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삶의 열쇠, 풍류를 나누고 싶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3.06.18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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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대중화 나선 ‘국악 피아니스트’ 임동창

6월1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에 자리한 문래예술공장 2층 연습실에서 10대 청소년 15명이 <흥부가>와 <뱃노래> 등을 연습하고 있었다. 구성이 묘했다. 흥부가 박타는 장면과 뱃노래를 부르는데 기타와 드럼이 있고 피리, 해금과 가야금, 장고가 들어가 있다. 이들의 연습을 도와주는 이는 국악 피아니스트 임동창. 이들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15명의 소년·소녀는 지난 4월 오디션에서 뽑힌 ‘K-sori 악동’이다. 이들은 오는 8월19일 영국 에딘버러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연습 중이다. 이 중에는 시각장애인도 있고, 국악 전공자와 그렇지 않은 이가 섞여 있다. 이들의 연습·합숙 등 에딘버러 페스티벌 참가 전 과정은 카메라에 담겨 오는 7월부터 KBS1 텔레비전을 통해 11주에 걸쳐 방송된다. 이들의 ‘교장’ 격인 임동창은 “청소년을 데리고 국악이 바탕이 되면서 다른 양악과 함께 어우러지는 음악을 창조적으로 해보자는 시도가 좋아서 참여했다”며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선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가수 신해철과 국악인 남상일도 선생 자격으로 함께했다.

에세이 을 출간한 피아니스트 임동창이 6월11일 서울 문래예술공장에서 국악 오디션 프로그램을 녹화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음악으로 놀고 흥으로 공부하다’

이 프로젝트는 ‘국악을 당대의 대중음악으로 만들겠다’는 임동창의 지론과 합치된다. 사실 임동창이 하는 음악은 적당한 수식어를 찾아 붙이기 어렵다. 그는 피아노를 배웠고, 서울시립대에서 작곡을 전공했고, ‘피앗고’라는 피아노 개량 악기를 만들기도 했고, 최근 작품 활동은 주로 국악을 바탕으로 한 피아노 연주 그리고 ‘허튼 가락’이라는 전통음악에 기반을 둔 음악도 만들어냈다. ‘허튼 가락’이나 ‘풍류 음악’을 설명하자면 또 길어진다. 그래서 그를 ‘국악 피아니스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활동은 우리 음악계에서 둘을 찾기 어려운 예다. 왜 이런 정체성이 생겨나고 그가 어떤 음악적 과정을 거쳐서 오늘에 이르게 됐는지를 설명한 책이 최근 나왔다. ‘음악으로 놀고 흥으로 공부하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노는 사람, 임동창>. 이 책에는 피아노는 꿈도 꿀 수 없었던 가난한 군산(전라북도)의 중학생이 피아노에 빠져든 이유부터 시골 교회 성가대의 피아노 건반이 마모되고 페달이 구멍 나도록 미친 듯이 매달려 고등학생 때 전국 규모의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지만 진학 대신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 끝에 머리를 깎고 출가했던 이야기, 군악대 시절 인연으로 ‘인순이와 리듬터치’의 밴드마스터가 됐던 이야기, 그러다 결국은 고등학교 졸업 10년 만인 서른 살에 음대에 들어가 정식으로 작곡을 공부하면서 서양 음악의 기술적인 근원을 끝까지 파고들었고, 재학 중 김자경오페라단의 상임지휘자 겸 반주자로 활동하고, 35세에 김덕수패 사물놀이팀을 만나 사물놀이 채보 작업을 도와주면서 국악 공부를 바닥부터 다시 했던 그의 음악적 여정이 빼곡히 들어 있다.

지금 들을 수 있는 그의 음악은 이런 이력의 총합인 셈이다. 1000년 동안 내려온 <수제천(壽齊天, 국악합주곡)>이나 <영상회상>을 피아노로 연주하고 허튼 가락을 만들어낸 것은 이런 공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서양 음악을 공부한 그가 내린 결론은 ‘전통음악을 당대의 딴따라 음악, 대중가요로 되살리겠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대중음악이 내 음악의 종착역이 될 것이다. 이제는 내가 대중음악을 해야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위한 음악이 아니라 대중을 위한 음악, 쉬운 음악이 될 것이다. 물론 국악이 그런 대중음악의 바탕이 될 것이다. 우리의 얼, 그게 근본이다.”

이를 위해 그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올해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시나위 프로젝트, 국립극장의 여우락 프로젝트, 국립무용단의 무용음악, 그 사이사이 음반 <달하>와 <우리 풀꽃 이야기> 수록곡을 중심으로 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합동 콘서트를 연다. <달하>와 <우리 풀꽃 이야기>는 서정적인 멜로디와 국악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한 친근한 정서로 대중에게 다가서는 곡으로 인기가 높다.

연주 활동과 함께 그는 전북 남원에 풍류학교를 열고 길을 찾는 학생들을 돕고 있다. 이 학교는 음악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음악을 하다가 길을 잃은 대학생이나 중·고등학생이 마음의 길을 찾는 곳이다. “삶을 대하는 태도를 가르쳐준다”는 그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스스로를 찾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살아 있는 음악 하려면 진짜 감정 노래해야”

그 자신이 ‘나의 음악’을 찾아 멀고 먼 길을 돌기도 했다. 고등학생 시절 그는 피아노에 미쳐서 수업을 빼먹고 하루 종일 피아노만 쳤었다. “그게 내 수업이었고 공부라고 생각했다. 학교 가서 친구 만나고 노는 게 얼마나 재미있나. 스스로 안 한 것뿐이다. 피아노가 맛있는 음식이라 편식한 것이 아니다. 맛있어서 그렇게 했으면 음악을 진작 관뒀을 것이다. (음악에 대한 의문이) 안 풀리니까 계속한 것이다. 다른 것을 아무것도 못 하고 그것만 바라보면서 빨려 들어간 것이다.”

그렇게 미친 듯이 피아노를 치고, 작곡을 전공하기도 했던 그가 왜 국악에 집중하는 것일까.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하면서 클래식이라는 장르의 끝까지 가봤다. 그게 내 대학 생활의 목표였다. 서양 고전음악은 현대음악으로 분류되는 쇤베르크 때부터 사실은 망한 것이다. 서양 음악의 방식이, 그 종착역이 인간을 살리는 음악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길로 계속 가서는 내 음악을 찾을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쇤베르크는 전통 화음을 피하기 위해 12음 기법의 무조음악을 도입했다. 그는 이것이 “진정한 자유로운 12음계가 아니라 뭔가 예술은 새로워져야 한다는 강박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라빈스키나 쇤베르크가 모두 말년에 자신이 평생 해온 방법론을 버린 작업을 한 것은 두 사람 모두 현대음악의 실패를 자인한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음악을 하려면, 살아 있는 음악을 하려면 진짜 감정을 노래해야 한다. 요즘 현대음악은 자기도 모르는 음악을 하면서,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고, 그냥 휩쓸려서 가는 것일 뿐이다.”

작곡 공부를 통해 현대 서양 음악의 끝을 봤다는 그는 오히려 음악인 사이에서 가장 하찮은 대접을 받는 대중음악을 중시했다. “대중을 위해서 하는 음악이 딴따라다. 현대음악을 하는 사람은 작고 예쁜 멜로디를 못 쓴다. 대학에서는 기법 위주로만 가르친다. 멜로디를 써내는 능력은 중요하다. 영감이 터져야 할 수 있다. 기술은 익힐 수 있지만, 재능은 익힐 수 없는 것이다.”

인터뷰가 끝난 뒤 그는 15명의 아이들과 전남 여수로 떠났다. 아이들이 여수 합창대회에 참가하기 때문이다. 그는 ‘윗방 큰애기’로 전락한 전통음악을 당대의 옷으로 갈아입히고 자꾸 대중의 옆으로 끌어다놓는 시도를 계속할 것이다. “한없이 평화로운 자유 속에서 우리 조상이 물려준 놀라운 지혜, ‘풍류’를 만났다. 이제 나는 자유로운 삶으로의 열쇠인 풍류를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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