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인사 별장 성접대 사건 70일 취재기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ess.com)
  • 승인 2013.03.27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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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장 섹스파티 참가 여성 토로…<시사저널>, 1월 초부터 ‘성접대’ 사건 취재

결국 터졌다. 권력과 섹스가 연결되는 희대의 ‘성(性) 스캔들’이 다시 한번 우리 사회의 치부를 여지없이 노출시켰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대거 연루된 ‘성(性)접대’ 파문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중에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이름도 나왔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인물이다. 김 전 차관은 성접대 의혹을 전면 부인하면서도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현 정부에 부담을 줄 수 있다며 6일 만에 전격 사퇴했다.

그의 말처럼 지금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북한 핵실험과 신임 정부 부처 인사들의 낙마 도미노 사태 등으로 연일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다. 여기에 성접대 파문과 관련해 청와대 인사 검증 시스템에 구멍이 뚫린 것으로 확인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희대의 성 스캔들에 지금 모든 언론의 시선은 사건 현장인 강원도 원주의 별장,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인 건설 사업가 윤 아무개씨(52), 이 별장에 동원된 여성들에 온통 쏠려 있다. 그리고 별장 안에서 적나라하게 펼쳐진 성접대 현장을 찍은 동영상의 존재 여부가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지금 갑자기 터진 것이 결코 아니다. 경찰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었더라면 1~2월경에 불거질 수도 있었다. <시사저널>이 관련 정보를 최초 입수하고, 문제의 동영상 가운데 일부를 확인한 것 또한 1월 초였다. 사실상 이 사건에 대해 인지하고 처음 취재에 나선 것은 본지였다. <시사저널>은 지난 2개월여 동안 이 사건의 민감성을 감안해 확인 취재를 계속해왔다. 하지만 최종 확인 단계에서 다른 매체들의 ‘터뜨리기 식’ 의혹 제기 기사가 먼저 쏟아졌다.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동안의 취재 전 과정을 소개한다.

ⓒ 시사저널 임준선
경찰 수사 정상적이었다면 2월에 터졌을 것

유력 인사 성접대 파문은 지난해 11월 한 교육업체에 종사하는 권 아무개 원장(51·여성)이 건설업체 사업가 윤씨를 성폭행 혐의로 서울 서초경찰서에 고소하면서 시작됐다. 권씨는 윤씨가 자신을 강원도 원주 별장으로 유인한 뒤 약을 먹여 성폭행했고, 성폭행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자신을 협박해 20억원과 자신의 벤츠 차량을 가져갔다고 경찰에서 주장했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지난해 말 윤씨의 강원도 별장을 압수수색해 윤씨가 소유한 총기, 일본도(刀) 등 불법 무기와 알약 등을 확보했으나 문제의 성폭행 동영상을 입수하지는 못했다.

처음 경찰은 불법 총기와 약물 소지, 불법 음란 동영상 촬영 등에 대해 강간과 공갈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이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했다. 영장 발부가 불발돼 더는 수사를 진행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경찰은 지난 2월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과 총포도검법 위반 혐의에 대해 기소 의견, 강간과 공갈 혐의에는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한편 권씨는 경찰 수사와 별개로 지인인 사업가 박 아무개씨에게 윤씨가 가져간 자신의 벤츠 승용차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박씨는 권씨의 차량을 찾아서 가지고 있던 중 윤씨가 차 트렁크 안에 보관하고 있던 문제의 성접대 동영상 CD 6~7장을 발견한다. 박씨는 이 영상을 가지고 되레 권씨를 협박했다. 이때부터 단순 성폭행 관련 고소 사건으로 마무리될 뻔했던 사건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해당 동영상에 사회 고위층 인사들이 등장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성접대 리스트에 오른 인물만도 김 전 차관을 비롯해 허준영 전 경찰청장, 현직 경찰 고위 관계자 ㅇ씨, 행정부 고위 관계자인 또 다른 ㅇ씨, 전 감사원 고위 관계자 ㅎ씨, 대학병원장 ㅂ씨, 사업가 ㅊ씨 등이다. 윤씨가 이들을 강원도 원주시 남한강변에 있는 자신의 별장으로 정기적으로 초대해 환각 섹스파티를 벌였다는 것이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동영상에 담긴 적나라한 성행위 장면

<시사저널>이 이와 관련된 정보를 입수한 것은 지난 1월 초였다. 당시만 해도 이 정보를 알고 있었던 이는 경찰 수뇌부 일부에 불과했다. 기자는 1월 초 서울 한 호텔에서 경찰 고위 관계자를 만났다. 이 간부는 기자에게 “대형 게이트로 번질 수 있는 지저분한 사건이 있다”며 실제 섹스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기자가 당시 직접 확인한 동영상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다. 당시 별장에서 벌어진 성관계 과정을 자세히 담고 있었다. 한 남성이 상의를 탈의하고 팬티만 입은 채로 서 있었다. 한 손에는 노래방 마이크가 들려 있고, 장소 역시 침실 등 비공개적인 곳이 아니었다. 차후에 확인해본 결과 경찰에서는 이곳을 윤씨의 별장 내 노래방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이때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한 여성이 이 남성에게 다가왔다. 단발머리의 여성은 얼굴을 숙인 채였으나 환각 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그 여성은 남성 앞에 서더니 갑자기 남성의 속옷을 내렸다. 둘은 그 자리에서 바로 성행위를 했다.

포르노를 방불케 하는 영상 내용도 충격적이지만, 이 영상을 촬영한 방법도 놀라웠다. 일단 공개된 장소에서 성행위를 한 것이고 촬영 역시 몰래 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화면의 앵글이 한 번 바뀌는데 남성과 여성 모두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당시 둘의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영상 속 남성과 여성은 모두 얼굴이 나온다. 여성은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누구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지만, 남성의 경우 옆모습이 뚜렷하게 나온다. 그러나 기자가 본 바로는 그 인물을 누구라고 특정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화질 상태가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기자가 확인한 영상 자체가 컴퓨터 화면에 재생시켜놓고 휴대전화로 다시 녹화한 것이기 때문에 선명하지 않았다.

<시사저널>은 사안 자체가 워낙 중요하기 때문에 단순 동영상 확보 외에 좀 더 확실한 관계자들의 증언 및 증거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때부터 확인 취재에 들어갔다.

성접대 논란에 휘말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3월21일 오후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했다. ⓒ 뉴시스
별장 파티 참가 여성 “나 역시 성상납 피해자”

동영상 속 인물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별장 파티에 동원된 여성들의 진술이 나온다면 사실관계를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시사저널>은 1월 말께 별장 파티에 참가한 여성 중 한 명인, 전문직에 종사하는 30대의 여성을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이 여성은 자신들이 ‘피해자’가 아닌 ‘윤락녀’ 정도로 오해받을 수 있음을 가장 두려워했다. 이 여성은 “사회 고위층이 연루된 사건이고, 조직폭력배도 연관돼 있다. 우리 같은 사람이 이 틈바구니 속에서 희생될 게 빤한 것 아닌가. 모든 것이 조용히 넘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취재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별장에 다녀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너무 이상해서 다른 사람(다른 피해 여성)에게 물어봤더니 마약 성분이 검출되었다고 하더라. 우리(피해 여성)들은 이 약에 취해 성관계를 가진 것일 뿐이다. 우리는 명백한 피해자이지, 어떤 대가를 받거나 바라고 몸을 판 게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최근 참고인 진술을 한 여성 두 명의 혈액에서 마약류 의약품 ‘로라제팜’을 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취 전 긴장 완화 목적으로 투약하는 로라제팜은 의사 처방이 있어야만 구입할 수 있는 약품이다. 만약 이 약품이 다른 관련자들에게서도 검출된다면 마약류 사건으로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2월에 접어들면서 이번 사건과 관련된 정보들이 여러 기관을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때 사건의 핵심으로 떠오른 것이 원본 CD 6~7장이었다. 지금까지 파악된 관련 영상은 총 세 가지로 파악된다. △기자가 확인한 동영상 △강간 사건과 관련해 윤씨측에서 경찰에 제출한 동영상 △김 전 차관이 해명 자료로 청와대에 제출한 동영상 등이다.

그렇다면 원본 CD는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원본 CD만 나온다면 그동안 ‘의혹’이나 ‘설’로만 퍼졌던 성접대 사건의 실체가 확인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설만 무성할 뿐이다. 원본 CD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윤씨가 아닌 박씨이며, 박씨가 이 원본 CD를 모 기관에 넘겼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CD를 소유하고 있다는 몇몇 정치권 인사의 얘기도 나왔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경찰조차 이 원본 CD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경찰은 3월20일 윤씨의 조카 ㄴ씨를 소환 조사해 개인 노트북을 제출받아 동영상이 있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한 정치권 고위 인사는 “2월 초쯤 경찰 관계자가 찾아와 문제의 CD를 보유하고 있는지 묻더라. 사실 나도 이 사건을 그때 처음 들은 것이어서 깜짝 놀랐다. 내가 들은 이야기로는 한 언론 매체가 제보 형식으로 CD 원본을 확보했고, 그 매체의 고위 관계자만 영상을 돌려봤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기자는 원본 CD의 실체를 추적하는 것과 동시에 사업가 윤씨와 최초 경찰에 고소했던 권씨 등을 만나려고 했다. 그러나 2월부터 사건 내용이 검찰과 경찰 및 정치권과 일부 언론 등에 은밀하게 확산되면서 관계자들은 꼭꼭 숨어버렸다. 문제는 경찰의 수사 태도였다. 정상적이라면 관련자들을 모두 소환 조사하고 이 사건의 실체를 알려야 했음에도 어쩐 일인지 경찰은 공식 수사에는 나서지 않고 내사 수준의 첩보 수집에만 열을 올리는 모습이었다. 만약 경찰이 확실한 물증인 원본 CD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결국 이 사건은 ‘진실 공방’만 되풀이하다 흐지부지되고 말 가능성이 크다. 이 사건을 결국 경찰과 검찰의 ‘또 다른 전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학의 옷 벗기 전 터뜨린다, 기다려라”

경찰은 박근혜 정부가 자신의 숙원인 ‘검·경 수사권 조정’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보고 있다. 지난해 말 터진 검란, 뇌물 검사·성추문 검사 사건 등으로 수사권 조정을 바라는 국민 여론도 상당히 호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박근혜 정부가 수사권 조정을 장기적 과제로 돌리면서 “결국 안 되는 것이냐”라는 탄식이 경찰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또한 검찰이 올해 들어 경찰의 비위 사건을 집중적으로 조사하면서 경찰의 도덕성 문제와 수사 능력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마당에 새 정부의 초대 검찰총장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검찰 고위 간부의 성상납 문제가 터진다면, 분위기를 단번에 반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의 초점이 김 전 차관에게 집중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일부 동영상을 확보하면서부터 경찰의 타깃이 김 전 차관이었다는 정황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시사저널>이 지난 2월 중순 확인 취재에 집중할 당시 경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조금만 기다려봐라. 확실한 증거를 모으고 있다. 늦어도 3월10일 전에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때 즈음해서 검찰총장과 경찰청장 등을 비롯한 인사가 날 것인데, 이때 김 전 차관이 (만약 검찰총장이나 다른 고위직에 오르지 못해) 옷을 벗게 되면 파괴력이 떨어질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스스로 옷을 벗기 전에 이 사건을 무기로 낙마시킬 것이라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검찰측에서는 경찰이 수사권 조정을 위해 ‘진흙탕 싸움’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지금까지 나온 상황을 보면 어떤 것도 정확한 게 없다. 언론에 김 전 차관의 실명이 거론되었는데 그것을 입증할 최소한의 증거도 없어 보인다. 이는 경찰의 언론 플레이를 통한 ‘검찰 흠집 내기’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할 때, 경찰은 김 전 차관이 사퇴한 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성접대 의혹의 최대 희생자 중 하나는 바로 청와대다. 김 전 차관의 실명이 언론에 거론되면서 청와대는 발칵 뒤집혔다. 청와대가 이 문제를 언제 인지했는지도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청와대가 김 전 차관의 성접대 의혹에 대해 임명 전에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김 전 차관이 강력히 부인해 임명했다’는 설과 ‘임명 후 알게 된 뒤 박 대통령이 대노했다’는 두 가지 설이 나오고 있다.

전자의 경우, 김 전 차관이 임명 전 청와대에 들어가 자신의 입장을 상세히 보고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김 전 차관이 청와대에서 한 사진을 보여주며 적극 해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사진은 남녀가 별장에 들어가는 장면을 멀리서 찍은 것이라고 한다. 얼굴을 전혀 식별할 수 없기 때문에 청와대에서도 단순 루머 수준으로 보고 넘어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후자의 경우는 좀 더 복잡하다. 이 경우에는 김기용 전 경찰청장의 해임과도 관련이 있다. 김 전 청장이 관련 정보를 청와대에 정확히 보고하지 않았고, 차관 임명이 있은 후 문제가 불거지자 박근혜 대통령이 보고 누락에 대해 진노했다는 것이다. 이에 박 대통령이 김 전 청장의 경질을 전격 결정했고, 본인이 직접 청와대 사회안전비서관에게 경찰 내사를 지시했다는 이야기다. 전자의 경우라면 ‘치명적 인사 실책’이 될 것이고, 후자의 경우라 해도 ‘인사 검증 시스템의 부재’라는 비판을 피해가긴 어려워 보인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진실은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어찌 됐든 박근혜식 인사의 문제점은 다시 한번 드러났다. 지난 정권의 ‘고소영 내각’보다 훨씬 심각한 ‘비리 내각’이 돼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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