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교수님의 노예였다”
  • 문정빈 인턴기자 ()
  • 승인 2013.05.0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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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대학교수 등쌀에 시달리다 짐 싸는 외국인 유학생들

청운의 꿈을 품고 한국에 온 외국인 유학생들이 도중에 떠나고 있다. 이들의 가슴속에는 한국 대학에서 받았던 나쁜 추억만 고스란히 남았다. 국내 대학의 고질적인 관행에 상처를 입고 떠나는 것이다.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비친 한국의 교수는 독재자였다.

석·박사 과정에서 지도교수는 논문 심사부터 연구비까지 학생에 관한 모든 권한을 갖고 있다. 교수가 논문 심사를 통과시키지 않는 한 졸업할 수가 없다. 교수가 부당한 일을 시킨다고 해서 반기를 들었다가는 졸업은 물 건너간다. 한국 학생들에게 이런 상황이니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교수는 왕이나 다름없다. 반대로 자신은 충성스런 신하일뿐이다.

ⓒ 일러스트 권오환
한번 찍히면 졸업은 물 건너간다

기자는 교수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외국인 유학생들을 수소문했다. 몇몇 유학생들에게서 충격적인 경험담을 들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자신들의 인적사항이 알려져 불이익을 당할까 봐 입을 닫았다. 기자가 몇 번이고 ‘취재원 보호’를 약속한 후에야 인터뷰에 응했다.

2011년 3월 한국에 유학 온 파키스탄 출신 A씨(37·남)의 첫마디는 “나는 교수의 노예였다”였다. A씨가 한국에 온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두 개의 통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A씨 명의의 통장 두 개 중 한 개는 교수가 가져갔다. 왜 그런가 했더니 A씨 몫으로 나온 연구비 일부를 챙기기 위해서였다. A씨에게 나온 연구비 150만원 중 50만원은 지도교수가 가져가고, A씨에게는 100만원만 입금됐다. 이는 석·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한국에 온 외국인 유학생들에게는 당연한 절차라고 한다.

이란 출신의 유학생 B씨(32·남)도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한국에 오기 전 지도교수는 B씨에게 매월 70만원의 연구비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두 아이가 딸린 B씨에게는 한 달 생활비로 쓰기에도 빠듯한 돈이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이 연구비마저도 B씨의 통장에 온전히 입금되지 않았다. 6개월 동안은 60만원이 입금됐고, 그 이후에는 50만원이 계좌를 거치지 않고 직접 봉투에 담겨 B씨의 손에 건네졌다.

지난해 8월 한국에 온 방글라데시 출신 C씨(32·남)는 황당한 일을 당했다. 한국에 들어온 지 4개월쯤 된 어느 날 지도교수가 부르더니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다른 학교를 찾아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한국에 들어오기 전 그 교수는 C씨에게 석사 과정을 책임지겠다고 했으나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을 바꿨다. 그와 함께 온 아내는 만삭이었다. 갈 곳을 찾지 못할 경우 다시 고국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C씨는 유학생들이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이 마치 ‘뽑기’와 같다고 했다. 같은 학교에서도 어떤 교수를 만나느냐에 따라 유학생의 한국 생활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잘 뽑히든 잘못 뽑히든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법보다 앞서는 지도교수의 명령

베트남 출신 유학생 D씨(27·여)는 2010년 국내 대학에 유학 왔지만 졸업하지 못한 채 3년을 허송세월했다. 논문도 제출했고 학점도 모두 취득했는데, 졸업이 되지 않았다. 지도교수가 논문을 통과시켜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D씨는 학교측에 행정 절차를 요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교수가 통과시켜주지 않는 한 졸업은 불가능하다는 답변뿐이었다. 결국 D씨는 1년 후 법적 절차를 거쳐 고국으로 돌아갔다.

D씨처럼 요건을 충분히 갖췄는데도 졸업하지 못하는 유학생이 많다고 한다. 사라 라이 주한유학생협의회(KISSA) 대리는 “처음부터 졸업 기준을 명시해야 한다. 2년 동안 논문이 하나도 없다면 졸업할 수 없다는 점을 미리 알려줘야 한다. 합당한 기준이 있다면 분쟁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유학생 중에는 교수들로부터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는 이들도 있다. 파키스탄 출신 유학생 A씨는 교수가 얼차려를 시키거나 머리를 때리는 일이 흔하다고 말했다. 2011년 3월에는 충남의 한 국립대 교수가 중국인 유학생을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 유학생은 학위를 받은 후 중국으로 돌아가서야 이런 사실을 공개할 수 있었다.

외국인 유학생들은 행정 절차부터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 학위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한 유학생은 “지금 여기서 받는 연구비로 생활하고 있는데, 중단되면 생활뿐만 아니라 학위도 받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대다수 유학생이 문서나 계약서를 갖추지 않고 한국에 들어온다. 이들은 “석사 과정을 책임지겠다”는 교수 말만 믿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 결과 연구비부터 연구 참여 기간까지 교수 마음대로 한 것이다.

주한유학생협의회 대리인 사라 라이 씨가 유학생들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서류 한 장 없이 오는 유학생도 문제

연구비는 교수에게 전적으로 권한이 주어지기 때문에 학교측은 잘 알지 못한다. 서울의 한 대학 국제교류처 팀장은 “교수가 프로젝트를 따면 연구비를 학생들에게 나눠줘서 수행한다. 그것은 교수 개인의 권한”이라고 말했다.

한 대학교수는 “연구비를 실제로 주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프로젝트를 따지 못하면 돈을 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유학생들은 연구 과정과 연구비 지급 등에 관해 구체적인 지침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경의 주한유학생지원협의회(KISSA) 회장은 “유학생 정책의 투명성이 필요하다. 연구비와 유학생 수 등이 한국 정부와 학생 모두에게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학생들은 부당한 처우에 숨죽인 채 오늘도 한국에서 분노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들은 몇 년 뒤 고국으로 돌아간다. 그들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로 기억될까. 이들에게 한국은 기댈 곳 없는 벼랑 끝은 아니었을까. 

 

외국인 유학생 얼마나 있나 


국내 외국인 유학생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2007년 5만6006명이던 것이 지난해엔 8만4711명으로 늘어났다. 중국인이 5만7798명으로 가장 많고, 몽골이 4952명으로 두 번째다. 그 다음은 베트남·일본·미국·우즈베키스탄 순이다.

한국 내 외국인 유학생은 미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비영어권 국가에서 왔다. 이들 중에는 한국어와 영어에 모두 서툴러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만큼 이들을 유학생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한국에 와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미리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서울 소재 한 대학 국제교류처 팀장은 “외국인에 대한 정책도 중요하지만, 한국에 온 뒤 언어적인 장벽도 문제다. 교수들뿐 아니라 한국 학생들과 소통이 잘 안 돼 오해가 생기는 일이 잦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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