ 것이 아니라 실재한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바로 내 옆에 그들이 있다. 먹통 같은 정치인들도, 정치에 눈 돌린 국민들도 같은 영화를 보며 대화를 시도하면 조금은 마음 열기가 수월하지 않을까, 귀 기울여 상대의 얘기를 들어주지 않을까, 그리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며 안아주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머리 아픈 현실이 영화처럼 해피엔딩이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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