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지 않은 세월이 있기나 했나”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3.05.21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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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광주의 여성들’ 소재 소설 낸 공선옥 작가

33년이 흘렀다. 아픔이 가셨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1980년 5월 광주가 남긴 상처는 아물지 않았고, 광주를 짓밟은 역사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2013년 봄 공선옥 작가가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창비 펴냄)를 세상에 내놓은 이유다.

5월15일 서울 영등포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만난 공 작가는 “끊임없이 시대의 의문에 질문해야 하는 것이 교양인데, 끊임없이 덮어버리려는 권력의 시도에 굴복하듯 가까운 과거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개탄했다.

“2010년 5·18 기념식 때 추모곡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못 틀게 하려고 <방아 타령>을 틀었다. 5·18을 웃음거리로 만들려는 시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현 정부 들어서는 광주민주화운동 공식 추모곡 제작을 위해 4800만원이라는 예산을 받았다. 기어이 그동안 추모곡으로 불러온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에서도 광주민주화운동을 삭제하려는 시도가 있어왔다. 외국인들은 왜 한국이 민주주의 역사를 부정하려 드는지 의아해한다.”

얼마 전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에 ‘홍어 말리는 중’이라며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 사진이 올랐다. 이에 대해 공 작가는 “5·18을 부정하고 민주화 세력을 억누르려는 일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 시사저널 최준필
광주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은 운명

공 작가는 오래전부터 광주 이야기를 쓰고 싶어 했다. 1980년 3월 전남 곡성에서 중학교를 다녔던 시골 여학생 공선옥이 전남대 부속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광주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는 지금도 광주 시민으로 살고 있다. 그는 광주에서 한 발짝도 떠나지 못했다. 기어코 광주 이야기를 해야 했다.

소외된 주변부의 삶에서 눈을 떼지 않고 함께하며 이야기로 그들을 끌어안았던 공 작가의 역량은 이번 작품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이 소설에서는 미친 사람들과 미치지 않은 사람들, 정상과 비정상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한다. 비정상성을 띠고 있는 인물들은 약한 사람들, 고통받고 소외된 사람들, 미치지 않고서는 이 세상을 견뎌낼 수 없는 사람들,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미쳐야 했던 사람들이다.

말을 할 수 없어 울음이나 웃음으로만 자신을 표현했던 정애의 엄마, 삶의 바닥에 몰려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게 된 정애의 아버지, 군인들에게 끌려가 무참히 짓밟힌 후 소리와 노래로만 아픈 세상을 맴돌게 된 정애, 가공할 폭력에 노출된 후 스스로를 놓아버린 묘자의 남편까지. 그들은 모두 착하고 고운 사람들이었다.

그 반대급부에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인물들이 있다. 쓰러진 자를 더욱 세게 밟는 사람들, 미친 세상의 구호에 맞춰 목소리를 드높이는 사람들. 공 작가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는 사람들은 다 미친 거다. 미친 세상에서 미친 사람만이 미치지 않은 것”이라며 미친 자들을 보듬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작가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 많으나 얘기할 사람이 없었던 내 어머니는 콩밭을 매다가 누군가와 하염없이 이야기를 하곤 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 마치 옆에 사람이 있는 것처럼 때로는 웃기까지 하면서 얘기를 하다가 한숨도 쉬다가 그랬다.”

공 작가가 광주에서 얻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듯 어머니도 말 못할 어린 시절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1948년, 열 살이었던 어머니가 지리산이 가까운 전남 곡성에서 살 때였다.

어머니의 아버지(공 작가의 외할아버지)가 ‘산사람(빨치산)’으로 몰려 토벌대에게 끔찍하게 죽임을 당했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을 연상시키는 일이다. 공 작가는 <지슬>을 보면서 외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산사람에게 감자 몇 톨을 주어도 부역한 것으로 간주돼 처형당하던 시절이었다.

4·3에서 5·18, 용산 참사까지 반복되는 ‘폭력의 역사’

이 사실을 무덤덤하게 털어놓은 공 작가는 왜 이 소설을 썼는지 알겠느냐고 기자에게 거꾸로 물었다. 국가의 폭력이 4·3에 이어 5·18로 이어지고, 현재도 모양만 바꾼 채 자행되고 있음을 말하려 한 것이다. 이를 통틀어 ‘학살의 근현대사’ ‘킬링필드의 역사’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그는 “국민이 이 역사에 대해 잊어버려야 좋을 세력이 누구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떳떳하지 못한 권력은 죗값을 치르지도 않았고 반성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 권력이 떵떵거리니 폭력의 시대가 된 것이다. 폭력은 확대 재생산되면서 학교 폭력, 군대 폭력, 자본에 의한 폭력 등으로 사회 곳곳에 퍼졌다. 폭력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한 사회다. 수평 구조를 만드는 민주주의가 이 사회 어디에 실현돼 있나? 사회 전체가 수직 구조로 보인다. 진짜 민주주의가 뭔지 제대로 교육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소설은 그저 어지러운 시대에 살다간 불우한 운명들이 있었음을 환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소설은 벗어날 수 없는 사회 구조의 잔혹함을 들춰낸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 한때의 일이 아니며 개인의 삶에 유전돼 끊임없이 반복되는 역사다.

지금도 국가 폭력, 집단의 광기에 쓰러져가는 삶이 수없이 많다. 소설 속 주인공은 한 개인이자 우리 모두인 것이다. 그 때문에 문학이 역사를 다시 호출하는 것, 지워진 기억을 복원해내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공 작가는 국가 폭력이 무력한 개인의 삶을 얼마만큼 비참하게 만드는지, 게다가 여성이라면 얼마나 더 다층적인 폭력에 시달릴 수밖에 없게 되는지 숨 가쁘게 그려냈다.

이 소설은 실제 이야기에 바탕을 뒀다. 소설에 나오는 사건들은 작가가 다 보고 겪었던 일들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실에 널려 있다고도 했다. 공 작가는 “글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 현실은 더 끔찍해 소설에 다 담을 수도 없어 때로는 환상으로 처리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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