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링 많은 고기, 활어회가 맛있다는 건 착각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3.03.19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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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구울 때 기름 타는 냄새가 후각 자극…숙성된 선어회가 감칠맛 더해

우리나라 사람이 생각하는 맛있는 음식에는 ‘입에 살살 녹는’이나 ‘즉석’ ‘싱싱함’ 같은 수식이 따른다. 선홍색 육질에 눈꽃 같은 마블링이 촘촘히 박힌 부드러운 소고기, 수족관에서 잡아 올린 펄떡이는 생선을 즉석에서 잡아 썰어내는 활어회가 그렇다.

지방이 눈꽃처럼 잘게 퍼진 고기가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을까. 생물로 회를 뜬 활어회가 위생적이고 맛있을까.

ⓒ 시사저널 전영기
마블링의 본질은 지방이다. 소고기 지방은 포화지방으로 콜레스테롤 유발 물질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소고기를 파는 사람이나 소비자나 유독 ‘마블링’을 따진다. 음식평론가 황교익씨는 이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쪽이다. 그는 “마블링이 촘촘히 박힌 고기가 맛있다고 하는 것은 착각이다”라고 말했다. 식탁 위에 불판을 올려 직화 구이로 먹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습관이다. 직화로 구울 경우 기름이 녹아내리며 타면서 향이 난다. 이 기름 타는 고소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황씨는 “사람들은 그 냄새를 맡고 고기를 입에 넣었을 때 지방이 입안 가득 코팅되듯 발라지는 것을 ‘맛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기 맛은 씹어야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기 장사를 잘한다고 소문난 식당들은 대부분 불판으로 프라이팬 스타일의 둥그런 무쇠판을 쓰고 고기를 굽기 전 팬에 소기름을 두른다. 황씨는 “소기름 타는 냄새가 확 올라오면 웬만한 고기는 다 맛있게 느껴진다. 콩팥 옆 두태라는 부위를 쓰는데 그게 향이 강하다. 거기에 놓고 돼지고기를 구워도 맛있다고 느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방이 퍼져 있는 상태를 기준으로 하는 등급제는 사람들에게 마블링 신화를 더욱 굳게 만들었다. 1++, 1+, 1, 2, 3으로 나뉜 소고기 등급제는 사람들에게 1++는 최고의 고기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이에 대해 축산물품질평가원에서는 “순위라기보다 소비자 개개인의 입맛에 맞는 부위나 등급을 알려주는 가이드로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서울 팔판동에서 3대째 정육점을 운영하는 이준용씨는 “개인적으로는 살치 같은 부위는 느끼해서 1++보다는 지방이 좀 더 적은 1+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사람들의 입맛이다. 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축산물 도매시장에서는 등급에 따라 kg당 1500~2000원 정도의 차이가 난다. 취지야 어떻든 등급제가 소비자에게는 고기 소비의 구매 가이드가 아닌 ‘성적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소고기 등급제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마블링 신화가 인위적인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 제도가 미국 곡물업자나 사료업자의 배만 불리고 있다는 것이다. 마블링은 소를 방목하기보다는 묶어놓고 곡물 사료를 잔뜩 먹여야만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등급제는 언제 도입된 것일까. 정식 명칭이 ‘축산물등급표시제’인 이 제도는 1989년 처음 도입됐는데 당시에는 1, 2, 3등급뿐이었다. 이후 두 개의 분류가 더 생겼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서는 “축산물 수입 개방이 이뤄지면서 한우 산업을 지키기 위해 품질의 차별화를 유도했다”며 “그 과정에서 등급제를 도입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한우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마블링 신화’를 만들며 국내 축산업이 더욱 미국 곡물업자에 종속된 점은 아이러니다. 전 세계에 유통되는 육우는 대부분 옥수수 사료를 먹이기 때문에 마블링에 관한 한 한·미·일의 차이는 거의 없다. 일본의 축산물 등급 분류상 최상급 등급은 우리보다 더 지방이 많다. 미국은 우리와 비슷한 마블링 기준으로 등급 판정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블링 신화는 대중 매체의 요리 혹은 음식점 관련 프로그램을 통해 더욱 증폭되고 있다. 마블링의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트렌드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숙성육이다. 숙성육은 새로운 게 아니다. 국립축산과학원이 펴낸 자료에는 ‘소나 돼지를 도축한 뒤 사후 경직이 끝나 고기가 부드러워지는 것을 숙성이라고 부르고 돼지는 3~5일, 소는 7~10일 정도 지나면 고기가 부드러워지고 맛이 좋아진다’고 나와 있다. 음식평론가 황교익씨는 “20일 이상 숙성하면 소고기는 마블링이 없어도 부드럽고 고소해진다. 유럽에서는 숙성육이 기본”이라고 전했다. 지방이 적어 등급이 낮지만 풍미가 진한 맛을 즐기려면 숙성육이 좋다는 것이다.

눈앞에서 잡는 게 최고의 품질 인증?

숙성육을 만들기는 어렵지 않다. 위생적으로 처리된 고기를 진공 포장한 뒤 김치냉장고에서 5℃ 이하로 열흘 이상 숙성시키면 된다.

마블링만큼이나 소비자를 혼동시키는 것이 ‘활어 vs 선어’ 논쟁이다. 활어를 잡아 일정 시간 숙성을 거친 것을 선어회라고 한다. 선어회가 활어회보다 감칠맛이 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또 공장에서 위생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점, 산지가와 소비자가의 차이를 줄여 생산자인 어민과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에서 한때 선어회에 ‘싱싱회’라는 이름을 붙여 보급 운동에 나섰다.

하지만 2003~04년 싱싱회 캠페인은 수십억 원을 날린 채 실패로 끝났다. 소비자들이 호응을 안 했기 때문이다. 국내 소비자들은 횟집 수족관이 아무리 더러워도, 활어차에서 물고기가 스트레스를 받아 맛이 떨어진다고 해도 활어회를 찾는다.

싱싱회의 이론적 근거와 기준을 정부에 제안했던 조영제 교수(부경대 식품영양학과)는 “어금니와 혀의 싸움에서 어금니가 이겼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 숙성된 회가 감칠맛이 더했고, 고소하고 쫄깃한 식감을 찾는 소비자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에서는 회로 뜬 생선을 3~4일 지나도 먹는데 우리는 씹는 맛을 중시해 쫄깃한 식감을 원한다. 쫄깃함과 숙성된 감칠맛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시간이 활어를 잡고 난 후 10시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싱싱회가 보급되지 못한 이유를, 활어 처리 공장을 도시 근처에 세워 오전에 잡아 처리한 선어회를 소비자들이 오후에 먹을 수 있게 하지 못한 점에서 찾았다. 싱싱회 처리 공장이 모두 생산지 근처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위생과 운반 비용, 품질 관리 측면에서 활어회보다 선어회가 낫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조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개인에게 무엇이 더 좋다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더 맛있고 위생적인 것을 즐길 수 있는 길이 막힌 것은 유감”이라고 덧붙였다.

황교익씨는 “TV 등 대중 매체에 넘쳐나는 음식 관련 프로그램이 음식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주기보다는, 편견을 더욱 확대 조장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소고기는 마블링이 많은 게 최고가 아니고, 눈앞에서 잡아 내놓은 활어회도 최고는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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