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즘 망령이 노래로 되살아나다
  • 강성운│독일 통신원 ()
  • 승인 2013.04.09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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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극우주의 확산 통로 되고 있는 독일 대중음악

3월21일 독일 대중음악 시상식인 ‘에코 팝’(ECHO POP)이 성황리에 개최됐다. 주인공은 단연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등 네 개의 주요 부분을 휩쓴 펑크 밴드 디 토텐 호제(Die toten Hose)였다. 하지만 시상식이 열리기 직전까지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바로 록밴드 프라이빌트(Frei.Wild)다.

3월 초 프라이빌트가 에코상 ‘독일 록·얼터너티브 음악’ 부문 후보에 오른 후 이 밴드는 연일 독일 신문들의 사회면을 장식했다. 이들의 극우주의 옹호 의혹 때문이다. 3월5일 후보자 명단이 발표된 다음 날인 6일부터 함께 후보에 오른 다른 밴드들이 잇따라 시상식 불참을 선언하면서 논란이 급속히 가열됐다. 크라프트클럽(Kraftklub)은 프라이빌트를 제외한 다른 후보 밴드들을 언급하면서 “함께 거명돼 영광이지만 시상식에는 참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진 않았지만 배경은 충분히 짐작할 만했다. 또 다른 밴드 미아(Mia)는 “구역질 나는 세계관을 지닌 프라이빌트와 함께 호명됐다”고 노골적인 반감을 나타내면서 자신들을 후보자 명단에서 빼줄 것을 요구했다.

독일 대중음악 시상식인 ‘에코 팝’ 시상식장 앞에서 프라이빌트 팬들이 ‘프라이빌트는 극우도 좌파도 아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 EPA 연합
인기 밴드에 러브콜 보내는 극우 정당

일이 커지자 시상식을 주관하는 포노 아카데미는 난색을 표시했다. 차트 성적을 기준으로 후보를 가렸기 때문에 지난해 주간 앨범 차트 2위를 차지한 프라이빌트도 후보로서 손색이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지난해 10월 발매된 이들의 앨범은 불과 5개월여 만에 독일에서만 10만장 이상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음반 성적과 별개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주최측은 3월7일 프라이빌트를 후보자 명단에서 빼기로 결정했다. 그것으로 에코상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네오 나치주의가 대중문화에 침투한 독일 현실에 대해 경계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프라이빌트는 이탈리아 내의 독일계 자치지구인 남부 티롤에서 결성된 밴드다. 주로 독일에 대한 애국심을 주제로 한 노래를 불러 극우 네오 나치주의 혐의를 받았다. 독일에서 국가주의는 2차 대전과 유대인 학살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나치의 이념’으로 굳어졌다. ‘애국심이 나라에 대한 배신이라 믿는 바보들의 나라’와 같은 공격적인 어조로 애국심을 노래하는 밴드가 네오나치 의혹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막상 당사자인 프라이빌트는 그동안 극우주의 의혹을 강하게 부정해왔다. 이들은 콘서트에서 “나치는 나가라!”는 구호를 외치고 극우파의 표식이 달린 옷을 입은 사람에 대해서는 아예 콘서트장 출입을 막기도 했다. 리드 보컬인 필립 부르거(Philipp Burger)는 여러 인터뷰에서 “우리는 비정치적인 밴드이며 그 어떤 극단주의도 혐오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극우주의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이 밴드에 대해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그 배경에는 일단 밴드를 이끄는 부르거의 석연치 않은 과거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그는 10여 년 전 스킨헤드 밴드를 결성해 외국인을 향한 노골적 혐오를 담은 곡들을 발표한 전력이 있다. 부르거는 “누구나 어렸을 때는 실수를 한다”고 과오를 인정하면서 “나는 네오 나치주의와 결별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그의 과거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주장과는 달리 이미 프라이빌트로 활동하던 2008년에도 지역의 한 극우 정당에 몸을 담고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들은 비정치성을 표방하지만 음악을 통해 과격한 애국주의를 전파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말로는 “어떠한 극단주의와도 거리를 둔다”고 하는데, 이 역시 실은 극우 이념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려는 달콤한 포장술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 9년간 네오 나치주의자들을 밀착 취재한 언론인 토마스 쿠반(가명)은 이 밴드가 부르는 이른바 ‘정체성 록’이 네오나치 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슈피겔 온라인’ 역시 한때 네오 나치였던 한 청년의 말을 인용해 “이 밴드가 표방하는 비정치적인 애국주의야말로 무섭도록 위험한 것”이라고 전했다. 극우주의의 위험을 축소해 더 쉽게 확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정치성을 표방한 덕분인지 프라이빌트는 점점 많은 팬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프랑크푸르트·함부르크·뒤셀도르프 등 독일 대도시와 오스트리아, 스위스에서 열린 순회 콘서트는 1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극우파, 대중음악 매개로 청소년들과 접촉

극우 정치인들은 프라이빌트의 팬층이 점점 두터워지는 현상을 반기는 눈치다. 극우 정당인 독일민족민주당(NPD)의 파트릭 슈뢰더는 당의 인터넷 방송에서 “프라이빌트는 100%는 아니지만 80%는 우리 노선을 따르고 있다. 우리는 (유명한 네오 나치 밴드인) 뵈젠옹켈즈보다 이 밴드로부터 훨씬 더 많은 이점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극우파 정치인들의 옹호에 대해서도 프라이빌트는 “우리는 극우파가 아니다”라는 단순 해명만을 반복할 뿐 여전히 과격한 수사를 담은 곡들을 발표하고 있다.

최근 독일 사회에서 감지되고 있는 네오 나치의 ‘변신’은 마치 프라이빌트의 포장술과 비슷하다. 이들은 네오 나치의 상징과도 같은 스킨헤드(민머리)와 검은 가죽옷, 군화 등을 버리고 새로이 몸단장을 하고 있다. 젊고 세련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다. 이들은 심지어 정치 성향이 정반대인 좌파 대학생들의 머리 모양, 패션 아이템 등도 무차별적으로 수용해 이제 더는 옷차림만으로는 극우인지 좌파인지 구분하기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음악적으로도 네오 나치는 메탈과 록 음악 일변도에서 탈피해 랩 음악에도 손을 뻗쳤다. 이러한 변화는 독일 극우파가 지난 10년간 청소년들을 주요 선전 대상으로 삼은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독일에서 음악은 청소년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독일 청소년들은 힙합, 펑크, 고딕, 이모(Emo), 아시아 팝 등 즐겨 듣는 음악의 종류에 따라 확연히 구분되는 옷차림을 한 채 삼삼오오 몰려다닌다. 이들에게 음악은 단순히 오락거리가 아니라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이며, 비슷한 세계관을 가진 또래를 만나는 매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매년 NPD가 전국 학교 및 청소년센터에 배포하는 이른바 ‘운동장 CD’도 극우파가 대중음악을 매개로 청소년들과 접촉하고 있는 증거물이다. NPD는 지난 2004년부터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외국인 혐오 등을 부추기는 음반을 제작해 무료로 나눠줬다. 최근 인터넷을 통한 무료 다운로드까지 제공하면서 청소년들이 극우주의에 노출될 가능성은 한층 커졌다. 연방 청소년유해매체검사원의 엘케 몬센-엥베르딩 원장은 “청소년보호법과 표현의 자유, 양 측면을 신중히 검토했지만 운동장 CD를 금지할 만한 논거가 불충분하다”면서 운동장 CD 단속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다.

프라이빌트의 앨범도 운동장 CD와 같은 네오 나치의 선동 음악일까. 에코상 시상식 당일 이 밴드의 보컬 부르거와 팬들은 네오 나치에 대한 반대 시위를 벌였다. NPD가 프라이빌트를 옹호하는 시위를 계획하자 이를 거부하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그러나 대중음악계에 신성으로 떠오른 이 밴드의 속내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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