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칼끝, 남양유업을 겨누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3.04.1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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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점 물량 밀어내기 혐의 조사…홍원식 회장 검찰 소환 여부에 촉각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또다시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최근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대리점 물량 밀어내기와 떡값 갈취 의혹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남양유업 경영진과 직원들을 상대로 한 고발장이 4월1일 서울중앙지검에 접수됐다”며 “현재 형사6부에 사건을 배당해 수사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 조사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고발장에 따르면 남양유업은 2012년 5월부터 최근까지 전산 프로그램을 조작해 대리점 발주 물량을 부풀렸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거나 이미 지난 제품까지 보내기도 했다. 제품 강매로 회사는 견실한 성장을 이어갔지만 대리점 업주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고 고발인들은 주장했다. 검찰은 조만간 관련 인사들을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대리점 계약 해지를 빌미로 명절 떡값이나 대리점 개설비, 퇴직 전별금까지 갈취한 혐의 역시 수사 대상이다. 검찰 고발을 주도한 대리점 업주들은 현재 본사가 개입한 정황과 상납 내역 등을 확보한 상태라고 한다. 한 대리점 업주는 “‘재고 물량을 지점에 할당한 뒤, 대리점에 강제로 공급해 판매 목표량을 달성한다’는 내용의 내부 직원 증언까지 확보했다. 검찰에도 관련 자료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주목된다.

4월12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위치한 남양유업 본사 앞에 시위 팻말이 놓여 있다.ⓒ 시사저널 이상민
회사측 “일부 대리점 주장일 뿐”

특히 홍 회장은 2003년 검찰에 구속된 전력이 있다. 충남 천안시 목천공장 신축 과정에서 시공사인 삼성엔지니어링으로부터 13억원을 챙긴 혐의였다. 홍 회장은 2007년 경제인 특별사면으로 복권되면서 경영에 복귀했지만 남양유업의 물량 밀어내기는 이후에도 계속됐다는 것이 대리점 업주들의 증언이다. 2009년에는 ‘물량 밀어내기로 인한 손해를 대리점에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에 따라 홍 회장과 김웅 대표가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대리점 업주들 역시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명령과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대리점에 대한 제품 강매는 끊이지 않았다”며 “홍 회장이나 김 대표의 지시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남양유업측은 “일부 대리점 업주들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강조한다. 회사 관계자는 “대리점 몇 곳이 수천만 원의 미수금을 탕감해달라고 해서 거절했더니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며 “검찰 고발 역시 같은 사안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공정위나 검찰 고발에 참여한 업주들은 일부에 불과하다”며 “이들에 대해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상태”라고 밝혔다.

하지만 업주들의 주장은 다르다. 이들은 “남양유업 대리점을 하면서 남은 것은 빚밖에 없다”며 “대응책 마련을 위해 피해자 협의회를 구성하자 나머지 업주들을 협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주들은 지난 1월25일 남양유업 본사가 제품을 강매하고, 명절 ‘떡값’이나 임직원 퇴직 위로금을 요구하고 있다고 공정위에 신고했다. 그러자 남양유업은 공정위 신고를 주도한 일부 업주들과의 대리점 계약을 해지하면서 경찰에 고소했다. 업주들은 다시 남양유업 경영진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 수사 결과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검찰은 이례적으로 고발장이 접수된 지 이틀 만인 4월3일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에 사건을 배당했다.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해 경찰을 통해 수사 지휘를 하지 않고 검사가 직접 수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물량 밀어주기 논란은 업계 관행이었던 만큼 피해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대리점 강매는 식품업계의 오랜 관행이다. 특히 남양유업에서는 인사에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영업사원들이 대리점을 몰아붙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과 대리점 강매 정황을 담은 녹취록(작은 사진). ⓒ 연합뉴스
본지 입수 녹취록 곳곳에 밀어내기 정황

<시사저널>이 입수한 한 대리점 업주와 본사 직원의 녹취록에서도 이런 상황을 엿볼 수 있었다. 녹취록에는 한 대리점 업주와 지점 직원의 전화 통화 내용이 일자별로 나와 있다. 한 대리점 업주는 “물건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100박스, 200박스씩 보내면 어떡하느냐. 하루 이틀도 아니고…”라고 말했다. “나가지도 않는데 넣기만 하면 어떡하느냐, 이럴 거면 뭐 하러 대리점에서 발주하게 하느냐”고 따지기도 했다. 스타벅스가 최근 상표권 침해 금지 소송을 제기한 ‘더블샷 캔커피’의 경우 밀어내기 물량이 적지 않았다. 한 대리점주는 “더블을 100판이나 넘게 밀면 어떡하느냐. 창고에 쌓을 곳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지점 직원도 답답한 듯 “미안하다. 이번이 마지막이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회사 차원에서 진행한 정황도 나왔다. 이 직원은 “회사가 또 시작이다. 생산은 이미 해놓은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대리점주들도 “최근 몇 년간 회사에서 전산을 조작한 증거들을 모두 확보한 상태다. 조만간 추가로 검찰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명절 떡값 역시 마찬가지다. 고소장에는 남양유업 직원들에게 지급한 떡값 내역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한 직원의 경우 가족 명의의 통장을 통해 돈을 지급받기도 했다. 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은 현금으로 지급했기 때문에 자료가 많지 않다. 그래도 대리점 한 곳당 20건 정도의 거래 내역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 수사에 동참하는 대리점주들을 통해 계속해서 통장 거래 내역을 확인하고 있다. 이 증거 역시 조만간 검찰에 추가로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일부 직원이 신규 매장을 확보한 후 본사에서 나오는 육성 지원금을 통해 리베이트를 조성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남양유업대리점피해자협의회의 관계자는 “대리점이 신규 매장을 뚫으면 입점비로 200만~300만원이 지원된다. 이 돈 중 상당액을 직원이 리베이트로 돌려받아 윗선에 상납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남양유업측은 “수사 기관이 판단할 문제”라며 “아직 검찰로부터 어떠한 통보도 받지 못했다. 검찰의 조사 상황을 보면서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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