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 품으면 ‘종북’ 몰리는 비이성적 사회가 문제”
  • 김진령·조철 기자 ()
  • 승인 2013.05.07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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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기획·제작한 정지영 감독

제한된 수의 관객을 위한 영화제에서 상영됐을 뿐인데, 국방부는 “상영 금지 가처분 신청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야당에서는 ‘과잉 대응’이라고 비판했고, 인터넷 포털에서는 관련 기사마다 ‘댓글 육박전’이 벌어졌다.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기획·제작 정지영, 감독 백승우)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화제가 되면서 사회적 논란거리로 부상했다. 이는 정지영 감독의 전작 <부러진 화살> <남영동1985>에서도 겪었던 일이다. 이번 작품은 전작과 달리 아직도 ‘천안함 폭침’과 관련된 고소·고발 건에 대한 법원의 재판이 진행 중인 ‘현재형’ 사건이다. 그만큼 휘발성이 강하다.

우리 사회의 민감한 부분을 짚어내는 이슈메이커가 돼버린 정지영 감독은 5월1일 베를린으로 출국했다. 출국 직전 그에게 이번 논란에 대해 물었다. 그는 처음 상영되자마자 논쟁거리가 된 것에 대해 “논란을 예상했지만 보지도 않고 욕하는 것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영화를 본 사람이 지금 몇 명인가? 국방부에서 ‘영화 상영을 자제했으면 한다’는 발표를 했는데, 영화를 안 보고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다.”

ⓒ 시사저널 최준필
‘진실 공방’ 다시 수면 위로 띄워

정 감독이 이 영화를 기획하고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1년이다. 기획을 직접 했지만 <남영동1985>와 겹쳐 감독은 후배(백승우)에게 맡겼다. 그는 “(백 감독이) 영화를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만들었다”고 평했다. 자신은 문제 제기를 하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자세를 가다듬고 봐야 할 묵직한 작품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영화를 보면 ‘왜 논란을 벌인 것이지?’ 하고 의아해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천안함 폭침이 가짜냐, 진짜냐’는 주장은 진작 다 나온 얘기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의문을 품으면 종북주의자로 몰리는 대한민국의 경직된 사회가 비이성적 사회가 아니냐는 질문”이라고 말했다. ‘문제 제기’ 자체를 좌우 대립이라는 측면에서 잣대를 들이대는 한국 사회가 진짜 문제라는 것이다. 그가 이 영화를 기획한 계기는 TV 토론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텔레비전 토론에서 어떤 사람이 ‘천안함의 정부 발표를 아직도 못 믿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종북주의자 아니냐’고 말하는데 상대 토론자가 아무 말도 안 하더라. 그걸 보면서 ‘우리 사회가 이렇게 경직돼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 발표를 언론에서 의심스럽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거 안 믿는다고 바로 빨갱이로 몰리는 게 심각한 것이다. 그게 문제의식의 출발점이다. 마침 그때 우연히 신상철씨를 만났다.”

신상철씨는 천안함 폭침과 관련한 정부 발표에 의문을 제기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천안함이 북한의 공격을 받았다는 정부 발표에 의혹을 제기했고, 이 때문에 군으로부터 명예훼손 고소를 당했다. 이 건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신씨가 의문 제기를 통해 군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을 입증하려면 재판 과정에서 그가 제기한 ‘의심’이 맞는지 틀린지를 따져야 한다. 재판 과정에 흥미가 생겼다. 그런데 그게 부지하세월이다. 게다가 신씨는 암 투병 중이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의심하는 부분도 따져보고 우리 사회가 경직된 사회로 있어도 되는지 짚어보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

<천안함 프로젝트>가 진보 쪽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국민의 의문점을 해소시켜줘야 하는 정부의 의무를 환기시키고 정부와 국민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는 것이다.

그는 “정부의 발표에 대해 한 점의 의문도 허락하지 않는 것은 폐쇄되고 경직된 사회”라는 말을 반복했다. 국가가 카테고리를 정해놓고 모든 국민이 그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변화나 발전이 필요 없다’는 말과 동의어라는 것이다.

“영화 본 뒤 빨갱이인지 판단해달라”

<천안함 프로젝트>는 배우들이 공판 장면을 재현하는 연기 장면이 삽입된 다큐멘터리다. 물론 재현 부분은 공판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 천안함 폭침과 관련해 정부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는 부분은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대중은 이 영화를 언제 직접 보고 판단할 수 있을까.

정 감독은 이 영화의 개봉 시기에 대해 “절차를 밟아야 하니까, 우리에게 당장 개봉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라며 말을 아꼈다. 재미있는 점은 댓글 육박전이 치열해질수록, 국방부나 보수단체의 거부감 표명 의사가 진해질수록, 이 영화의 인지도가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사전 마케팅이 되고 있는 셈이다.

“영화를 보지도 않고 인터넷에 ‘정지영 빨갱이’ ‘종북주의자’라고 도배를 하는데, 이해가 안 간다. 부디 보고 말해달라”고 말하는 정 감독은 제작자로서 내심 이 논란이 싫지만은 않은 듯하다. “이 상황을 즐길 수는 없겠지만 겁먹고 있지는 않다. 죄를 지은 게 있나. 항상 그런 분들은 그런 것이니까.”

멜로영화로 출발해 스릴러물까지 다양한 장르의 상업 영화를 만들었던 정 감독은 지난해 <부러진 화살>을 발표한 이후, <남영동1985> <천안함 프로젝트>까지 사회적 이슈가 되는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안 만들고 있어서 내가 만들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그런 거 그만하라’고 한다. 나도 이런 데 매달리고 싶지 않다. 다만 많은 사람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문제를 수면 아래 감춰놓은 채 밖으로 꺼내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 연합뉴스
정지영 감독이 출국해서, 남은 논란은 백 감독이 떠안아야 할 것 같다.

내게 연출을 맡길 때부터 그러라고 한 것 아닌가.(웃음)

첫 상영이 끝나고 항의한 관객이 있었다.

강한 어조로 네이버 평점이 1점대인데, 어떤 의미인지 아느냐고 그러더라. 소통을 이야기한다고 하면서 혼란과 갈등만 야기하는 것이 아니냐고도 했다. 이에 대해 나는 1점을 주시든 10점을 주시든 그 자체가 소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방적인 주장을 담았다는데.

다큐멘터리는 어떻게 한다고 해도 감독의 시선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국방부의 목소리를 담지 않은 것도 아니고, 모든 언론이 이미 국방부의 이야기를 했다고 본다. 그래서 반대쪽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자 했던 것이다.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봤을 때 이 사회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가 초점이다. 우리 사회에 대해 자성해보자는 것이다. 이 영화는 범인을 찾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의 결론은 우리 사회가 소통 부재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개봉하면 논란이 더 커질 텐데.

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일 뿐이지, 사회에 어떤 파장이 미칠지 분석할 수는 없다. 현 사회를 살아가면서 느끼는 경직성에 대해 표현하고 싶었다. 북한만 끼어들면 경직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해 표현했을 뿐이다.

천안함 사건에 특히 관심이 많았나?

우리 근해에서 군함이 반으로 갈라진 사건,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사건인데, 그 결론이 한 달 반 만에 나오나 하는 기본적인 의문이 있었다. 이번 연출을 맡으면서 사건을 파보기 시작했다. 충분히 설명되기보다 어느 한 쪽이 발표해놓고 그 외의 모든 이야기를 종북 등의 프레임으로 몰아가는 데 불편함이 있었다.

개봉에 대해 정지영 감독은 여유로운 입장이다.

개봉과 배급은 회사가 알아서 할 일이다. 꼭 개봉돼 많은 사람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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