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대로 휘두르는 ‘갑의 횡포’
  • 이규대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3.06.0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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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1위 SK텔레콤, 차감·물량 몰아주기로 판매점 압박

사회 곳곳에서 부당한 갑을 관계가 주목받으면서 통신 시장에서의 ‘갑의 횡포’가 핫이슈로 떠올랐다. 대기업들의 과점 구도인 통신 시장에서 이른바 ‘갑’과 ‘을’이 부당한 계약 관계를 형성해왔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관행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최근 각 통신사와의 거래 도중 자신이 겪은 불공정 사례를 토로하는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통신 3사 중 KT와 LG유플러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점주들이 단체를 결성해 활동에 나섰다.

고가 요금제 강요에 ‘개수 그레이드’까지

이런 가운데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던 업계 1위 SK텔레콤 역시 ‘슈퍼 갑’의 지위를 적극 활용해온 정황이 드러났다.

<시사저널>이 만난 업계 관계자들은 “높은 점유율을 등에 업은 SK텔레콤이 더 했으면 더 했지 결코 못하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0년간 휴대전화 판매점을 운영해온 한 업자는 “통신사의 횡포는 업계 내 경쟁력과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SK텔레콤은 과거 ‘황금 주파수’를 등에 업었던 2G망 시절이 정점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심했다. 요즘은 그만큼은 아니지만 업계 점유율 1위 지위를 바탕으로 여전히 불합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악명 높은 ‘차감’ 정책이 대표적이다. 휴대전화 유통 단계의 말단에 있는 판매점들은 ‘통신사-대형 도매업체-대리점’을 거쳐 공급받은 단말기를 팔아 수익을 얻는다. 판매한 단말기 1대당 통신사가 책정한 위탁 수수료(리베이트)를 받는 식이다. 그런데 여기에 온갖 부가 조건이 붙는다. 이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약정된 리베이트에서 일정 금액을 깎아나가는 식이다. 많은 판매점주들은 SK텔레콤 대리점이 부과하는 부가 조건이 가혹하리만큼 부당한 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선 소비자가 어떤 요금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일정 금액이 차감된다. 사실 단말기 판매에 따른 리베이트로 얻는 수입은 소비자가 선택한 통신 요금제와는 무관하다. 반면 통신사 및 대리점들로서는 소비자가 고가의 요금제를 선택할수록 이익이 커진다.

이 때문에 저가 요금제를 유치할 경우 불이익을 주는 정책을 판매점에 적용한다. 수도권의 박 아무개 판매점주는 “5월 초의 경우 소비자가 중간 정도의 요금제를 선택하면 3만원, 저가 요금제를 선택하면 11만원씩을 차감당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수입을 높이기 위해 판매점 입장에서는 고객에게 고가 요금제를 권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명목상으로만 비싼 요금제에 가입시킨 뒤 3개월 후 요금제 의무 유지 기간이 끝날 때까지 차액을 고객에게 현금으로 환급(Payback)하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그 편이 차감당하는 것보다는 손해가 적기 때문이다.

휴대전화와 무관한 상품 판매 강제도

박씨는 “요금제는 판매점 수익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런데 단순히 유통 구조의 맨 아래에 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수입을 차감당하고 있다. 남양유업의 ‘밀어내기’와 다를 게 무엇인가. 소비자들도 자신이 원하는 요금제를 선택할 권리를 일정 부분 제약받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매달 일정량의 판매 목표가 강제로 할당되기도 한다. 거기에 미달하면 차감액이 부과된다. ‘개수 그레이드’라고 불리는 방식이다. 인천에서 판매점을 운영하는 김 아무개씨(36)는 한 달에 20대 이상을 팔아야 대리점의 차감을 면한다. 그런데 차감 방식이 기묘하다. 한 달 판매 건수가 20대에 미달하는 경우, 판매한 단말기 1건당 2만원을 차감한다. 아깝게 1대가 모자라 19대를 팔았다면 38만원, 10대만 팔았다면 20만원을 내야 하는 것이다. 정해진 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오히려 많이 팔수록 많은 액수를 차감당하는 이상한 구조다. 이에 대해 김씨는 “목표에 많이 미달하면 리베이트 수익 자체가 적어지고, 목표에 조금 미달하면 막대한 차감액이 발생한다.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목표치를 채우란 얘기다. 업주들은 지인을 동원해서라도 매달 목표치를 맞출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컬러링 등 부가 서비스 유치에도 차감 정책이 적용된다. 휴대전화 판매와는 무관한 상품 판매를 할당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할 때는 벌금을 매기기도 했다. SK텔레콤의 경우 계열사 SK브로드밴드의 인터넷 상품, 신용카드 발급 등에 월 목표치를 정해두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1건당 수십만 원 상당의 벌금을 부과했다고 한다. 소비자가 3개월 이전에 더 저렴한 요금제로 변경하거나, 일정 기간 내에 타사로 번호 이동을 하는 경우에도 판매자에게 수십만 원 상당의 차감을 적용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로 인한 피해는 상당 부분 소비자의 몫이다. 자신이 원하는 요금제를 선택하고 중도에 변경하는 등 통신 서비스를 선택하는 폭이 크게 제한된다. 판매점으로서는 ‘차감’이 없는 비싼 요금제를 적극 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애초 원하지 않거나 불필요할 서비스를 판매자 권유에 의해 추가로 구매하게 되는 사례도 많다.

차감 정책의 구체적인 방식은 본사의 방침, 각 대리점의 사정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고 한다. 숫제 차감을 통한 수익이 대리점의 부수입원 중 하나라는 말을 하는 판매점주도 있다. 그 과정에서 일부 대리점 영업사원들은 이른바 ‘갑질’을 하기도 한다. 한 판매업자의 말이다. “영업사원은 자기가 관리하는 판매점들의 실적에 따라 이득을 본다. 이들이 정책을 대준다는 명목으로 횡포를 부리는 사례가 있다. 영업사원들이 ‘차감’이나 ‘거래 단절’을 내세우며 판매점의 실적을 직접 압박하는 것이다.”

대리점 위에는 또 다른 ‘슈퍼 갑’이 있다. 대기업 통신사다. 많은 수의 대리점 역시 정해진 기간 내에 일정 수준의 고객을 유치할 것을 요구받는다. 실적이 저조한 대리점은 단말기 공급을 제한받는 등의 불이익을 받는다고 한다.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실적이 저조한 대리점은 조금씩 양을 줄여가든 단번에 양을 줄이든 타격을 입는다. 단말기 유통을 사실상 통신사가 독점하니까 아무런 말도 못 하는 상황이다. 물건을 공급받지 못해서 망한 사람을 주변에서 여럿 봤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통신사-대리점-판매점이 서로 갑을 관계로 얽히면서 아래쪽으로 실적을 밀어내기 하고 있는 셈이다. 요즘 비난받고 있는 남양유업의 밀어내기와 다를 게 없다.

서울 종로구의 SK텔레콤 대리점에 고객이 들어가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SKT “본사 정책과는 무관” 해명

SK텔레콤은 모든 것이 대리점과 판매점 사이에서 발생한 것일 뿐 본사 정책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통신사는 판매점과 직접적인 계약 관계가 없어 정책을 낼 수도 없다. 차감 정책이라고 알려진 것도 사실과 다르다. 제공되는 인센티브에 차별을 두는 개념인데 오해가 생긴 것 같다. 그럼에도 자꾸 문제가 되니 5월 중순쯤 그런 식으로 영업하지 말라는 지침을 각 대리점에 내렸다”고 밝혔다. 실제로 5월 중순 무렵 남양유업의 밀어내기 관행이 문제가 된 직후, 각 판매점에 전파되는 SK텔레콤의 정책 관련 문서에서는 차감 조항이 일제히 사라졌다.

업계 관계자들은 SK텔레콤의 주장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시장의 ‘슈퍼 갑’으로서 막대한 영향력을 가져온 상황을 고려하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피라미드형 유통 구조의 정점에 있는 통신사는 자사의 이익 창출에 가장 부합하는 판매 정책을 수립해 일괄적으로 하달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업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본사에서 일차적으로 조율을 한다. 통신사에서 정책을 내리면 대형 도매점을 거쳐 대리점-판매점 순으로 내려가는 형태다. 정책은 각 단말기의 조건별 판매액을 모두 적시해두었을 정도로 구체적이며 상세하다. 이 정책은 한 달 안에 수십 차례 이상 변경될 만큼 역동적으로 움직인다”고 말했다.

사실상 단말기 유통을 전담하는 통신사가 ‘물량 몰아주기’로 시장 구조를 어지럽힌다는 말도 여러 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SK텔레콤이 직영 대리점을 통해 단말기 제조사의 보조금 및 자사 보조금을 대대적으로 쏟아부어 인기 단말기를 대량 판매한다는 것이다. 한 판매점주는 “겉으로는 방송통신위원회의 규제를 지키는 듯하지만, 온라인 등에서 편법 경로로 판매에 나선다는 것이 업계에서는 정설로 굳어져 있다. 많게는 주말 동안 1만대가 넘는 수량이 나가는 것으로 안다. 불법적인 보조금을 바탕으로 박리다매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통신사는 막대한 통신요금 수익을 거둘 수 있지만, 단말기 시장의 경우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는 일반 판매자들이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SK텔레콤 관계자는 “전체 시장에서 본사가 직영하는 비율은 10%에 불과하다.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밝혔다.


KT·LG유플러스도 다를 바 없다 

SK텔레콤을 비롯한 대기업 통신사는 휴대전화 유통 구조의 정점에 서 있다. 단순히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각 제조사로부터 단말기를 납품받아 유통하는 과정까지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 이 때문에 통신 시장에서의 유통은 단순히 제품이 소비자에게 공급되는 루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대기업 통신사가 ‘슈퍼 갑’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업계 관계자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통신 3사 모두에서 공통된 관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차감 정책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불법적인 ‘물량 몰아주기’ 직영 판매 역시 통신 3사의 번호 이동 경쟁에 동원된 지 오래인 수법이라고 한다.

KT나 LG유플러스의 경우 ‘갑의 횡포’를 호소하는 이들의 움직임이 본격화된 상황이다. 5월21일 LG유플러스의 대리점주 7명은 7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본사가 판매 실적을 강요했으며 이를 지키지 못하자 결국 대리점 계약까지 해지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KT 갑의 횡포 피해자 모임’ 역시 5월22일 ‘중소기업·상인·대리점·직원 피해 사례’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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