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 잘나가니 보험사가 ‘골치 아파’
  • 정일환 | 뉴시스 기자 ()
  • 승인 2013.03.1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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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업계 “비싼 수리비·렌트비로 손실 눈덩이” 주장

시장 점유율 10% 시대를 맞아 수입차업계와 국내 보험업계 및 관련 당국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손해보험사들은 국산차보다 훨씬 비싼 수리비와 부품 비용 등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부품값을 인터넷에 공개하겠다”며 압박하고 나섰다. 금융 당국은 “적극 지원할 것”이라며 거들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수입차의 불공정 거래에 대한 전면 조사에 착수하며 지원 사격에 나섰다.

요즘 국내 자동차 시장은 수입차 전성기다. 내수 부진으로 자동차업계 전체가 시름하는 와중에도 꾸준히 시장 점유율을 높여 지난해 마의 벽으로 불리던 10%를 돌파했다. 올해 1월에는 가속 페달을 밟아 점유율이 13%까지 치솟았다.

수입차가 잘 팔릴수록 적자를 보는 곳이 있다. 사고가 났을 때 수리비를 대신 내줘야 하는 자동차보험업계다. 수입차는 특히 수리 기간이 국산차에 비해 길기 때문에 대체 차량용 렌트비도 그만큼 많이 든다.

한 수입차업체 서비스센터에서 직원들이 차량 검사를 하고 있다. ⓒ 뉴시스
4대 독일차 평균 보험금, 국산의 3.2배 

최근 민병두 민주통합당 의원이 국내 5개 손해보험사로부터 받은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지난해 국내 판매 1~4위를 차지한 독일 폭스바겐의 평균 수리 기간은 10.1일에 달했다. 아우디(7.3일), BMW(6.9일), 벤츠(6.4일)도 만만치 않다. 반면 국산 자동차 수리 기간은 4.3일에 불과하다.

보험사가 수입차량 소유자에게 지급하는 대체 차량 렌트비는 평균 1백19만6천원이나 된다. 대체 차량 렌트는 동종 차량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렌트 비용이 비싼 데다 기간까지 길다 보니 액수가 불어났다. 이로 인해 보험사가 수입차를 위해 지급하는 보험금 중 3분의 1이 렌트비로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사고가 났을 때 4개 독일차 메이커에 보험사가 지급하는 평균 보험금은 3백31만1천원으로 국산차의 3.2배다. 부품비는 2백10만4천원으로 국산차의 4.7배에 달했다. 공임비(1백16만4천원) 역시 2.1배나 됐다. 자동차보험사가 뿔난 이유이다. 수입차가 늘어날수록 보험사의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급기야 업계는 “외제차 수리비 거품을 빼겠다”며 칼을 뽑았다.

손해보험업계는 주먹구구식으로 청구되던 수입차 수리비 내역서에 사용한 부품의 일련번호와 작업 시간 등을 상세히 적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또 사고 차량 차주에게 제공되는 렌터카 비용도, 기존에는 요구하는 대로 내줬지만 앞으로는 차종별로 적정한 가격 정보를 수집해 비정상적으로 비싼 렌터카 비용에 대해서는 제동을 거는 시스템도 마련한다. 사고 차량의 수리가 시작되기 전 보험사별로 담당 직원이 정비 공장을 직접 방문해 수리비 산정을 협의토록 처리 과정도 개선할 예정이다. 여기에 수입차 딜러가 정확한 차 부품명과 가격을 인터넷 등에 공개하도록 하는 제도도 도입하기로 했다.

손보협회 관계자는 “렌터카 임대의 경우 정비 공장에서 렌터카업체를 소개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행위 등이 많다. 이런 사례에 대해 형사 처벌할 수 있게 제도를 바꿀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손보사가 이런 대책을 들고 나온 이유는 차 보험 시장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손보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차량 등록 대수는 1천8백87만대로 전년 대비 2.3% 증가했다. 반면 자동차보험 원수보험료(2012년 4~12월)는 9조6천9백96억원으로 전년 동기(9조7천9백8억원)보다 약 1% 감소했다. 차량 숫자는 늘어나는데 보험료는 줄어들어 손해율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 손보업계의 주장이다. 차 보험의 적정 손해율은 77% 수준. 그러나 지난 한 해 동안 손해율은 84.1%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국내 모든 손보사가 차 보험에서 적자를 냈다.

위기에 몰린 보험사는 금융 당국에도 SOS를 보내 협조를 이끌어냈다. 손해보험업계는 얼마 전 외제차 부품 가격, 수리비 등의 적정성을 따져보고 개선 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자동차보험 경영 안정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손보협회에 외제차 전담 TF가 만들어진 것은 처음이다.

TF는 외제차 수리비와 진료비 심사 등을 포함해 사고 예방, 보상 제도 개선, 법령 개정, 소비자 보호 강화 등의 내용을 금융위원회에 보고했다. 그렇지 않아도 자동차보험료 인상 움직임에 부담을 느끼고 있던 금융위는 손보업계의 요청에 긍정적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정부는 차 보험 손해율 상승이 손보사의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과 차 보험료 조정이 소비자 부담을 가중시킬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관심을 갖고 지원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순정 부품 이용 강요하는 수입차업체

공정거래위원회도 측면 지원에 나섰다. 공정위는 지난 2월19일부터 BMW,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폭스바겐, 한국토요타 등 수입차 판매업체 사무실에 대해 대대적인 현장 조사를 나선 데 이어 26일에는 한국수입차협회(KAIDA)에도 인력을 보내 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이번 조사는 수입차업체에서 관행처럼 이어졌던 불공정 거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해당 수입차업체가 차량과 부품의 시장 가격을 왜곡했는지, 금융 계열사에 일감 몰아주기 특혜를 줬는지, 수입사와 딜러 간 물량 밀어내기와 같은 불공정 거래가 있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공정위의 조사는 수입차 딜러 쪽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턱없이 비싼 차량·부품 가격과 고객 서비스 부실 원인으로 수입업체와 딜러 간의 수직적 유통 구조 및 딜러 수익성 악화가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수입차 수리 기간과 비용 등을 공개한 민병두 의원은 자동차 수리비 공개 내역 세분화, 렌터카와 정비업체의 리베이트 수수 금지, 대체 부품 사용 허용 등을 담은 관련법 개정안을 조만간 발의할 예정이다.

수입차에 대한 압박 수위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소비자 보호와 물가 안정 등이 강조되면서 관련 부처가 공세적이기 때문이다. 수입차업계와 보험사 그리고 당국 간의 충돌이 소비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수입차 판매업체도 마냥 반대할 일은 아니다. 차량 수리비 거품이 빠지고 보험료 인상 폭이 줄어든다면 수입차 경쟁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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