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욕보이는 건 참을 수 없다”
  • 양정대│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3.07.02 14:0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목소리 높이는 문재인…김한길 등 신주류는 부담스런 기색 역력

“설마 새누리당과 국정원이 거기까지 생각한 건 아닐 테지만, 어쨌든 결과만 놓고 보면 앞으로 우리 내부가 꽤나 시끄러워질 것 같다.”

민주당 내에서 김한길 대표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한 재선 의원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논란에 이어 국정원이 전격적으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하면서 여야가 극한 대치를 이어가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선 민주당 내부가 심각한 갈등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왼쪽)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6월26일 전남 순천시 전남테크노파크 내 생산업체를 방문해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오른쪽)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6월24일 백마부대 신병교육대를 방문해 배식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김한길 vs 문재인, 계파 갈등 2라운드?

김한길 대표를 정점으로 한 민주당 신주류의 이런 우려는 사실 문재인 의원이 정치의 전면에 재등장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5·4 전당대회를 지나면서 또 한 번 폐족(廢族)으로 밀려나는 듯했던 친노(親盧) 진영이 이른바 ‘국정원 사태’를 계기로 급속히 정치적 발언권을 키워가고 있고, 그 중심에 문 의원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본격적인 활동 재개는 시간문제일 뿐 누구나 예상했던 것이다. 다만 대선 패배 책임론, 친노의 패권주의 성향에 대한 비토 분위기 등으로 당분간은 정치의 전면에 나설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문 의원과 친노를 다시 무대 위로 끌어올린 것은 새누리당과 국정원이었다. 특히 문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과 이 문제로 지난해 대선 때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였던 직접 당사자다. 투표일을 사흘 앞두고 진행된 TV토론에서 국정원 댓글 사건을 놓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책임론을 거론하기까지 했다. ‘노무현의 친구’로서 노 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정치 공세에 침묵할 수 없고, 게다가 문 의원은 남북정상회담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자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으로 실무를 총괄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문재인 의원이 직접 나설 경우 어떤 식으로든 대선 결과에 대한 문제 제기로 해석될 소지가 있어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초 문재인 의원이 전선(戰線)에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기는 대체로 내년 상반기였다. 안철수 신당의 윤곽이 어느 정도 잡히고, 민주당에서도 김한길 대표 체제가 10월 재보선을 통해 일정한 평가를 받기 시작하면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 간 대격돌이 시작되는 바로 그때를 점찍은 이가 많았다. 그런데 국정원 사태가 판을 완전히 흔들어놓았다.

문재인 의원이 이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로 보이지만, 이는 곧바로 친노 진영의 재기 모색 또는 재결집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가는 요동칠 전망이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 가운데 장외투쟁의 필요성을 적극 주장하는 의원들 상당수는 친노 내지 친문(親文, 친문재인)에 가깝다는 게 중론이다. 대선 당시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냈던 한 의원은 “국정원이 자신들의 대선 개입 사실을 덮기 위해 의도적으로 NLL 논란을 들고 나온 건 청와대를 포함한 여권 핵심부와의 교감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필요하다면 박근혜정부의 정당성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 의원 주변에서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중간수사 결과만 제대로 나왔어도 대선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란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김한길 대표를 비롯한 신주류·당권파는 장외투쟁에 대해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장외로 나서는 순간 과거처럼 반대만 일삼는 야당으로 낙인찍힐 것이란 우려도 그렇지만, 실제 내부적으로는 친노 진영의 페이스에 끌려가는 데 대한 낭패감이 더 커 보인다. 한 핵심 당직자는 “국정원의 국기 문란 사태는 제2의 촛불 사태로 번질 것이란 예상이 나올 만큼 심각한 문제라 원내 활동과 병행할 경우 장외투쟁 자체에 부담이 있는 건 아니다”면서도 “솔직히 더 우려스러운 건 NLL 논란으로 똘똘 뭉치기 시작한 친노 진영이 자칫 강경 투쟁으로 오버할 경우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친노는 ‘친문재인’으로 리모델링될 것”

이런 분위기는 김한길 대표와 문재인 의원 사이의 묘한 신경전과 맞물려 더 확산되는 양상이다. 최근 김 대표는 6월14일 기자회견을 통해 영등포당사 폐쇄와 중앙당 축소를 골자로 한 당 혁신안을 발표했는데, 요지는 5·4 전당대회 과정에서 강조했던 ‘당원 중심 정당’의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자 이튿날 문 의원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재 우리 당원은 불과 몇만 명이고 지역적으로 편중돼 있어 당원 중심으로 갈 경우 일반 국민의 의사와 동떨어질 위험이 있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최근 여의도 안팎에선 때 이른 야권 정계 개편 시나리오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신주류·당권파와 범(汎)친노 진영이 결국은 각자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민주당 내에서 계파 색이 거의 없는 것으로 평가되는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국정원 댓글 사건이나 NLL 논란은 누가 봐도 야권 전체를 단합시키는 요소이지만, 지금의 당내 상황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고 답답해했다.

실제 김한길 대표 주변 인사들은 국정원 사태와 관련해 친노 핵심 인사들이 전면에 서는 것에 대해 마뜩찮은 분위기다. 한 고위 당직자는 “특히 NLL 논란은 진실이 무엇인지와 무관하게 보수층을 대동단결하게 만드는 측면이 강해 친노 인사들이 나서는 것 자체가 우리 쪽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친노 진영은 논란의 당사자로 거론되는 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노 전 대통령이란 점에서 한발 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한 친노 인사는 “살아생전에 지켜드리지 못했는데 돌아가셔서까지 억울하게 돌팔매를 맞게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특히 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 움직임과 맞물려 갈등은 확산될 공산이 크다. 이미 정치권 내에선 민주당 신주류·당권파와 안 의원측이 결국은 한 배를 타고 범친노 진영과 갈라설 것이란 시나리오가 예사로 언급돼왔다. 하지만 다른 목소리도 있다. 이번을 계기로 ‘친노’가 ‘친문’으로 본격 리모델링될 것이란 전망이 그것이다. 신율 교수는 “이전과 달리 문재인이란 유력한 차기 주자가 있고 그가 노 전 대통령과는 스타일이 다른 정치를 한다는 점, 또 비노(非盧) 진영에서도 그에 대한 호감도가 꽤 높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국정원 사태로 인한 친노 진영의 재결집은 예상보다 빠른 친문 그룹의 광범위한 조직화로 이어질 뿐, 당이 쪼개지는 쪽으로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