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양약품 리베이트 ‘진실 게임’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3.03.1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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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돈’ 정황 담은 내부 문건 단독 입수…검찰 본격 수사 나서

일양약품이 2010년부터 조직적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한 정황을 담은 내부 문건이 입수됐다. 품의서 형식의 이 문건에는 주요 거래처와 필요한 리베이트 금액, 미집행 시의 문제점 등이 자세히 나와 있다. 검찰은 지난 2월 말 접수된 고발 내용을 바탕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수사 내용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 관계자는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내용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일양약품측은 “리베이트 제공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의혹을 담은 내부 문건이 나왔고, 고발인이 전직 회사 간부 가족이라는 점에서 검찰 수사 결과가 주목된다.

문제의 시작은 지난 1월 중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양약품 기획실장 고 아무개씨가 자신의 승용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자살로 판명했다. 가족과의 연락을 끊고 사무실에도 나오지 않은 지 3개월여 만이었다. 고씨에 대한 정도언 일양약품 회장의 신임은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양약품뿐 아니라 관계사 자금 관리까지 고씨에게 맡길 정도였다. 하지만 고씨는 회사 공금을 몰래 빼내 잠적했다가 자살에 이르렀다.

지난 2011년 4월 열린 일양약품 백신공장 준공식. 오른쪽은 리베이트 정황을 담은 내부문건. ⓒ 연합뉴스·시사저널 최준필
회사측은 고씨가 채무 압박을 못 이겨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양약품의 한 임원은 “고씨가 잠적하고 뒤늦게 공금 8억원이 사라진 사실을 확인했다. 어렵게 고씨를 만나 확인한 결과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모두 잃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고씨가 직접 작성한 확인서도 받았다고 했다. 공금을 관리하면서 인출한 금액을 전액 변제한다는 내용이다. 이 임원은 “신변이 정리되면 연락을 주기로 했는데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갔다”면서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유족의 입장은 달랐다. 고씨가 회사에서 리베이트를 관리하는 역할을 했고, 검은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자살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유족은 일양약품에서 작성한 내부 문건을 제시했다. ‘2011년 영OO 만료 거래처 미집행 요청’이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주요 거래처와 미집행 금액 등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2010년 5월부터 2011년 1월까지 7개월 동안 집행되었거나 집행 예정인 리베이트 액수는 4억7천여 만원. 수도권과 대구, 창원, 제주 영업점만 계산한 것이다. 나머지 지역까지 합할 경우 금액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이 돈은 주로 거래처의 식당 결제나 결혼식 비용, 전자제품 구입 용도로 책정돼 있다. 일부 거래처의 경우 X-레이 도입이나 원내 소파 구입 비용, 골프세트 구입 등으로 처리할 예정이라고 문건에 나와 있다. 고씨의 누나는 “유품을 정리하는 중에 내부에서 작성한 문건이 발견됐다. 이는 동생이 회사 리베이트 업무에 동원됐다는 명백한 증거다”라고 주장했다. 유족이 지난 2월22일 검찰에 수사를 요청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고씨 누나는 “동생에게 부당한 일을 지시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회사도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양약품측도 문건 작성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일양약품 관계자는 “실적 악화가 지속되면서 영업점에서 리베이트 제공 의사를 타진해왔다. 고씨가 가지고 있던 서류는 이런 요청을 모아놓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본사 차원에서 리베이트를 조성했거나 거래처 제공을 지시한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의 관계자는 “문건을 자세히 보면 집행 여부에 ‘미집행’으로 표시되어 있다. 내부적으로 확인해본 결과 문건에 언급된 거래처에 리베이트를 제공한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일양약품측의 해명에도 의문은 남는다. 문건을 보면 대구나 창원 지역 영업점은 ‘미집행’으로 표시돼 있다. 하지만 수도권은 공란으로 남겨져 있다. 이미 집행됐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대구나 창원 역시 ‘거래처에서 3월 중 완납을 강력하게 요구한다’라거나 ‘약속 미이행 시 처방 중단 압력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 표시돼 있다. 일부는 이미 집행된 상황에서 잔금을 주지 않아 압박을 받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내용을 종합해볼 때 “본사 차원에서 리베이트 제공을 지시한 적이 없다”는 회사측 해명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정부 합동 의약품 리베이트 전담수사반이 2012년 10월 한 제약업체를 압수수색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일양약품측 “리베이트 제공, 사실 아니다”

제약업계의 반응도 비슷했다. 일양약품은 2000년대 들어 매출이 정체 상태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 회사는 매출을 기준으로 업계 2위였다. ‘제약업계의 재벌’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정형식 일양약품 명예회장은 업계에서 처음으로 금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성장세가 급격히 꺾였다. 2011년 말 매출은 1천4백12억원이다. 10년 전(1천30억원)에 비해 37%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년 전(1천4백억원대)과 비슷한 수준이다. 업계 순위는 40위권으로 추락했다. 상위권 제약회사도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 리베이트에 기대고 있는 것이 제약업계의 현실이다. 일양약품은 매출에 대한 압박이 심하면 심했지 덜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 제약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검찰은 지난 2월 말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에 사건을 배당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을 통해 사건을 지휘한 뒤 관련 직원과 거래처 의사를 소환해 보완 조사를 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 경찰, 공정거래위원회, 식약청 등은 2010년부터 제약업계의 리베이트 관행을 차단하기 위해 집중 조사를 벌였다. 서울중앙지검에 꾸려진 ‘정부 합동 의약품 리베이트 전담수사반’은 여러 건을 밝혀냈다. 지난해 말 업계 1위인 동아제약 직원이 리베이트 제공 혐의로 구속됐다. 올해 초에도 CJ제일제당이 40억원대 리베이트 사건에 휘말렸다. 지난 6개월간 1천명이 넘는 의사가 소환됐다. 하지만 일양약품은 한 번도 수사 대상에 오르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일양약품은 매출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깨끗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조직적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타격이 적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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