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뮤지컬’에 김광석이 왜 없나
  • 양창희 인턴기자 ()
  • 승인 2013.04.1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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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문제로 이름·사진·노래 사용 못 해

‘죽은 김광석’이 뮤지컬로 부활했다. 올해에만 그의 노래로 만든 뮤지컬이 세 편이나 나온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날들> <디셈버: 끝나지 않은 노래> 등이다. 모두 김광석의 노래로 이야기를 엮은 이른바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과 <그날들>은 이미 막이 올랐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어쿠스틱 뮤지컬’이라는 설명처럼 잔잔한 소극장 공연이다. 지난해 대구에서 처음 공연했고 올해는 줄거리를 조금 바꿔 서울로 올라왔다. <그날들>은 느낌이 조금 다르다. 청와대 경호원과 대통령 딸이 등장하는 이야기에 김광석의 노래를 더했다. 1042석 규모의 대학로뮤지컬센터에서 열리는 대형 창작 뮤지컬이다.

또 다른 뮤지컬 <디셈버>는 12월에 만날 수 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장진 감독이 극작과 연출을 맡아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는 대작이다.

김광석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김광석 뮤지컬이 잇달아 제작된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현재 공연 중인 두 편의 뮤지컬 포스터에 김광석이 없다. 김광석의 사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김광석이라는 이름도 ‘김광석이 불렀던 노래들’이라는 문구로만 드러난다. <그날들>에는 고인이 작사·작곡한 노래가 통째로 빠져 있다. 김광석 공연에 김광석이 없는 셈이다.

왜 그럴까. 저작권 문제가 얽혀 있다. 김광석의 사진을 사용할 수 있는 초상권과 이름을 쓸 수 있는 성명권 그리고 그의 자작곡에 대한 권리는 모두 고인의 부인 서해순씨가 대표로 있는 ㈜위드삼삼뮤직이 갖고 있다. 위드삼삼뮤직은 이 권리를 <디셈버>에만 양도했다. 초상권·성명권·자작곡에 대한 편곡 허락을 받지 않은 <바람이 불어오는 곳>과 <그날들>에서는 자연히 김광석의 이름과 사진이 빠졌다.

ⓒ 위네트웍스 제공
제목 바꾸거나 자작곡 빼고 공연

<바람이 불어오는 곳>의 원래 제목은 <김광석,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었다. 고인의 고향인 대구의 ‘김광석길’에서 처음 공연할 때 붙인 제목이다. 당시 대구 공연의 포스터에는 김광석의 얼굴도 실려 있었다. 그런데 위드삼삼뮤직측에서 이 공연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위드삼삼뮤직은 내용증명을 보내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김광석의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했다고 항의했다. 퍼블리시티권은 유명인의 성명이나 초상을 사용할 권리를 의미한다. 즉, 티켓과 포스터에 김광석의 이름과 사진을 사용하지 말라는 요청이다. 이에 지난 3월15일부터 진행된 서울 공연에서는 제목이 바뀌었다. ‘김광석’ 세 글자를 뺀 것이다. 포스터에 있던 김광석 사진도 사라졌다.

<그날들>은 기획 단계부터 저작권 문제를 염두에 뒀다. 김광석의 노래를 원곡대로 소화하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과 달리 <그날들>에서는 곡을 뮤지컬에 맞게 바꾸는 편곡 작업이 필요했다. 저작권법에 따르면 노래를 편곡할 때는 원저작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원저작물의 내용을 함부로 바꿔 쓰지 못하게 하는 ‘동일성 유지권’ 조항 때문이다. <그날들>은 김광석의 자작곡을 아예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일어나> 등의 히트곡이 공연에 사용되지 않은 이유다.

<디셈버>는 사정이 다르다. 영화배급사 NEW와 서울뮤지컬단이 함께 제작하는 이 공연은 위드삼삼뮤직으로부터 각종 권리를 양도받았다. 상업 공연으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 김광석의 얼굴과 이름뿐 아니라 자작곡과 고인 생전의 무대 영상까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위드삼삼뮤직 관계자는 “(배급사 NEW의) 탄탄한 기획과 진정성 있는 접근에 신뢰가 갔다”며 “대기업 중심의 영화 시장에서 양질의 콘텐츠에 집중해 뛰어난 성과를 보여준 NEW가 김광석 노래로 가장 좋은 무대를 만들어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밝혔다.

김광석 노래의 저작권에는 해묵은 사연이 있다. 고인이 숨지기 3년 전인 1993년 김광석의 아버지는 김광석의 4개 앨범(김광석 다시 부르기 I·II, 김광석 3·4집)에 대해 음반사와 계약을 맺었다. 1996년 1월 김광석이 죽자 아버지는 이 앨범들에 대한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고인의 아내와 딸은 상속인으로서의 권리를 내세웠다. 양측은 1996년 김광석 아버지의 권리를 인정하되 아버지가 사망하면 딸에게 권리를 양도하기로 합의했다.

2004년 김광석의 아버지가 숨지면서 이 합의는 깨졌다. 합의 무효를 주장한 김광석의 어머니와 형은 소송을 제기했다. 마침내 대법원은 2008년 음반의 판권 등 모든 권리가 고인의 딸에게 있다고 판결했다. 다만 추모 공연 등에서는 딸의 허락을 받지 않고 노래를 사용할 수 있도록 조정이 이뤄졌다. 현재 이 저작권은 고인의 부인 서해순씨가 대표로 있는 위드삼삼뮤직에 있다.

저작권 양도받은 뮤지컬 12월 선봬

김광석은 1996년에 사망했다. 벌써 17년이나 흘렀다.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 시구처럼 사람들은 아직도 김광석을 붙잡고 있다. ‘김광석 뮤지컬’로 인해 저작권 문제가 또다시 거론되는 것도 그의 인기가 여전히 식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그는 왜 끊임없이 되살아날까. 박병성 <더 뮤지컬> 편집장은 김광석의 인기에 대해 “김광석이 대표하는 아날로그적 정서와 그의 남다른 죽음에 대한 향수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구·서울 공연 포스터와 포스터. ⓒ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다 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래서 김광석의 이름은 ‘값어치’가 남다르다. 대중문화계는 지속적으로 김광석의 이름을 다시 부른다. 실제로 김광석의 이름을 단 앨범은 그의 사후에 더 많이 나왔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두 장의 유작 라이브 앨범을 포함해 총 11장의 앨범이 새로 발매됐다. 한국 대중음악 공인 순위표인 가온차트에는 ‘김광석 BEST’ 앨범이 2013년 4월 둘째 주 현재 21위에 올라 있다. 정준영과 로이킴은 <슈퍼스타 K4>에서 <먼지가 되어>를 불렀고 ‘김광석 다시 부르기’ 공연은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김광석은 잘 팔리는 ‘스테디셀러’다.

김광석에 대한 수요는 끊임없이 새로운 공급을 낳는다. 올해만 해도 세 편의 뮤지컬이 나왔듯이, 김광석이 재창조되는 방식도 다양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인기가 살아 있는 한 저작권 문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저작권이 소멸됐을 때다. 현행 저작권법에 따르면 저작권은 저작자 사후 50년간 유지된다. 앞으로 33년 남았다. 그때까지도 김광석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이 우리에게 계속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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