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분으로 ‘벙커’에서 허우적대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3.04.0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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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GA 전ㆍ현직 집행부 이전투구 재현 조짐…검찰은 회장 추대 관련 비리 의혹 수사

지난해 전윤철 전 감사원장의 회장 취임으로 파행을 거듭했던 KPGA(한국프로골프협회)가 또다시 술렁이고 있다. 검찰이 전 집행부의 비리 의혹에 대해 조사를 재개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대상은 대부분 전 전 감사원장의 회장 추대를 주도했던 인사들이다. 검찰은 수사 내용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동부지검 형사1부 관계자는 “수사와 관련된 내용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정기관 관계자는 “지난 1월 전 집행부 3명에 대해 시한부 기소중지 조치를 내린 상태다. 조만간 이들을 불러 보완 수사를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내가 가진 파일 공개하면 협회 공멸”

지난해 발생한 KPGA 내분으로 대회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선수들도 피해를 봤다. ⓒ 연합뉴스
KPGA 전·현직 집행부는 검찰 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 집행부는 그동안 조사한 전 집행부의 비리 파일을 추가로 검찰에 제출할 예정이다. 여기에 맞서 전 집행부 역시 비리 파일 공개를 저울질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검찰 조사를 받은 한 협회 임원은 “내가 가지고 있는 파일을 모두 오픈하면 협회는 끝장난다”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 또 한 번 내분이 불거질 수 있어 주목된다.

협회 관계자의 말을 종합해보면 지난해 내분은 결국 기업 총수를 회장으로 추대하는 관행 탓에 일어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KPGA는 2004년부터 8년간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체제로 운영됐다. 협회 정관상 비회원에 대해서는 회장 선임이 불가능하다. 박 회장 역시 KPGA 회원이 아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회장에 추대될 수 없다. 하지만 회원들은 이런 사실을 묵인했고, 박 회장은 12, 13대 회장을 지냈다. 재임 당시 실적도 좋았다. 한 협회 관계자는 “박삼구 회장 재임 때가 가장 좋았다. 각종 경기 유치로 70억원의 흑자를 내는 등 사업적으로 큰 성과를 냈다”고 말했다. 2011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프레지던츠컵을 국내에 유치하기도 했다.

후임 회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회원들 사이에서 또다시 대기업 총수를 추대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류진 풍산그룹 회장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다. 류 회장은 박 회장과 함께 프레지던츠컵 유치에 큰 역할을 한 인사다. 평소 친분이 있는 PGA 관계자를 초청해 국내 골프장을 소개하기도 했다. KPGA 관계자는 “프레지던츠컵은 미국과 세계연합팀 간 경기로 ‘골프의 올림픽’이라 불린다. 류진 회장의 숨은 노력으로 한국은 일본, 중국 등을 제치고 경기를 유치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새로운 회장 추대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류 회장을 지지하는 쪽과 안상수 전 인천시장을 추대하자는 쪽이 팽팽히 맞섰다. 류 회장은 협회장 자리를 포기했다. 그는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 골프 발전을 위해 회장직을 고려했으나 뜻이 왜곡될 가능성이 있어 맡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KPGA 회장에 취임해 논란을 빚은 전윤철 전 감사원장. ⓒ 연합뉴스
기업 총수 회장 추대 관행이 문제

이후 류 회장 추대를 공약으로 내건 이명학 프로가 14대 회장에 당선됐지만 내홍은 가라앉지 않았다. 정관 교체를 통해 류 회장을 추대하려고 했으나, 류 회장은 한사코 회장직을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전윤철 전 감사원장이 회장으로 추대됐지만 정관이 발목을 잡았다. 전 전 감사원장 지지파와 반대파 간에 혈전이 벌어졌다. 김학성 당시 부회장 등은 전 전 감사원장을 추대하는 과정에서 공문서 위조 및 행사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집행부는 다시 반대파를 명예훼손 혐의로 맞고소하는 등 파행이 이어졌다.

결국 전 전 감사원장은 2012년 7월 사퇴 의사를 밝혔다. 우여곡절 끝에 황성하 회장이 그해 10월 회장에 취임했다. 1년 가까이 진행된 내분은 가라앉는 듯했다. 하지만 전 집행부에 대한 검찰 조사가 본격화하면서 또다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검찰의 수사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전윤철 전 감사원장이 KPGA 회장으로 선출될 당시 집행부가 편법을 썼느냐다. 당시 집행부는 대의원 총회에서 회장 선출이 가능하도록 정관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위임장을 무더기로 위조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하나 회관 매입 과정의 문제를 검찰이 어떻게 판단할지도 주목된다. 현 집행부는 조만간 전 집행부의 불법 사실을 취합해 추가로 자료를 제출할 예정이다. 협회 관계자는 “고문변호사를 통해 법적 자문을 끝낸 상태다. 조만간 변호사를 통해 추가 자료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 집행부 역시 대응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회장 대행이었던 김학서 프로는 “무기명 위임장이 들어오면 대신 사인해서 제출하는 것이 당시 관행이었다. 이전에는 침묵했던 집행부가 이 관행을 문제 삼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회관 구입 과정의 의혹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그는 “직무를 대행할 당시 업무 추진비를 줘도 안 받았는데 무슨 횡령이고 배임이냐”면서 “필요한 서류를 가지고 있는 만큼 검찰 조사에서 모두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대기업 총수와 스포츠단체의 공생 

기업 총수와 스포츠단체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기업 총수가 수장을 맡으면 재정적으로 후원을 받을 수 있는 데다 성과도 좋아 단체장으로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재벌 총수 역시 스포츠 지원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높이고 개인적인 명예도 얻을 수 있어 ‘1석2조’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대표적이다. 이 회장은 1982년부터 15년간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을 지냈다. 체육계 인사들은 “당시가 한국 레슬링의 르네상스 시대였다”고 입을 모은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대를 이어 대한양궁협회 회장직을 맡았다. 특히 정 부회장은 지난 1월 3선에 성공하면서 주목받았다. 런던올림픽 여자단체전이 끝나고 정의선 부회장과 선수들이 껴안던 모습은 국민에게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2008년부터 각각 핸드볼협회 회장과 탁구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특히 최 회장은 핸드볼계의 오랜 숙원이던 핸드볼 전용경기장을 기부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한때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을 이끌기도 했다.

부작용도 적지 않다. KPGA와 마찬가지로 KLPGA(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도 2011년 내분에 휩싸였다. 결국 선종구 전 하이마트 회장이 사퇴하고, 구자용 LS네트웍스 회장이 후임 회장에 추대됐다. 2009년에는 강영중 대교그룹 회장이 내부 갈등으로 대한배드민턴협회 회장 겸 세계배드민턴연맹(BWF) 회장에서 사퇴하기도 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세습 논란’을 빚기도 했다. 회장 선거에 참여했던 안종복 남북체육교류협회장은 ‘당랑거철(螳螂拒轍 : 사마귀가 수레를 막는다)’이라는 말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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