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은 날 가두는 감옥 같았다”
  • 이규대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3.03.0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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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젊은이의 생생한 수기 / 젊은 시절 ‘주거난’ 피해, 부정적 연쇄 효과도

흔히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고생도 고생 나름이다. 턱없이 비싼 주거 비용은 20대 초·중반 청년들의 일상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른 지 오래다. 안정적이지 못한 주거권은 학생 개인, 혹은 그 가족에까지 부정적인 ‘연쇄 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비싼 집’에서 발생한 경제적 부담은 학업, 대인관계, 진로, 가정 경제 등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 실태를 생생하게 알기 위해, 취재 과정에서 만난 여러 학생들의 다양한 이야기 중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 사례를 당사자 인터뷰를 통해 수기 형식으로 재구성해보았다.

ⓒ 일러스트 배중열
■수기 1 - ‘하루살이’의 기억

 ‘하루살이’. 내 대학 시절을 돌아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이다. 단 하루 세상을 살고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나는 곤충 하루살이가 아니라, 수입과 지출을 1일 단위로 철저히 계산해 매일을 연명해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하루살이. 아직도 생생하다. 몸을 겨우 뻗을 수 있을 만큼 좁은 방에서 홀로 뒤척이던 시간들. 그때 나는, 내 몸을 둘러싸고 있는 쪽방이 마치 나를 가둔 일상의 감옥인 양 느껴져 몸서리치곤 했다.

우리 집은 잘사는 편이 못 되었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혼자 일을 해 가정을 꾸렸다. 어린 남동생과의 생계비를 제하고 나면, 내가 지원받을 수 있는 돈은 거의 없었다. 다행히 첫 학기 등록금과 입학금은 고향인 부산의 친척들로부터 도움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의 대학 생활 동안에는 사실상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등록금은 내 힘으로 충당해보다가, 3학년 2학기부터는 도저히 버티지 못해 학자금 대출에 의지했다. 그리고 생활비만큼은 온전히 나의 노동으로 지탱해야 했다.

‘하루살이’의 고정 지출은 곧 고정 수입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런 내게 가장 부담스러웠던 것은 방 월세였다. 2학년 때까지는 기숙사에 살았기에 조금 나았지만, 등록금을 벌며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휴학을 자주 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자취생이 되었다. 학교 인근 원룸촌 후미진 곳의, 햇볕도 잘 안 드는 쪽방에 매달 30여 만원을 지급해야 했다. 이 고정 지출은 내게 곧‘아르바이트 하나’와 같은 의미였다. 여기에 생활비를 마련하고 등록금까지 준비해두려면 아르바이트를 두 개는 더 해야 했다. 결국 그 보잘것없는 집에 내 노동력의 3분의 1을 투입해야 했던 것이다. 주중에는 학교 주변 음식점과 바에서, 주말에는 보습학원에서 돈을 벌었다.

30만원 선으로 월세를 맞추려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이불을 펴면 방이 가득 차버릴 정도로 좁은 곳이었다. 좌식 책상을 놓고 나면 가전제품 등은 들어설 자리도 없었다. 조그맣게 딸린 화장실에는 세면대도 따로 없어, 늘 앉아서 세수를 했다. 반지하의 습기는 항상 나를 괴롭혔다.

‘안전’도 기대할 수 없었다. 한 번은 늦은 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두꺼운 파카를 뒤집어쓴 남성이 골목에서 튀어나온 적이 있었다. 그리고는 나를 갑자기 껴안았다. 소리를 지르며 저항했다. 우연히 곁을 지나던 사람이 달려왔고, 그 남성은 황급히 도망쳤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얼마나 흐느껴 울었는지 모른다. 항상 방 문을 철저하게 잠그면서도, 누군가 문을 따고 들어와 나를 해코지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 시절 내게 집은 불쾌함 혹은 불안함이 항상 서려 있는 공간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며 통학하는 애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난 이렇게 보잘것없는 공간에 살기 위해 소중한 시간들을 아르바이트에 쏟아야 하는데, 나보다 훨씬 넓고 따뜻한 곳에 살면서도 공부할 시간도 훨씬 많다는 것이 불평등하게 느껴졌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새벽 2~3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와, 먼동이 틀 때까지 꼬박 과제를 하고 공부를 하고 있노라면 가슴속에 무언가 응어리가 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나 혼자 할 일은 밤잠을 줄이며 하면 되었다. 하지만 조별 과제 및 공동 프로젝트 같은 것은 항상 나를 곤혹스럽게 했다. 주중·주말 가릴 것 없이 매일 아르바이트가 있는 나로서는 수업 시간 이외에 시간을 내는 것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때를 잊을 수가 없다. 참담한 심정으로 양해를 구한 후 아르바이트 장소로 뛰어가는 내 등을 향해,‘무임승차자’라는 볼멘소리가 날아왔던 순간을. 그 자리에 서서 “너희도 나처럼 살아보라”고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서글퍼졌다. 만약 내가 상대의 입장이었다 하더라도 똑같은 마음을 가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6년간의 고단했던 대학 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한 금융권 기업에 정규직 직원으로 채용되었다. 내 사정을 아는 친구나 후배들은 “성공했다”“고진감래의 표본이다”라며 나를 치켜세운다. 사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기분이 복잡해진다. 지금 상황이 나아졌다고 해서,‘하루살이’로 살았던 20대 초·중반의 시간을 보상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꿈도 없이, 희망도 없이, 오로지 하루하루를 버티며 견뎌왔던 ‘하루살이’의 시간들에서 내가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할까. 아직은 모르겠다.

■ 수기 2 - 왕복 3시간 통학 열차에 오르며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50만원. 대학 2학년까지 내가 살았던 원룸의 주거 비용이었다. 집이 있는 수원에서 학교가 있는 서울 회기동까지 통학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통학을 한 달여간 해본 후, 견디지 못하고 자취를 선택했다. 사실 부모님의 품을 떠나 독립생활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기왕이면 번듯한 곳에서 살고 싶었다. 열악한 방에 살면 친구들 부르기도 창피할 것 같고, 어딘가 내가 위축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부모님께서도 이런 내 뜻을 존중해주셨다. 덕분에 괜찮은 집에서 편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다. 군복무를 하는 동안 정년을 맞은 아버지가 퇴직했다. 아버지는 퇴직금으로 음식점을 차렸다. 여동생의 대학 진학이 남아 있고, 거기에 노후까지 대비하려면 경제 활동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장사는 영 신통치 않은 것 같았다. 가끔 휴가를 나갔을 때 본 부모님의 얼굴은 많이 어두웠다.

복학을 앞두고, 나는 자연스럽게 군 입대 이전과 비슷한 수준의 집을 구하려 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 무거운 어조로 “꼭 나가야겠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가 과거 월급쟁이 시절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가게 사정이 상상 이상으로 좋지 않다는 사실을. 하지만 차마 통학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해야 할 시기인데, 왕복 3시간가량을 길 위에서 낭비할 수는 없었다.

나는 진짜 의미의 ‘독립’을 해보기로 했다. 월세 20만원짜리 고시원을 얻고, 월세 비용을 벌려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부모님께는 학교에서 주는‘취업 장려금’을 받게 되어, 자취를 하기에 충분한 돈이 있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내 생각이 얼마나 무모했는지를 곧 깨달았다. 편의점의 야간 노동과 학교생활을 병행하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몸을 겨우 눕힐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고시원에서는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았다. 매일 방에 들어가는 것조차 괴로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돈을 벌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피로·시간 등의 손해가 취업 전선에서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초조하게 했다.

결국 6개월여 만에 자취 생활을 접었다. 조금 좋은 조건의 방을 구하고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할까도 생각해보았지만, 거기에 투입해야 할 것들이 두려웠다. 내가 가진 시간, 들이는 노력 등이 남들과의 경쟁에 활용해야 할 ‘인적 자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먼 통학 거리를 감수하더라도, 집에서 마음 편하게 지내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겠다”라고 얘기했을 때, 부모님께서는 아무런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셨다.

오늘도 나는 학교에 가기 위해 지하철 1호선 열차에 오른다. 교재를 꺼내 읽어볼까도 싶었지만, 자칫 흐트러진 집중력으로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부분을 넘겨버릴 것만 같아, 그냥 덮어버리고 눈을 감는다. 이런저런 상념이 머릿속을 스친다. 곧 학기가 시작되면, 수업과 취업 스터디를 병행하고 도서관에 머무르는 일과가 반복될 것이다. 3시간이 넘는 통학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효율적일지 고민이 된다. 난방이 센 탓일까. 오늘따라 열차 안 공기가 무척 답답하게 느껴진다.

주거 비용은 ‘제2의 등록금 문제’

위의 두 사람에게서 공통적으로 읽을 수 있는 사실이 있다. 대학가의 원룸 월세 비용은 아주 비싸며, 대학생이 자신의 노동으로만 이것을 지탱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라는 점이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2013년 기준 4천8백60원이다. 중급 원룸에 거주하기 위해 필요한 50만원의 월세를 최저임금 수준의 임시직을 통해 부담한다고 가정하면, 1개월 기준 약 1백2시간, 일주일 기준 20시간 이상을 노동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주거 비용에는 집값만 포함되지 않는다. 관리비 및 각종 공과금이 더 들어간다. 결국 주거 비용만 50만~100만원가량 지출해야 한다. 분담해줄 수 없는 부모는 초라해지고 반대로 학생은 막대한 시간과 노력을 노동에 할애해야 한다. 대학에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일상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수기에 나타난 그대로이다. 누군가의 청춘은 자신을 돌아볼 여유조차 갖지 못한 채 ‘하루살이’로 흘러간다. 누군가는 밥 한 끼를 사먹기 전에, 그것을 위해 자신이 얼마나 일해야 하는지를 계산한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불안한 밤거리에서 몸을 떨어야 한다. 따로 여가를 누릴 시간마저 노동에 투자해야 하는 이에게 친교 및 문화생활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 대학생 주거권 문제가 은퇴 시기를 맞은 부모의 경제적 문제와 맞물리는 경우, 이는 가정 경제 차원의 문제로 비화된다. 이 때문에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는 주거 비용이 ‘제2의 등록금’이라고 불린다. 등록금 못지않게 대학생 주거권 또한 심각한 문제라는 의식이 반영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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