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의 횡포 ‘빵 회장’, 폐업 신고 안 했다
  • 이규대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3.06.1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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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베이커리 강수태 회장 약속 안 지켜 남양유업은 밀어내기 피해 점주들과 지리한 협상

추락하는 ‘갑’에게는 날개가 없었다. 그들의 횡포가 세상에 알려지는 속도에는 제한이 없었다. 여론의 뭇매가 그들을 덮쳤다. 문제를 저지른 ‘갑’들은 국민 앞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국민의 분노는 비단 한 개인의 비행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 배경에는 갑과 을로 짜인 권력 관계 속에서 비인간적인 횡포가 용인되는 풍조에 대한 공분이 있었다.

4월 중순 이후, 이른바 ‘갑’의 횡포를 드러내는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며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라면 상무’의 항공기 승무원 폭행, ‘빵 회장’의 호텔 지배인 폭행, 남양유업 직원의 대리점주에 대한 폭언 녹취록 공개, 배상면주가 대리점주의 자살 등이 숨 가쁘게 이어졌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뜨거웠던 비난 여론은 잠시 수그러든 상황이다. 분노가 가라앉은 자리에는 무엇이 남았을까. ‘그때 그 갑들’의 현재를 추적했다.

6월12일 서울 용산구 소재 프라임베이커리 본사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다(왼쪽). 프라임베이커리 법인은 여전히 사업자등록을 유지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폐업 선언했던 프라임베이커리 휴업 중

롯데호텔 현관 서비스 지배인을 폭행해 비난에 휩싸인 강수태 프라임베이커리 회장은 사건 직후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프라임베이커리의) 폐업 신고 절차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불과 20여 일이 지난 뒤 이 말이 거짓임이 밝혀져 논란이 됐다. 프라임베이커리 관계자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폐업은 아니다. 휴업 상태다. 코레일에 납품할 계획도 있다”고 밝힌 것이다.

사건 발생 직후 내렸던 본사의 간판은 다시 걸렸고, 영업 재개를 알리는 문구가 등장했다. 제품을 담을 새로운 포장지와 쇼핑백도 구비하는 등 다각도로 영업 재개를 준비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건이 발생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폐업하겠다’며 약속까지 한 상황이었다. 이를 뒤집은 강수태 회장의 처사는 다시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기자는 강수태 회장을 직접 만나려고 했다. 6월12일 서울 용산의 프라임베이커리 본사를 다시 방문해보니 사무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직원들도 출근하지 않은 상태였다. 프라임베이커리 간판은 여전히 붙어 있었지만 영업 재개를 알리는 문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본사 옆에서 만난 한 동네 주민은 “그 사건 이후 영업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영업을 재개하려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일자 다시금 회사의 문을 닫은 것으로 보였다. 회사의 현재 상황에 대해 물으려 프라임베이커리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관계자는 기자임을 확인하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프라임베이커리는 폐업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사업자등록번호로 국세청에서 폐업 여부를 조회해본 결과, 6월14일 현재 ‘부가가치세 일반과세자’로 여전히 사업자등록이 돼 있었다. 국세청의 사업자등록 상태 데이터베이스는 매일 업데이트한 전날 기준의 자료를 제공한다. 강 회장은 폐업을 공언한 지 한 달이 넘은 시점까지 관련 신고를 하지 않은 것이다.

관심을 끄는 것은 코레일관광개발과의 계약 재개 여부다. 프라임베이커리는 수익의 상당 부분을 코레일관광개발과의 거래에 의지해왔다. 애초 강 회장이 폐업을 운운한 것도 코레일관광개발의 납품 중단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코레일관광개발측도 4월30일 납품 중단을 결정할 당시 “사태 악화를 막기 위한 일시적인 조치일 뿐 영구적인 납품 거부는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프라임베이커리가 폐업하지 않고 ‘휴업 상태에서 납품 재개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코레일관광개발 관계자는 “사건이 터지고 난 후 양측 회사 간에 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프라임베이커리에서 납품 재개를 공식적으로 요청해온 바는 없다. ‘코레일에 납품할 것’이라는 건 프라임베이커리의 입장에 불과하다. 납품 재개를 결정한 바 없다”고 말했다.

사건 발생 후 남양유업 제품의 매출이 급감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라면 상무 현업 복귀 물색 중” 관측

강수태 회장에 앞서 여론의 비난에 휩싸인 인물이 있다. 포스코에너지의 임원이었던 왕 아무개 전 상무다. 왕 전 상무는 4월15일 대한항공 여객기 승무원에게 상식 이하의 요구를 거듭하다 폭행까지 저질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물의를 빚었다.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포스코에너지는 왕 전 상무를 보직 해임했다.

이후 왕 전 상무는 이렇다 할 대외 활동 없이 칩거에 들어갔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은밀하게 현업 복귀를 물색 중이라는 말도 들린다. 업계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왕 전 상무가 중견 건설업체인 ㅇ사 대표와 친분이 두터운데, 보직 해임된 이후 자주 만났다. 그러면서 왕 전 상무가 ㅇ사 고위직으로 복귀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확정된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폭언을 퍼붓는 녹취 내용이 인터넷에 공개돼 여론의 뭇매를 맞은 남양유업은 사태 수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5월9일 대표이사와 임원들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으나, 이미 지난 1월 피해자대리점협의회 대표와 대리점 직원 등을 허위 사실 유포죄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거짓 사과 논란에 시달렸다. 남양유업은 5월10일 관련 고소를 취하하고 피해 대리점주들과 직접 협상에 나섰다. 그러나 양측의 의견 차이가 커 난항을 겪어왔다.

피해자대리점협의회는 남양유업 본사에 불공정 거래 관행 개선 약속 문서화, 물량 밀어내기에 대한 피해액 보상, 단체교섭권 인정, 영업권 회복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사측은 여러 면에서 이들의 의견과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사측이 “대리점주가 본사에 제품을 반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겠다”고 제안했으나 피해자협의회측은 “애초 대리점이 주문한 물량만 본사가 보내면 된다”는 입장을 보이는 것이 대표적이다. 사측은 ‘밀어내기’ 금지의 명문화 요구 및 단체교섭권 보장도 수용 불가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남양유업 욕설 영업사원, ‘흔적 지우기’ 나서

이런 상황에서 ‘어용 단체 결성 논란’이 발생해 혼란을 키웠다. 기존 밀어내기 영업 횡포로 피해를 입은 전·현직 대리점주들의 모임인 ‘피해자대리점협의회’가 아닌, 불매 운동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현직 대리점주들의 모임인 ‘전국대리점협의회’ 결성 과정에 사측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면서다. 피해 대리점주들의 협상력을 떨어뜨리려는 음모가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면서 협상은 더욱 어려움을 겪었다. 6월13일 전국대리점협의회는 사측의 협상안을 받아들였다. 현재 남양유업은 피해자대리점협의회와 교섭을 진행 중이다.

사태 수습이 늦어지는 사이 남양유업의 매출은 거의 반 토막이 났다. 한 대형 마트의 5월 남양유업 우유 매출은 4월에 비해 52% 줄어들었고 커피 매출은 48% 줄어 14%에 이르던 전체 시장 점유율이 10% 수준으로 급감했다. 한 대형 편의점의 경우도 남양유업 상품 전체 매출은 전달에 비해 5.8%가 떨어졌다.

남양유업 사태가 촉발된 것은 30대 영업직원이 아버지뻘인 50대 대리점주에게 폭언과 협박을 한 통화 녹취록이 공개되면서다. 해당 영업사원은 문제가 되자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고, 곧바로 수리됐다. 그 영업직원의 근황도 들린다. 포털 사이트에 게시된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녹취록에 대해 ‘명예훼손 게시물’이라고 주장하며 삭제를 요청하고 있다. ‘권리 침해 신고’를 통해 해당 글을 블라인드 처리하고, “속죄하며 살 수 있는 기회를 한 번만 달라”며 삭제 요청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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