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목마름으로 “연패여, 안녕”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3.04.24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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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에서 패장으로’ 김응용·김경문의 고뇌

초보 감독에게 흔히 하는 질문이 있다. “어떤 감독이 롤 모델이냐”는 것이다. 초보 감독은 다양한 감독의 이름을 댄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인물이 김응용 한화 감독과 김경문 NC 감독이다. 두 감독은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베테랑 사령탑이자 감독 통산 승수 1, 2위를 달리는 명장이다. 그러나 올 시즌은 어쩐 일인지 ‘패장’ 소리를 듣고 있다. 문제는 ‘패장’의 꼬리표가 당분간 붙어 있을 것 같다는 점이다.

4월17일 대전구장을 찾았다. 이날 한화는 NC와의 홈경기를 치를 예정이었다. 한화 선수들이 한창 훈련 중일 때 조용히 더그아웃에 나타난 김응용 감독은 기자를 보자 퉁명스럽게 물었다.

“첫 승 축하하려고 왔습니다.” 기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김 감독은 “1승이 뭐 대단한 거라고”라며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 연합뉴스
“여긴 무슨 일로 왔어?”

말이야 그렇지만, 김 감독에게 1승은 1000승만큼이나 값진 것이었다. 이유가 있다. 한화는 3월30일 시즌 개막전이던 사직 롯데전부터 내리 13연패했다. 2003년 롯데의 개막 후 12연패를 11년 만에 깨는 새로운 불명예 기록이다. 무엇보다 경기 내용이 좋지 않았다. 한화 투수는 마운드만 오르면 난타를 당했고, 야수진은 상상할 수도 없는 실책을 범했다.

항간에는 “만약 한화가 15연패까지 간다면 김 감독이 자진 사퇴 카드를 꺼내들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4월16일 대전 NC전에서 가까스로 한화가 시즌 첫 승을 거두며 소문은 소문으로 끝나고 말았다.

한화가 13연패를 하는 동안 김 감독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들에겐 “부담 갖지 말고 평소대로 플레이하라”고 주문했지만 정작 자신은 속으로 끙끙 앓았다. 김 감독의 스타일을 잘 아는 모 팀 코치는“해태(KIA의 전신), 삼성 등 강팀에만 있었던 김 감독 입장에선 연패가 무척 낯설었을 것”이라며 “특히나 2004년 이후 10년 만에 감독에 복귀한 터라 어떻게 연패에 대처해야 할지 난감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이다. 김 감독은 통산 1476승으로 역대 프로야구 사령탑 최다승 기록을 보유한 명장이다. 획득한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만 10개다. 하지만 한화처럼 약팀을 맡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삼성 사장을 맡으며 2선에 물러나 있었고, 2011년부터 2012년까지는 제주도에서 야인 생활을 했다. 연패 대처 능력은 고사하고, 현장 감각 상실을 우려한 야구 전문가가 많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시즌 첫 승을 따낸 건 김 감독으로서 반전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

김 감독은 경기가 끝나고 “기쁘다”는 짧은 소감을 밝히고서 “다음 경기를 잘 준비하겠다”며 감독실로 사라졌다. 일부 기자는 첫 승을 하고도 표정 변화가 없는 김 감독을 보며 “역시 냉혈한 승부사답다”는 감탄사를 터뜨렸다. 하지만 그날 코칭스태프가 모인 회식 자리에선 반대였다.

한 코치는 “감독님이 어찌나 기뻐하시던지, 평소 건강 때문에 마시지 않던 소주를 따르라고 하셨다”며 “감독님의 환한 표정에서 그간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셨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한화는 다음 날 치러진 NC와의 2차전에서도 승리를 거두며 2연승을 거뒀다. 김 감독은 2연승을 기록한 직후 “아직 한화는 4강팀이 되기엔 전력적으로 부족한 게 많다”며 “그러나 내년 시즌까지 반드시 한화를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팀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 연합뉴스
김경문, ‘국민 감독’에서 최약체 사령탑으로

김응용 감독이 통산 승수 1위 사령탑이라면 NC 김경문 감독은 현역 감독 중 통산 승수 2위다. 김 감독은 2011년 두산에서 중도 사퇴할 때까지 통산 512승을 기록했다.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는 끼지 못했어도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대표팀 감독으로 맹활약하며 한국 야구를 금메달로 이끌었다. 여기다 두산 시절 팀을 꼬박꼬박 포스트시즌으로 이끌면서 ‘명장’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신생 구단 NC를 진두지휘하며 승리의 기쁨보다는 패배의 쓴맛을 자주 보고 있다.

김 감독은 “두산에서 8년간 감독을 맡으면서도 개막 후 7연패는 당해본 경험이 없다”고 털어놓으면서 “신생 구단이니 만큼 승리보다 패가 많은 건 당연하다”고 멋쩍게 웃었다. 덧붙여 김 감독은 “내가 서두르면 팀 전체가 서두를 수밖에 없다. 결국 감독은 인내하는 자리”라며 “젊은 선수가 1군 경험을 많이 쌓을 수 있도록 비판보다 격려로 팀을 이끌 생각”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김 감독은 아무리 야수가 실책을 범해도 꾸짖는 법이 없다.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한 타자라도 등을 두들겨주며 “다음에 잘하면 된다”는 격려를 잊지 않는다. 팀이 연패에 빠졌을 때도 김 감독은 혹여나 젊은 선수가 위축될까 우려해 팀 미팅 등을 소집하지 않았다. 대신 언론을 통해 몇몇 선수를 칭찬하며 간접적으로 용기를 북돋아줬다.

덕분에 NC는 7연패의 사슬을 끊고 시즌 3주차에 3승3패의 호성적을 거뒀다. 그렇다고 김 감독이 마냥 인내심만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가능한 한 빨리 강팀을 만들려고 이런저런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4월18일 전격적으로 이뤄진 트레이드가 그 출발이다. 이날 NC 투수 송신영과 신재영을 넥센으로 보내고, 넥센 외야수 박정준과 내야수 지석훈·이창섭이 NC로 가는 2 대 3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김 감독은 트레이드 직후 “양 팀 모두에게 유익한 트레이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의문이 있었다. 김 감독은 전날 기자와 만났을 때 “지금 정도면 올 시즌 팀이 가야 할 방향을 정할 때”라며 “당장의 승리보다는 젊은 선수를 주축으로 팀을 키워나가는 게 옳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팀의 성적보다는 선수의 육성에 의미를 두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베테랑 박정준·지석훈·이창섭의 영입은 육성보다는 성적에 방점을 둔 일임에 틀림없다. NC 관계자는 “트레이드가 전력 강화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은 분명하나, 그보다는 두 가지 의미가 숨어 있다”고 밝혔다. “감독님께선 젊은 선수가 단순히 경험을 쌓는 선에서 멈추지 않고 ‘이기는 법’을 깨닫길 바란다. 그러려면 자주 이겨야 한다는 게 감독님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구단에 전력 보강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의미는 감독님 특유의 자존심이다. 두산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감독님은 지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승부사다. 특히나 납득할 수 없는 패배를 굉장히 아쉬워한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연패하는 동안 감독님의 표정에서 분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한화와 NC의 객관적 전력이 나머지 7개 팀보다 현저하게 떨어지는 상황에서 두 팀이 갑자기 상위권으로 치고 오르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야구계는 두 팀의 시즌 성적을 “잘해야 승률 3할5푼”으로 전망하고 있다.

과연 두 명장은 올 시즌이 끝나고 어떤 평가를 받을까. 많은 야구 전문가도 두 감독이 명장 타이틀에 집착하지 않고, 팀의 기초를 탄탄하게 다져주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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