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의 항변 “왜 날 갖고 그래”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3.06.1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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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 부인, 탄원서 제출…연이은 <시사저널> 단독 보도 후 파문 확산

230억원의 추징금을 미납하고 있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차명 재산이 속속 드러나면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시사저널>의 연이은 특종 보도가 발단이 됐다. 본지는 6월4일자(커버스토리 ‘노태우의 숨겨둔 재산 찾았다’)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의 차명 부동산 2건의 실체를 보도했고, 6월9일 인터넷판에 노 전 대통령 측근 명의로 돼 있는 30억원대 차명계좌 의혹(‘노태우 측근 ‘30억 차명계좌’ 의혹’)을 잇달아 단독 보도했다. 본지 보도 후 연합뉴스 등 타 언론도 관련자 인터뷰 등을 통해 후속 보도를 쏟아내며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시사저널>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추징금 미납과 재산 숨기기 행태가 사회 정의와 국민들의 보편적 정서에 반하는 일이라 보고 이들이 숨겨둔 재산을 추적해왔고, 이를 지면을 통해 꾸준히 보도해왔다. 특히 전 전 대통령에 비해 상대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았던 노 전 대통령의 경우, 지난해 6월 전 사돈인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에 대한 검찰 진정 이후, 집중적으로 숨겨둔 재산을 추적했다. 또 검찰의 추징금(추심금) 집행 과정의 문제점, 노 전 대통령 형제간 재산 다툼 등을 집중 취재했다. 이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숨겨진 일부 재산을 찾아냈다.

<시사저널>이 단독 보도한 노 전 대통령 측근의 30억원대 차명계좌 의혹은 냉동창고업체인 오로라씨에스(옛 미락냉장)에 대한 2012년 초 국세청의 세무조사 과정에서 불거졌다. 이 업체는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120억원 중 일부를 투입해 동생인 재우씨가 설립한 회사다.

230억원 미납 추징금을 두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는 3인방. 왼쪽부터 노재우·노태우·신명수 씨. 아래 작은 사진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숨은 재산과 관련한 본지 단독 보도. ⓒ 연합뉴스·시사저널 임준선
측근 차명계좌, 연희동 자택 인근에 집중

본지가 입수했던 당시 오로라씨에스의 세무조사 관련 자료에는 노 전 대통령의 운전기사 정 아무개씨의 ‘차명계좌 추정 자료’가 있었다. 정씨의 금융기관 계좌번호와 (이자) 지급 시작·종료일, 해당 계좌의 원금 추정액 등이 상세히 기록된 자료다.

이에 대해 오로라씨에스측 관계자는 6월2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세무조사와 관련해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일부 직원들의 법인 차명계좌가 나와 법인 계좌인 점을 인정하고 세금을 냈다”면서 “하지만 정씨는 연희동(노 전 대통령측)에서 운전기사 일을 했고 급여만 오로라씨에스에서 받았을 뿐 그의 차명계좌는 법인과 상관없는 것이었다. 또 정씨가 이미 퇴직한 상태여서 국세청에 당사자에게 직접 확인해보라고 통보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씨와 노 전 대통령측은 “모르는 일”이라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본지가 입수한 세무조사 관련 자료에 따르면, 정씨는 제일은행(현 SC은행) 연희동지점과 국민은행 서소문로·서교사거리지점, 동양종금 도곡본부, 농협 동교동지점, 교보증권 등 5개 금융기관(6개 지점·본부)을 통해 총 9개의 계좌(원금 추정액 30억3500만원)를 갖고 있었다. 이들 계좌는 2004년 말부터 2009년 10월까지 약 5년간 개설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해당 계좌가 개설된 금융기관 지점들중 총 4개 계좌(추정 원금 13억5700만원)가 개설된 농협 동교동지점은 노 전 대통령의 자택과는 도보로 약 20분 거리에 있다. 원금 6억2000만원이 예금됐던 제일은행 연희동지점도 자택과는 불과 10분 이내 거리에 위치해 있다.

국세청이 정씨의 계좌를 차명계좌로 추정한 것은 정씨의 연봉(최종 급여)이 3900만원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자금 출처가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본지는 정씨의 재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정씨가 소유하고 있는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아파트(실평수 25평·매물가 2억8000만원)를 살펴봤다. 그런데 정씨의 아파트는 2006년부터 지금까지 대출금 1억8000만~2억1000만원(채권최고액 기준) 때문에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다. 2006년은 정씨가 수십억 원 규모의 계좌를 갖고 있던 때다.

<시사저널>은 차명계좌 의혹 보도에 앞서, 노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 명의로 돼 있는 연희동 자택 별채 부지와 대구 지묘동 팔공보성아파트 등 부동산 2건(추정가 30억원)이 노 전 대통령의 돈으로 구입된 후, 명의신탁 과정을 거쳐 아들에게 이전됐다고 단독 보도했다.

이 입수한 오로라씨에스의 세무조사 관련 자료.
노태우 아들, 친인척 회사 주식 57억원 매각

이와는 별도로 재헌씨 소유의 강원도 고급 콘도와 회사 설립 자금의 출처도 의혹을 사고 있다. 재헌씨는 2005년 7월1일 강원도 평창군의 포레스트콘도(건평 345㎡)를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자가 이 콘도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재헌씨가 이 콘도의 지분 50%를, 전 부인 신정화씨(30%) 등 노 전 대통령의 전 사돈인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 일가가 50%의 지분을 갖고 있다.

재헌씨가 지난 2000년 SK협력업체인 이동통신솔루션 전문 업체 텔코웨어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자금의 출처도 의혹을 사고 있다. 텔코웨어는 재헌씨가 이종사촌 금한태씨와 공동 설립한 회사로 알려졌다. 이 회사의 주식 상장 당시 재헌씨는 103억원(지분 9.5%)의 지분 평가 이익을 얻었다. 노 전 대통령이 동생 재우씨와 오로라씨에스의 소유권을 두고 법적 다툼을 벌일 무렵인 지난 2009년 1월, 재헌씨는 이 주식(94만주)을 모두 시간외 매매(처분 단가 6100원)로 처분했다. 당시 처분 가액은 57억여 원으로 추산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차명 재산 논란이 확산되자, 검찰도 차명 재산 여부를 확인하기로 하는 등 사태 파악에 나섰다. 하지만 검찰의 추징금(추심금) 집행 과정을 둘러싼 논란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노 전 대통령 비자금으로 신명수 전 회장이 구입한 서울센터빌딩의 추심금(230억원) 집행을 하지 않은 것(<시사저널> 2012년 11월6일자 ‘알고도 못 받아낸 ‘노태우 비자금’’)과 관련해 또 다른 추심금 집행 대상인 노 전 대통령의 동생 재우씨측이 반발해 탄원서와 고발장을 제출하는 등 법적 다툼으로 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씨가 6월13일 채동욱 검찰총장 앞으로 “검찰이 재우씨와 신 전 회장에게 맡겨진 재산을 환수해 추징금을 완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취지의 탄원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해 6월 신 전 회장을 상대로 한 진정 접수 이후 검찰을 향한 추가 요청인 셈이다. 결국 추징금 미납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등 가족의 차명 재산으로 관심이 집중되자, 다급해진 노 전 대통령측이 검찰을 압박해 재우씨와 신 전 회장에게 건네진 재산을 조속히 회수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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