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눈빛이 아직도 두려운가
  • 양정대│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3.06.0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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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 무더기 발의된 ‘전두환법’, 이번엔 통과될까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이전과는 달라지지 않았나요? 새누리당도 마냥 모른 척할 수만은 없을 겁니다. 솔직히 제 입장에선 여론이 우리 당을 거세게 흔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정당이 표를 먹고산다고 해도 150명 넘는 의원들이 한 몸이 돼 전두환 비호 세력처럼 행동해선 안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해도 국회 본회의 통과는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

새누리당의 한 소장파 의원이 이른바 ‘전두환법’의 6월 임시국회 통과 가능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한 얘기다. 사회적 인식이 달라졌고 여론이 새누리당을 압박해주길 바란다고 했지만, 그는 여전히 본회의 통과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좀 더 설명을 해달라고 했지만, 그는 손사래를 치며 더는 얘기하지 않았다. 영남 출신인 이 의원은 새누리당 내 개혁·쇄신파로 꼽히는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소속이다.

1600억원이 넘는 추징금을 내지 않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강제 노역을 시킬 수 있게 하는 것은 물론 친인척 등으로부터 대신 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이른바 ‘전두환법’이 국회에 연이어 제출되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두환 미납 방지법’이다. 최근 5·18 광주민주화운동 33주기를 전후로 북한군 개입설 등 황당무계한 주장이 나오면서 사회적 공분이 확산된 데다 오는 10월이면 추징 시효가 만료된다는 점 때문에 정치권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5월21일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남덕우 전 국무총리의 빈소에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시효 연장에 노역형까지…‘전두환법’ 봇물

현재까지 전두환 전 대통령은 추징금 2205억원 중 1672억원, 노태우 전 대통령은 2629억원 중 231억원을 미납하고 있다. 특히 전 전 대통령의 경우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본인 소유의 전 재산은 29만원밖에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언으로 국민들을 실소케 한 바 있다.

민주당 우원식 의원은 지난 4월30일 전 전 대통령의 범죄 수익에 대한 추징 시효가 오는 10월로 다가옴에 따라 시효를 연장하는 내용의 ‘범죄 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현재 형법상 3년에 불과한 몰수 및 추징 시효를 10년으로 연장하는 것이 골자다. 범죄 수익을 3년만 잘 감춰두면 법으로는 추징할 수 없었던 허점을 보완하겠다는 취지다. 우 의원은 “전 전 대통령은 편법과 탈법으로 자신의 재산을 숨긴 채 호화 골프를 치는가 하면 수천만 원의 육사발전기금을 내는 등 국민을 철저히 우롱해왔다”면서 “‘전두환법’은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차원에서 경제 민주화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 전 대통령이 끝까지 추징금을 안 내고 버틸 경우 노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한 법안도 발의됐다. 최재성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개정안이다. 개정안은 추징이 확정된 뒤 3년이 경과하면 무조건 검사의 청구에 따라 재산 압류 등 강제 처분하도록 했고, 추징 대상자의 재산이 불법 재산임을 알았을 것이라는 정황이 명확하면 상속받은 자녀에게서도 추징이 가능하게 했다. 특히 이런 과정을 거쳐서도 미납 추징금이 발생하면 노역장 유치 또는 감치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명시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벌금형을 받았을 경우 벌금을 납입하지 않으면 1일 이상 3년 이하, 과료를 납입하지 않으면 1일 이상 30일 미만 노역장에서 작업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추징금의 경우에는 관련 조항이 없는 상황이다.

국회에는 결의안도 제출돼 있다. 최민희 민주당 의원 등 야당 의원 25명은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을 집행할 전담팀을 꾸렸다고 밝힌 지난 4월24일 ‘전두환 전 대통령 은닉 재산 진상 조사 및 추징금 징수 촉구 결의안’을 제출했다. 이들 법안이 6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을 징수할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 문제는 해당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까지 올라가서 통과될 수 있느냐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유사한 법안이 제출된 적은 있었지만, 대부분 본격적인 논의조차 진행된 적이 없었다. 

우원식 민주당 을지키기 경제민주화추진특위 위원장(맨 왼쪽)이 5월24일 열린 확대고위정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두환법, 국회에서 매번 흐지부지”

유인태 민주당 의원은 그간 ‘전두환법’이 처리되지 못한 상황에 대해 “매번 마법처럼 흐지부지되더라”며 혀를 찼다. 사실 최재성 의원이 이번에 노역형까지 가능토록 개정하겠다고 낸 법안은 16대와 17대에도 한 차례씩 발의된 적이 있다. 추징 시효를 연장하자는 주장 역시 16대 국회 때부터 줄곧 나왔었다. 19대 국회 들어서도 이미 전직 대통령이 금고 이상의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을 경우 경호나 지원을 중단하도록 하는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17·18대에 이어 다시 발의됐다. 특정 고위 공직자에 대한 추징 특례법 개정안, 부패 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등도 국회 사무처에 제출된 상태다.

하지만 실제로 법안의 세부 내용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이 과정에서 사회적 여론이 형성된 적은 드물다. 법안이 제출은 됐지만 해당 상임위에서 정식 안건으로 상정된 뒤 본격적으로 논의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국회사무처에서 법안 발의 업무를 담당하는 관계자는 “‘전두환법’의 경우 항상 제출할 때는 시끌벅적하다가도 금방 조용해지곤 했다”면서 “이번에는 다를지 나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이번에는 정말 상황이 달라질까. 적어도 국회 내부로만 눈을 돌려보면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많다. 우선 국회 과반 의석을 점하고 있는 새누리당에선 특별한 움직임이 없는 상태다. 새누리당의 태생적 한계와 연관 짓기도 한다. 전 전 대통령의 여당인 민정당의 주축은 군부 출신과 TK(대구·경북) 인맥이었는데, 이들이 이후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을 거쳐 지금의 새누리당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원내대표실 관계자는 “우리로선 열심히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도 “새누리당이 이렇다 할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라 해당 상임위에서부터 논의가 제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법안 자체의 모순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소급 입법’ 논란이 그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의 논리는 비교적 명쾌하다. 최재성 의원은 “추징 시효가 만료된 후 새로운 법을 만들어서 이를 소급해 추징하겠다고 하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전 전 대통령의 경우 현재 추징을 해야 될 국가적 의무가 있는 현재 진행형 사안이기 때문에 소급 적용이라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민변 소속 박주민 변호사는 “소급 입법이니 하는 건 사실 궁색한 주장일 뿐이고, 실은 정치권이 TK 지역과 보수층에 공고화돼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에 대한 향수를 의식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6월 임시국회가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새 원내 지도부의 첫 대결장이라는 점이 ‘전두환법’ 처리 여부의 변수가 될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법사위 소속인 한 민주당 의원은 “새누리당이 사회적 관심이 큰 현안들에 대해 해당 상임위에선 합의하는 모양새로 생색은 내고 정작 법사위에서는 ‘법리’ 운운하며 발목을 잡곤 하는데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꽤 있어 보인다”면서 “하지만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새누리당의 새 원내 지도부가 상임위와 법사위에서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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