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안녕합니까
  • 김재태 편집위원 ()
  • 승인 2013.06.12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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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더불어 찬란했던 5월이 짧은 기억을 남기고 지나갔습니다. 그렇게 기억 속에서 햇살 가득한 5월은 눈부시지만, 역사 속의 5월은 어둡습니다. 오래된 체증처럼 무겁습니다. 5·16 군사 쿠데타, 5·18 광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 한국 현대사의 아픔들이 5월의 씨줄과 날줄을 어지럽게 휘감고 있습니다. 그래서 5월은 그 거대한 격랑에 휩싸였던 이들 모두에게 아물지 않는 시간의 상처이기도 합니다.

가만히 붙들어 안고 견디기에도 버거운 그 상처들의 고통은 아직 끝날 줄 모릅니다. 함부로 들춰내 날카로운 손톱으로 다시 긁어댑니다. 동시대를 살았던 모두의 상처임에도 마치 자신들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 마구 흔들어 덧을 냅니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 북한군이 침투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말들을 공공연한 자리에서 내뱉으며, 그렇지 않아도 아물기 어려운 상처를 할큅니다. 그리고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세상은 조용합니다.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 없이 어물쩍 넘어갑니다.

우리 현대사에 그토록 깊은 상처를 만들어낸 전직 대통령이라는 인물은 또 어떻습니까. 추징금 낼 돈이 없다면서도 철통같은 경호까지 받으며 여전히 호의호식합니다. 그의 아들들은 엄청난 자산가로 변신해 떵떵거리며 삽니다(14쪽 커버스토리 참조). 아버지가 넘겨준 비자금으로 재산을 불린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져도 아랑곳 않습니다. 아버지가 아니라 외조부에게 받은 돈인데 무슨 소리냐고 되레 큰소리를 칩니다. 최근에는 큰아들이 해외 조세 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이 회사 명의로 개설한 해외 은행 계좌에 돈을 관리해온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 역시 실체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국회에서는 1670억원에 이르는 미납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는 그 전직 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한 이른바 ‘전두환법’이 무더기로 발의되어 있지만, 법안이 통과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아무리 심증이 확실해도 물증이 없으면 어떤 죄도 물을 수 없는 엄정한 법치주의 아래에서 이 모든 일은 낯설지 않습니다. 심지어 친일파 자손이 친일의 대가로 얻은 조상의 재산을 되찾겠다고 소송해도 법원은 그 후손의 손을 들어주는 판입니다. 정말 법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니, 응답 없는 심증에 지쳐 무기력증만 커갈 따름입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보이지 않게 파고드는 ‘냉소주의’ 혹은 ‘패배 의식’이라는 병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고 맙니다. ‘버티면 이긴다’는 정

신으로 법의 맹점을 멋대로 유린하는 악질 범죄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활보하는 사회의 업보라고 하기엔 너무나 가혹하고 억울하지만 세상은 또 그렇게 흘러갈 뿐입니다. 사람들은 아픈데, 사회는 평온한 나날이 계속됩니다.

5월이 물러난 자리에 지금 6월의 햇빛이 눈부십니다. 남겨진 아픔들은 그대로인데, 세상은 천연덕스레 환한 얼굴입니다. 평범한 사람들만 자꾸 불쌍해지는 이 세상에서 청년들은 또다시 ‘아프니까 청춘’으로 살고, 어른들은 ‘천 번을 흔들리며’ 꾸역꾸역 나아갈 것입니다. 이 고단한 ‘아픔 불감증’ 시대가 언제쯤이나 끝날 수 있을지, 6월의 햇빛이 오히려 슬퍼지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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