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령연금 기다리다 쓰러지겠네
  • 강성운│독일 통신원 ()
  • 승인 2013.04.17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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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들, 연금 수령 나이 상향에 불만…노인 빈곤 문제 우려

독일에서는 올해부터 노령연금 수령 연령이 상향 조정됐다. 지난 2007년 당시 사민당(SPD)과 기민련(CDU)의 대연정 정부가 결의한 이 연금 개혁안은 2013년부터 매년 1~2개월씩 점층적으로 노령연금 수령 연령을 높여 2031년에는 67세 정년을 정착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다. 독일연금보험은 연금제 개혁이 고령화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연금 수령 기간이 1960년에는 1인당 평균 12년에 불과했지만, 수명이 늘어나면서 2030년에는 그 두 배인 평균 24년에 달할 전망이다. 반면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노인 인구를 부양하는 사람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로 인해 노동자 100명이 부양해야 할 연금생활자 수는 1960년 20명에서 2030년에는 50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연금 개혁안 실행의 첫 단추를 꿴 이들은 지난해 말 65세 생일을 맞이한 1947년 출생자들이다. 이들은 생일이 지나고도 한 달을 더 일해야 비로소 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었다. 연금제 개혁은 장기적으로는 노후 설계뿐만 아니라 교육, 취업, 가족 구성 등 생애 전반의 재설계를 뜻한다. 독일인들은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맞이하고 있을까.

쾰른에 사는 알프레드 함쉬 씨는 지난해 10월 65세 생일을 맞이했다. 그는 칠장이로서 독일은 물론 유럽 곳곳의 공사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그러나 지난 1998년 건축 현장이 무너지면서 왼쪽 다리가 깔리는 큰 사고를 당한 뒤 조기 퇴직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50세. 젊지는 않지만 자기 사업을 꾸려 한창 돈 모으는 재미를 맛보던 때였다. 그는 연금 개혁안에 대해 부정적이다. “원래 조기 퇴직을 하면 정년이 될 때까지는 노령연금을 못 받는다. 나같이 일찍 퇴직한 사람은 65세가 될 때까지 빈민 구제 기금을 받으면서 살아야 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장애연금을 받아서 노령연금을 받기 전에도 큰 어려움은 없었다.”

ⓒ DPA 연합
노령연금, 80년대 초부터 지속적으로 감소

함쉬 씨와 같은 조기 퇴직자들에게 연금 수령 연령 상향 조정은 곧 연금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늘어남을 의미한다. 그나마 그는 형편이 좋은 편이다. 모아둔 돈이 있어 사회보장제도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현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근황을 묻자 함쉬 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이 든 사람들은 일을 그만두고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3분의 1은 정년도 못 채우고 퇴직했다. 건축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몸이 안 망가지는 데가 없다. 오래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아닌 일이 있는데, 다 똑같은 나이로 정년을 정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본다.”

실제로 독일노동조합연맹(DGB)은 연금 개혁안이 지닌 가장 큰 문제로 노인 빈곤 심화를 지적하고 있다. 노령연금 액수가 1980년대 초부터 사실상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노령연금을 노동자의 세후 수입과 비교해볼 때 명확하게 드러난다. 독일연금보험 자료에 따르면 1980년대 초 노령연금은 세후 수입의 60%에 육박했지만 2012년에는 50%인 월 849유로(약 126만원) 정도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67세 정년이 완전히 정착되는 2031년에는 노령연금이 세후 수입의 43%에 불과하게 된다. 미래에 독일의 은퇴자들은 지금보다 더 심각한 빈곤의 위험에 노출되는 셈이다.

“연금 개혁안? 현실성 없다”

연금을 받을 때까지, 혹은 그 이후에도 계속 생업 활동을 하면 되지 않을까. 최근 몇 년간 독일에서 생업 활동을 하는 비율이 가장 크게 증가한 연령군이 55세 이상 64세 이하 그룹이다. 이러한 추세라면 65세가 아니라 67세여도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함부르크에 사는 마깃 베르비네크 씨는 지난해 60세 생일 안식년에 들어갔다. 1952년 7월생인 그녀는 현행 연금 개혁안대로라면 2017년 말까지 일을 해야 한다. 실업계 고등학교 프랑스어와 독일어 교사인 그는 정년을 채울 생각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나는 원래 보도사진작가가 꿈이었다. 그래서 사범대를 나왔지만 교사 연수도 받지 않고 독학으로 사진을 배워 사진작가로 일했다. 그런데 일이 잘 안 풀려서 마흔이 넘어서야 뒤늦게 연수를 받고 교사가 되었다.”

연금 개혁안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현실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금도 65세까지 정년을 채우는 사람을 보기 힘든데, 연금 수령 연령을 67세로 높이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얘기다. 독일연금보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1년 은퇴 후 연금을 받기 시작한 사람은 70여 만명. 이 중 절반에 가까운 33만7000여 명이 조기 퇴직자였다. 이 가운데 특히 간호인, 교사,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조기 퇴직 비율이 높았다. 이들은 정년을 채울 때보다 월평균 109유로(약 16만원)의 연금을 덜 받게 된다. 함쉬 씨와 달리 베르비네크 씨의 노후는 불안하다. 저축한 돈도 적을뿐더러 연금을 부은 기간도 짧아 연금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장의 생활에서도 차이가 난다. 함쉬 씨는 올여름 프랑스의 알자스 지방으로 2주간 휴가를 떠날 계획이다. 그는 매년 이렇게 서너 차례 긴 여행을 떠난다. 베르비네크 씨는 아직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그는 요즘 파트타임으로 시에서 운영하는 교양 프랑스어 교실 강사로 일할까를 고민 중이다.

올해 9월 총선을 앞두고 사민당과 좌파당은 일찌감치 이런 문제를 겨냥한 연금 개선안을 내놓았다. 특히 사민당은 누구나 월 849유로의 기본노령연금을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그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연금 혜택 확대에 소요되는 예산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확보할지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슈피겔 온라인’은 사민당의 연금 정책을 분석하면서 “정책을 좋은 뜻으로 만드는 것과 잘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라고 혹평했다. 하지만 현재 집권당인 기민련(CDU)과 자민당(FDP)의 연금 정책도 표심을 잡기에는 요원해 보인다. 두 정당이 벌써부터 2060년까지 연금 수령 연령을 69세로 올릴 것을 검토하는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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