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는 싸가지가 없어”
  • 엄민우·조해수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3.07.0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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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뇌관 ‘권영세 녹취록’의 실체

그야말로 반전에 또 다른 반전이 거듭되고 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NLL 대화록’ 논란과 관련해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하루가 멀다 하고 수세와 공세를 되풀이하고 있다. 특히 6월28일 하루 동안 양당 분위기는 그야말로 대선 전야를 방불케 할 만큼 긴박했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민주당 분위기는 좋았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기자에게 “우리로서는 싸울 수 있는 전선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NLL 대화록’을 공개함에 따라 오히려 새누리당을 압박할 카드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그 카드 중 하나가 바로 현 주중 대사인 권영세 전 박근혜 후보 캠프 종합상황실장의 발언이 담긴 녹취록이다. 2012년 대선 직전, 당시 권 실장이 언론사 기자 등과 나눈 대화 기록으로 약 1시간 40분 분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가 “‘치명적’ 내용이 담겨 있다”고 주장하는 해당 녹취록에는 무슨 내용이 담겨 있을지 사뭇 궁금했다.

김무성 의원(왼쪽)과 권영세 주중 대사는 지난 대선 때 박근혜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 연합뉴스
<시사저널>, ‘100분 녹취록’ 일부 확인

<시사저널>은 6월28일 오전 민주당 고위 당직자 ㄱ씨를 통해 녹취록 내용 중 일부를 직접 확인했다. 민주당이 확보했다고 주장하는 녹음 파일 100여 개 중 일부다. 기자가 일부 내용을 확인한 이날 오전 시점에는 이미 몇몇 대목이 민주당 박범계 의원 등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내용들도 확인할 수 있었다. ㄱ씨는 “민감한 내용이 많아 다 보여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시곗바늘은 6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선을 열흘 남짓 앞둔 지난해 12월10일 여의도의 한 식당. 당시 권영세 상황실장과 기자 등 서너 명이 마주앉았다. 1시간 반 넘게 이어진 무겁지 않은 분위기의 식사 자리였다. 권 전 실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관련 발언 및 대북 정책에 대한 비판과 함께 대화록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권영세 전 실장은 이 자리에서 NLL과 관련한 노 전 대통령 발언을 기사화할 것을 종용하는 듯한 발언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녹취록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ㄱ씨는 “당시 권 전 실장은 ‘전해 들은 얘기라서 기사화하기엔 부담스럽지만 문서 자료가 있으니 써도 괜찮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선거를 불과 열흘 앞둔 시점에 기자와 동석한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여서 저의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이날 권 전 실장은 ‘NLL 관련 얘기를 해야 되는데…. NLL 대화록 있잖아요? 자료 구하는 건 문제가 아닌데 그건 역풍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중략) 그래서 이거는 우리가 집권하게 되면 까고…’라며 ‘○○일보의 인사가 정치권에 뛰어들었는데…(중략) 우리를 좀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발언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권 전 실장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에 담긴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상당수 인용하기도 했다. 권 전 실장은 ‘노 전 대통령이 5년 동안 외국 정상들을 만나면서 북한의 대변인이 돼서 더러운 역할을 해왔다는 발언을 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는 실제 2007년 10월3일 노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 당시 발언했다는 ‘그동안 외국 정상들에 북측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북측의 대변인 노릇 또는 변호인 노릇을 했고 때로는 얼굴을 붉혔던 일도 있다’고 기록된,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 기록과 거의 일치한다.

권 전 실장은 또 ‘노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 가서 북핵 문제 풀고 오라는 주문이 많았는데 그 얘기는 한마디로 정상회담 깽판 치고 오라는 얘기”라는 발언을 했다’고 언급했다. 권 전 실장이 노 전 대통령의 대화록 발언이라며 언급한 내용은 계속 이어진다. ‘더욱 황당한 것은 NLL 문제는 영토 문제가 아니고 그거는 말이 안 되는 얘기다. 누구는 뭐 헌법적인 분야라고 그러는데 절대 헌법적인 게 아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막아낼 수 있다’ ‘방코델타아시아인가? 이게 실책이다. 나도 제국주의에 대해 굉장히 나쁘게 생각하고 있다’는 등이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에 기록된 내용과 대개 다 비슷한 내용이다. 즉, 대선 전 당시 권 실장이 대화록의 내용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음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6월26일 “권영세 전 종합상황실장이 NLL 대화록을 공개할 계획임을 언급했다”고 주장했다. ⓒ 연합뉴스
녹음 당사자 “민주당에 제보한 것 아니다”

당시 녹취가 이뤄진 곳은 공식 석상이 아닌 비교적 가벼운 자리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보니 NLL 관련 문제뿐 아니라 ‘정치인 아무개가 싸가지(버릇)가 없다’와 같은 가십성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안철수 당시 대선 후보에 대한 이야기도 상당 부분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6월28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아직 공개되지 않은 녹음 파일 중에는 ‘개헌을 해서 민주당을 어떻게 하겠다’는 말도 있고 안철수 의원에 대해 거론한 것도 있고, ‘네거티브 캠페인을 이렇게 했다’는 등 많은 내용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귀국한 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추가 공개 여부를) 결정하겠다. 대통령께서 모든 것을 공개하고 책임을 묻고 사과를 하면 공개하지 않는다”며 압박 수위를 높이기도 했다.

이날 기자가 확인한 권영세 주중 대사의 발언이 담긴 녹취록은 전체 분량 중 일부다. 총 1시간 40분 분량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민주당은 “해당 녹취록은 민주당이 직접 녹음한 것이 아니고 당시 권 전 실장과 동석했던 한 기자가 녹음했던 파일이며, 제보를 통해 그 파일을 건네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날 오후 또 다른 반전이 이뤄졌다. 민주당이 ‘제보자 보호’ 차원에서 밝히지 않는다던 녹음을 한 당사자가 나선 것이다. 한 현직 기자인 그는 “이른바 ‘권영세 녹음 파일’은 당시 내가 녹음한 것인데 민주당이 무단 입수해 공개했다”면서 박범계 의원 등을 이날 경찰에 고소했다. “제보를 통해 받았다”는 민주당측의 주장과 배치되는 것이다. 이 기자는 “내가 스마트폰에 녹음해뒀던 것이 유출된 듯하다”며 “박범계 의원 등은 불법으로 입수한 것으로 보이는 음성 파일을 갖고 제보 운운하면서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장 수세에 몰려 있던 새누리당측은 “민주당은 절취 전문 당인가”라며 공세에 나섰다. 민주당은 “중요한 것은 권 전 실장의 발언 등으로 드러난 국기 문란 행위다. 본질을 흐리지 말라”고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이날 오전과 같은 기세등등한 모습은 아니었다. 정국이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요동치고 있다. 7월이 꽤나 시끄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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